그리고 로컬 스타트업을 대하는 직원의 방법
로컬스타트업에 다니며 계속 들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우리회사는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주고, 그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회사다. 직원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대표님은 매달 면담을 진행하며 회사 일을 하며 즐거운 일, 힘든 일 등 업무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소도시에서의 삶과 직원의 미래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들어주신다. 대표님께서 매달 업무 일지를 쓰라고 하는 것도 나중에 직원들이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때 보다 쉽게 작성할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이었다. 현 회사가 마지막이 아니니까, 다음 다른 회사로 점프점프하여 더 자신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갈 수 있게 하게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이터를 정리해놓으라는 대표님의 배려(?)이다. 한번 쭉 적고 제출하면 이에 대한 피드백까지 다 해주신다. 어떻게 적는지, 이런건 이렇게 적는게 좋을 것 같다는 코멘트들.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신다. 직원들 개인의 관심사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자주 보내주시고, 교육 등 일부 지원도 해주신다. 이런 회사가 어디있나 싶을 정도로 대표님께서는 직원들 개개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신다.
대기업에 또는 일반 회사에 들어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본인이 마치 기계의 부속품 같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월급을 받으며 자신의 업무를 하는 회사 내 수많은 직원 중 한 명. 현재 회사를 퇴사한다면 난 뭘할 수 있을까? 라는 말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더더욱 로컬 스타트업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현재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나의 커리어에 도움되는, 이 회사를 나가더라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사의 일부가 아닌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 현재 로컬스타트업의 한 회사 소속이긴 하지만 내가 성장함에 따라 회사도 함께 성장하는 협업관계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로컬스타트업은 나에게 적합한 회사라고 생각하며 잘 다니고 있다.
앞서 말한 거 처럼 직원 개개인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 도움을 주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나도 좋다.
하지만 때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해야할 것 만 같아서 부담이 되곤 한다. 작년부터 이 회사에서 일을 했고, 대표님이나 이사님과 면담을 할 때면 마을에서 혹은 회사에서 나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부분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도 내가 뭐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내가 하고 싶은걸 빨리 정하라는 듯한 압박같달까? 그래서 면담을 할 때면 괜히 자신감이 떨어지고, 난 또 어떤 말을 해야할까 고민이 됐다. 면담을 하고 나면 동기부여를 얻어 나 스스로에 대해 더 곰곰히 생각해봐야지 싶다가도 답이 나오지 않아 낙담하곤했다.
연초에 또 하나. 2022년 연간 업무목표를 작성하라는 대표님의 지시.
이를 통해 한해동안 어떤 일을 하고싶은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봐주고, 그 목표를 달성하게 하기위해 관련된 업무를 준다든지, 각자가 잘하는 부분을 발굴해주고 실험해보도록 하게끔 한다. 처음 이걸 적으라고 했을 땐, 나에게 너무 힘든 숙제였다. 난 지금 하고 싶은게 없는데 말이다.
작년 5월에 이 회사에 왔고, 이 작은 도시에 왔고, 여러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뭘하고 싶은지, 좋아하는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자꾸 하고싶은 것을 적어라고 하니, 대체 뭘 적어야할지 모르겠는 거다.
괜한 압박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대체 난 뭘해야하며, 뭘하고싶은건가??
대표님과 면담도 몇번했다.
대표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직원들은 어느정도 자기가 하고 싶은게 보이거나 하는데 나는 없어보인다고. 뭐든 잘해서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근데 그렇게 되면 결국엔 뒷처리, 누군가 싸놓은 똥을 치우는 사람이 될거라고.. 대표님 본인이 그런 사람이었기에 잘 안다고 하셨다. 그 말에 한편으론 나라는 사람을 가치있게 봐준 것에 감동이었고, 한편으론 그게 현실이라 슬펐다.
이에 더하여 대표님께서 잡아주신 방향은 이런 것이었다.
홍보업무를 해보고싶어요 라는 거창한 것이 아닌 '저는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재미있어요',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일이 좋아요', '사람이랑 대화를 하는게 좋아요' 등 아주 기초적인 단계의 행동부터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접근 조차 쉽지않았다. 그래서 연초에 엄청 많은 고민을 했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고, 난 뭘하며 살아온건지 인생에 대한 현타도 여러번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적어 내야하기 때문에, 그럼 정말 사소한 일부터 적어보기로 했다.
일단 자격증은..
토익이 만료됐으니 토익을 치고, 일러스트레이터도 자격증을 따놔보자, 스페인어도 꾸준히 하기위해 시험을 한번 쳐본다라는 의미로 잡았다.
그리고 사업계획서를 한번 작성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사업은 대표님과 이사님이 따고 실행만 해보았으니, 올해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 부터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문서화하여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단어를 쓰냐, 어떤 뉘앙스의 말을 쓰냐에 따라 사업의 방향이 확확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논리에 맞추고 정당화 하기 위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꼬리를 물며 생각하다보니 결국 이는 올해 내 개인 목표인 논리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한발자국씩 다가가기로 했다.
그렇게 회사와 함께 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