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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Jul 04. 2022

면접 보러 가기 전에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 이유

74번째 : 샌드위치의 위대함

 오늘 같은 날엔 한 번쯤 택시를 타볼까?


 광화문까지 택시를 타고 갈까 잠깐 고민을 하긴 했지만, 결국 내 선택은 지하철이었다. 택시비는 못해도 만원쯤은 나올 거고, 지하철은 아무리 해도 1500원 전후일 테니까. 게다가 급할 것도 없었다.


 팀원들은 모두 11시 55분쯤에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갔다. 내가 그들과 동행하지 않는 듯 보이자, 팀원들은 '넌 오늘 밥 안 먹어?'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나 : 아, 다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저는 오늘 반차라서.

팀원1 : 오늘? 수요일인데? 어디 뭐 면접 보러 가요?

나 : 아, 무슨 면접이야. 오늘 퍼스널 컬러 진단받으러 가요.


 역시. 주중에 갑자기 오후 반차를 내는 것은 오해받기에 딱이었다. 정말 면접을 보러 가는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구체적인 퍼스널 컬러 진단이라는 핑계를 꾸며냈다. 살짝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소중한 점심시간을 놓칠 수 없는 직장인들은 12시가 되기 전 모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난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집에서 미리 준비한 면접 준비 자료 몇 장을 프린트했다. 그 사이에 혹시라도 누가 다시 사무실에 들어올까 봐 살짝 긴장되긴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여유롭게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면접은 오후 3시. 늦어도 한 시 전에는 광화문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면접까지 두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놓였다. 면접을 보러 가는 건데도, 뭔가 여유로운 느낌? 출퇴근 시간에 늘 바글바글 거리던 지하철도 한산했다. 일부러 뛰지 않아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면접 때문이지만 오랜만에 가는 광화문인데 점심으로는 뭘 먹을까? 면접이 있으니까 그냥 가볍게 먹고 싶은데, 아 그때 다슬이 언니가 말했던 브런치 맛집이 광화문 아니었나?


 솔직히 말하면 이동하면서도 면접 준비 자료를 읽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자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대신 핸드폰으로 광화문 브런치, 광화문 간단 식사, 광화문 점심 따위의 것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슬이 언니가 말한 브런치 가게는 내 기억대로 광화문에 있긴 했지만, 젠장. 너무 비쌌다. 다슬이 언니가 받는 연봉이 나의 연봉과 차이가 많다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그나마 분위기 좋고 가성비 좋고 로아(면접 볼 회사)와도 가까운 가게를 찾다 찾다 보니, 한 샌드위치 가게가 나왔다. 그렇게 큰 가게 같지는 않지만 가격도 싸고, 회사랑도 가까워 보이고, 구석에 적당히 짱 박힐만한 자리도 있었다. 바로 여기다!


 1시 14분. 면접 보기 1시간 46분 전, 나는 아보카도가 들어가 있다는 8900원짜리 샌드위치와 생과일주스를 사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이제는 정말 면접 자료를 살펴봐야 했다. 난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로아에 입사하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줄곧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다가 정말 몇 년 만에 얻은 면접 기회였다.


 하, 생각해보면 광화문 브런치 같은 것을 검색할 시간이 아니었는데... 급작스런 위기감에 난 면접 준비 자료를 계속 읽어댔다.


 내가 이직하려는 이유, 로아에 대해 알고 있는 점, 로아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한 것들, 지금까지 업무 경력, 회사에서 하고 싶은 입사 후 포부, 중장기 계획, 내가 잘하는 일, 취미, 회사의 경영 전략, 회사 홈페이지에 대한 느낌...


 지금까지 로아 면접 후기들을 싹싹 긁어모아서 만든 자료였다.

 집에서 정리하고 회사에서 몰래 프린트한 면접 준비 자료! 난 이걸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다. 


 그렇게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답변을 읽고 있는 그때, 어떤 여자가 샌드위치 가게로 들어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면서 말이다.


 여자 : 아, 막 존나 어려운 건 없었어. 근데 약간 좀 찝찝해. 어. 어. 지금 면접 본 다음에 병원 갔다가 지금 배고파서 샌드위치 먹고 갈라고.


 처음에는 그녀의 유독 큰 목소리와 '존나'라는 단어가 귀에 거슬렸다. 근데 듣다 보니까 그녀가 '면접'을 봤다는 것 아닌가? 그녀는 굉장히 큰 목소리로 친구인지 가족인지 모를 누군가에게 본인의 면접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만약 그녀도 로아에 지원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전화 통화에 어떤 힌트가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여자 : 어, 아 나 여기 진짜 내가 준비한 질문은 안 나왔다니까? 나는 여기 요즘에 홈페이지도 개편하고, 고객 대상으로 홍보도 많이 해서 그런 거 많이 준비했거든. 어. 어. 그러니까. 맞잖아.


