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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May 23. 2023

사기꾼은 돈을 많이 벌까?

이oo 교수는 교수님이 아닙니다.

 정량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혹자는 대한민국은 사기꾼이 돈 벌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사기꾼도 많고 종잡을 수 없는 수법들이 계속 발생한다고. 개인적으로 사기는 피해자들을 정말 피 말리게 하고, 자책하게 하는 악질 범죄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기 피해자의 자살에 대한 기사도 꽤 자주 볼 수 있다.




 "저기, 그 학교에 이oo 교수 있죠? 그 사람 좀 바꿔주세요. 빨리요. 빨리."


 대학에서 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40~50대쯤으로 추정되는 어떤 여자분에게서 이oo 교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당시 근무했던 팀이 교수들 인사와 관련된 팀이어서 그런지 아무개 교수들을 찾는 전화는 꽤 많이 왔다.


 평가위원으로 임명하고 싶은데 연락처를 몰라서 전화를 했다거나, 세미나 강연자로 초청하고 싶다거나, 원래 알던 사이인데 연락처가 궁금하다거나 뭐 그렇게 사람을 찾는 연락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그 중년 여성은 뭔가 더 다급해 보였다.


 "이oo 교수 진짜 교수 맞아요? 그러니까 정교수 맞아요? 시간강사 이런 거 아니고?"

 (뜻하지 않게 시간강사를 이렇게 표현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대학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교수들은 무척 종류가 다양했다. 소속 여부에 따라서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으로 나누어졌다. 한 개의 학교에만 소속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전임교원이라고 했고, 그 전임교원은 정규직과 계약직이 나누어지고, 연구나 학생들 진학 지원 등 어떤 것 위주로 업무를 할 것이냐에 따라 또 나누어졌다. 연차에 따라서 조교수, 부교수, (정) 교수로 나누어졌다. (가끔 조교수라고 하면 무조건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조교수는 연차에 따라 부여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조교수는 계약직일 수도 있고 정규직일 수도 있다.)


 비전임교원은 여러 개의 학교에서 일할 수 있었는데 주로 시간강사, 요즘은 겸임교수라고 부르는 분류가 비전임교원에 속했다. 은퇴한 정규직 교수는 명예교수가 되어 비전임교원에 속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 분류가 10개는 넘었다. 


 어쨌든, 중년의 여성은 이oo 교수가 '정규직 교수'인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적인 사유가 아니라면 홈페이지에 공개되지 않은 이oo 교수의 정보에 대해 확인해 주는 것은 어려웠다.


 나 - "네, 안녕하세요. 혹시 어디서 전화 주셨을까요?"

중년 - "아...그냥 빨리 알아봐 주세요. 빨리. 이oo 교수 정규직이 맞냐고요!"

나 - "죄송합니다만, 개인이 어떤 형태로 계약이 되어 있는지 확인드리기 어렵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나는 반사적으로 이oo 교수의 이름을 시스템에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어떤 검색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저 10개가 넘는 교수 분류 중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았고, 심지어 직원이나 조교 중에서도 저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 뭔가 기분이 싸했다.


나 - "선생님, 제가 방금 이oo 이름 검색해 봤는데 그런 분이 안 나옵니다. 혹시 이oo 맞아요?"

중년 - "네? 그런 사람이 없다고요? 그럼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이oo 교수가 없다는 내 답변을 들은 중년 여성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한 여학생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 학생은 연기자로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연기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날, 연기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고 있는데 갑자기 멀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명함을 건넸다.


 "학생, 혹시 연기해보고 싶은 생각 있어요? 나 xx대학 이oo 교수인데, 학생이 생각만 있으면 카메라 테스트 좀 해보고 싶어서요."

 "카메라 테스트요?"

 "괜찮으면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독립영화에도 출연하고 우리 대학 수시로 입학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멀끔한 차림 때문인지, xx대학 교수라는 명함 때문인지, 그 여학생은 이oo교수를 따라나섰다. 이oo 교수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한 스튜디오였다. 처음에는 웃는 얼굴, 간단한 연기 영상을 찍었다. 그러다가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옷을 하나씩 벗어야 했다. 결국 여학생은 상의를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카메라 앞에서 무용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뭐에 홀린 듯 촬영을 마치고 집에 온 여학생은 점점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이oo 교수 이름을 검색해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된 것이다.




중년 - "근데, 선생님. 저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oo 교수가 진짜 그 학교 교수가 아니에요? 그럼 우리 딸을 왜 찍어간 거죠?"

나 - "어머니, 빨리 경찰에 신고하셔야 될 것 같아요." 

중년 - "아...그지 경찰에 신고해야 되죠? 네. 그럴게요.. 네... 네."


 중년 여성은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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