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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May 07. 2023

모태솔로는 소개팅 전에 준비할 게 많다

온 우주가 돕는 모태솔로들의 소개팅

소개팅 당일, 12시 35분쯤 아영이에게 카톡이 왔다.     


 ‘가고 있어. 긴장 폭발. 땀샘 폭발할 거 같아.’


 아영이는 긴장감 넘치는 메시지와 함께 셀카를 한 장 보냈다. 

 음... 머리 살짝만 더 넘기면 안 되나? 머리 살짝 넘기면 더 예쁠 것 같은데...


 아영이의 셀카를 보자마자 훈수를 두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안 그래도 긴장 폭발이라는데 괜히 우리 애 기죽이고 싶지 않았다. 부담 주고 싶지도 않았다. 아영이에게는 소개팅 나가는 것 자체가 큰 산을 넘는 일이었다. 

 

 사실 아영이는 소개팅도 연애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소개팅을 한다는 것 자체에도 엄청난 준비가 필요했다. 마음의 준비도 필요했고 마음의 준비 이상으로 물리적인 준비도 필요했다. 


 통상적으로 소개팅이라고 한다면, 옷도 예쁘게 입어야 하고 화장도 제대로 하고 가야 한다. 어떤 얘기를 할 건지, 어떤 가방을 들 건지, 어떤 신발을 신을 건지. 생각할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해 볼 기회가 없었던 아영이는 도움이 필요했다. 아영이의 소개팅 날짜가 정해진 이후에 나와 아영이, 그리고 함께 친한 친구들의 단체 카톡방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얘들아, 나 소개팅하게 됐어!’라는 아영이의 한 마디. 


 그 뒤로 우리는 소개팅 갈 때 입고 가기 좋으면서 아영이게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쇼핑몰들을 그야말로 크롤링하기 시작했다.      


로미스토리 / 세린 쇼핑몰 캡처 _ 우린 이런 이미지들을 수십장 주고 받았다.


 ‘너 약간 이렇게 뷔스티에 스타일 원피스 잘 어울릴 것 같아.’

 ‘아영이 너 약간 가을웜톤이니까, 이 색이 잘 받을 것 같아.’

 ‘가방은 흰색, 구두는 검은색이 낫다.’     


 우린 정말 저런 쇼핑몰 캡처 사진과 링크를 수십 장 주고받았다. 우리도 이 분야에 썩 전문가가 아니라서 가끔 배가 산으로 간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백지장도 맞들면 나았다.


 우리의 조언에 따라 아영이가 구매한 원피스만 5벌. 원피스와 어떤 조합인지 확인해 본 가방과 신발까지 따지면 가장 적합한 소개팅 룩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멀리 달려왔던가. 


 아영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인증샷을 보냈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인증샷을 확인했단 말인가...!


 단톡방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본인의 첫 소개팅을, 첫 데이트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쏟았다. 어쩌면 우리도 그간 이런 식의 열정을 쏟을만한 일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아영이가 소개팅 날 갈만한 식당을 물색하기도 했다. 평소 오지랖이 거의 없는 편인 내가 아영이에 관한 일이라면 유독 이렇게 되는 게 참 신기한 일이었다.

   

 잠깐 감상에 빠져 아영이의 카톡에 답장을 하지 못한 사이 아영이에게 다시 한번 카톡이 왔다.


 ‘나 진짜 고장 날 것 같아. 너무 떨려.’


 곧 고장 나버린 것 같다는 아영이에게 '잘하고 와. 잘 안 되면 또 다른 사람 찾아볼게.'라는 나만의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도 떨릴까? 


 근데 막상 아영이가 소개팅을 한다고 하니 나도 괜히 떨리고, 소개팅이 언제 끝날런지 궁금하고 기다려졌다. 며칠 전, 아영이가 소개팅남에게 처음 연락을 받은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영이는 생일이었다. 소개팅남은 아영이에게 기프티콘을 보내며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단다. 그 메시지를 보고 아영이는 이 소개팅을 더 기대하게 됐다. 그래서 저렇게 떨리겠지. 


 '현주야, 나 남자한테 이런 선물 태어나서 처음 받아 봐. 이 사람 너무 착한가 봐... 너무 고마워.'


 평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이런 선물을 받아본다는 아영이의 마음이 나한테까지 전달되고, 그 덕에 나도 참 오랜만에 설레었다. 끝까지 부정맥이 올 것처럼 떨린다는 말을 반복하던 아영이는, 그 뒤로는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지금쯤 둘이 만나서 인사를 하고 있겠지?

 그 식당은 실제로는 대화 나누기 괜찮은 곳이었으려나? 시끄럽진 않으려나?

 소개팅남을 보고 갑자기 아영이가 고장 나 버리진 않았으려나?


 그렇게 한 네 시간이 흘렀을까, 아영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현주야, 넌 내 삼신할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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