 최근에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홍보 이벤트를 많이 한다고? 왠지 로아 얘기 같았다. 특히 로아는 요즘 홍보 이벤트를 할 때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아닌 일반인들을 기용하고 있었다.


 여자 : 어. 요즘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 데리고 와서 홍보하잖아. 난 그런 걸로 답변 엄청 많이 준비했는데, 안 물어봐. 나 그래서 막 면접 때 얼었잖아.


 맞다! 저 여자도 분명 로아 면접을 본 거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죄를 지은 것처럼 구석 자리에 더 몸을 숨기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여자 : 아, 뭐 물어봤냐면 일단 회사에 들어와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이 뭐녜.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이 뭔지 물어봤고...아 처음엔 나도 없다고 했지. 근데 무조건 대답은 해야 된대. 나 그때 완전 멘탈 나갔잖아. 


 와...나도 하기 싫은 일은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었다.


 여자 : 그니까. 그 일이 하기 싫은 이유까지 꼬치꼬치 다 캐묻더니, 그거 시키면 어떻게 일할거녜. 다 그런 질문이었어. 어떤 사람이랑 일하기 싫은지, 그 사람이랑 일해야 되면 어떻게 할 건지, 아 그리고 지금까지 로아에서 가장 실패한 일이 어떤 거 있는 거 같녜. 약간 질문 특이하지 않냐?


 난 그때부터 펜을 들고 여자의 말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일,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할 건지, 어떤 사람이랑 일하기 싫은지, 그 사람이랑 일하면 어떻게 일할 건지, 로아에서 가장 실패한 일은 무엇인지...


 여자 : 만약에 내가 실패한 일 말했는데 면접관 중에 그 일을 한 사람이 있으면 망하는 거잖아. 저격한 건데. 꾸역꾸역 말했더니, 질문이 또 뭔지 알아? '그럼 로아에서는 그 일을 왜 추진했을까요? 어떤 점 때문에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아... 진짜 멘탈 나가.


 로아에서 그 일을 추진한 이유,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일을 더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을지...


 정말 난이도 높은 면접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남겨진 로아 면접 후기에는 이런 식의 질문이 없었다. 이대로 면접을 보러 갔다면 나도 저 여자처럼 흥분하고 고조된 상태로 친구에게 분노를 털어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 시간은 1시 50분. 난 머리를 굴려가며 저 여자의 통화 내용을 기준으로 새로운 답변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보카도가 두뇌에 활력을 주는 식품이라더니, 그 덕인지 긴장 때문인지 평소보다 머리가 더 빠르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2시 30분. 난 로아 면접 대기실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나한테는 다른 질문을 하면 어떻게 하지? 생각해보니까 그 여자가 나랑 같은 직무 면접 보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어쩌지?


 난 타고난 N이었고(MBTI),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생각이 가지를 치며 불안을 건드렸다. 


 3시 50분. 결국 꽤 긴 면접이 끝났다. 어떻게 됐을까?


 난 그 샌드위치 가게에서 들었던 질문을 거의 그대로 받았다. 그 목소리 큰 여자가 스포 해준 덕에 대부분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고, 내가 생각해도 답변은 꽤 괜찮았다. 그리고 난 로아에 입사할 수 있었다. 혹시나 그 목소리 큰 여자가 같이 입사했을까 기대도 잠깐 했지만, 그녀는 내게 합격 목걸이를 쥐어주고 본인은 탈락한 모양이었다.


 내가 그때 그 샌드위치 가게에 가지 않다면, 아마 나도 로아에 입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에게도 고맙고, 그날 거기에 있어 준 샌드위치 가게에도 고마웠다. 그날 내가 샌드위치를 선택한 것도 고맙고, 다 좋았다. 


 로아에 오면서 난 연봉이 1500만 원이나 올랐다. 샌드위치가 8900원이라서 살짝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샌드위치 먹다가 연봉이 1500만 원 오른 셈이다. 참 위대한 샌드위치였다.


PS. 근데 내가 면접에서 저 질문들에 어떻게 답변을 했을지는 궁금하지 않나요?


당근을 통해 글쓰기 모임을 모집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일곱 분 정도가 모여서, 글쓰기 좋은 주제 642라는 책에서, 원하는 주제를 골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제가 고른 주제는 <샌드위치의 위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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