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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제생맥주 Jun 27. 2021

300억 청구 소장을 받았는데요.

빛 좋은 개살구


나는 감기에 잘 걸리는데, 가끔 약으로 낫지 않는 감기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간다.


어쩔 수 없다는 표현을 쓴 것은 병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내 혈관에 바늘을 넣을 때 가끔, 행여나 잘 못 놓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별 것도 아닌 내과 치료에도 난 병원문을 연 순간부터 빠른 스캔으로 병원 여기저기를 보며 시스템을 점검한다.

 

'여긴 얼마나 오래된 병원이지? 직원은 몇 명인 걸까? 의사는 얼마나 전문성 있을까?'


하물며 감기로 오는 내가 이런데, 심각한 병으로 대형 병원에 가야만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을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울까.


나도 처음부터 병원이 무서웠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몇 번 겪었던 일련의 병원 관련 소송에서 병원은 생각보다 시스템이 없이 운영되었고, 의사가 아닌 사람이 실질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빈번하며, 그 속에서 의사들도 책임감이 없이 환자들을 맞이했다. 


이렇게 시스템이 합법적으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는, 결국 의사의 의사로서의 직업윤리와 병원을 통해 수익을 내고자 하는 실제 경영자와의 갈등이 촉발할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그 병원과 의사를 믿은 환자들이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난 후, 외상 후 스트레스처럼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많이 두려워졌다.






오래간만에 퇴근이 이르던 저녁 7시경,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상담이 오는 시간은 아닌데, 전화를 못 받았음에도 다시 전화가 오는 걸 보니 꽤 급한 일인 것 같았다.


전화를 건 남자는 특별한 설명 없이 회사의 이사회 분쟁 소송을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이 끝나자 바로 자기 사건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한 건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미팅에서 만난 남자는 성이 오 씨였고, 다급했던 전화 목소리와는 달리 외모가 상당히 말끔했다. 원단이 좋아 보이는 정장은 몸에 맞춘 듯 잘 맞았다. 눈빛이 또렷했고, 눈을 또렷하게 보이기 위해 얼굴에는 가벼운 화장이 되어있었다. 


'다급한 와중에도 자신을 상당히 단장하고 온 남성'


보통은 소송을 당하면 자신이 어떤 몰골로 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그는 이제까지 방문한 남성 의뢰인들과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모든 발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외모만 보아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물을 한잔 들이켠 후 담담히 말을 시작했다.


"저, 일단 300억 청구 소장을 받았는데요."


"300억이요?"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 종류에 따라 억 단위 이상의 청구소송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7,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고, 1,350원의 지하철 비용을 내는 나는, 그나마 변호사를 하면서 억 단위 이상의 숫자에 둔감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담담히 300억을 부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300억 소송의 피고가 되었다는 오 씨의 표정은 평온했다. 이미 포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당연히 이길 수 있는 소송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서울 ** 피부관리실과 베트남 피부관리실 두 군데의 대표이사였다고 했다. 남자치고 말끔한 피부결은 그 때문인 듯했다.


"베트남 투자 법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아서 한국과 베트남에 피부관리실 운영을 했는데, 지금 베트남 대표 지위는 빼앗긴 상황이고요."


"문제는 베트남 쪽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저의 모든 걸 빼앗길 상황입니다."


모든 걸 빼앗길 것 같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그는 눈가가 붉어졌다. 다시 자세히 얼굴을 보니, 마냥 깨끗한 얼굴은 아니었다. 감춰진 표정의 깊은 곳에는 수심과 풍파가 있었다. 



내가 꿈꾸던 단 하나.



오 씨는 잘생긴 외모 때문에 한때는 배우를 꿈꾸기도 했다. 그렇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배우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어렸을 때부터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고 한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을 병행했고, 이른 나이부터 겪었던 다양한 삶의 경험은 그에게 패기와 더 큰 꿈을 가져다주었다.


대학을 어렵게 졸업한 후 그는 화장품 업계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했다.


고객의 수요 파악을 잘하는 마케팅 능력 덕에, 회사 입사 몇 년 후 대형 성형외과의 마케팅 팀장으로 스카우트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행정일을 배웠고, 그 후 이런저런 병원에 이직해서 지속적으로 업무를 하다 보니 병원의 시스템, 생리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병원이 수익을 내는지도 누구보다 전문적으로 알게 되었다.


오 씨가 성형외과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화려했다. 병원의 의사들은 좋은 집에 비싼 외제차를 탔고, 명품으로 치장한 VIP 손님들은 오 씨도 그에 걸 맞는지 확인하는 듯, 늘 그를 아래 위로 확인했다.


'모두 빛 좋은 개살구들 아닌가, 그렇지만 개살구인지 살구인지 알게 뭐람'


외형의 아름다움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신선 검열은 통과가 어렵지 않았다. 진실로 빛나는 삶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도 늘 화려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는 엄밀히 월급쟁이 었지만, 고객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리해가며 비싼 옷과 비싼 시계를 구입했다. 그러나 무리를 해서도 도저히 살 수 없는 것도 있었고, 그의 위시리스트에는 억대를 호가하는 외제차가 자리했다. 





병원을 찾는 VIP고객은 상당수 사업가였다. 


'사업을 해야 돈을 벌지, 백날 월급쟁이로는..'


돈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평소 그의 아이디어가 참말로 좋아서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오씨는 조금씩 자신이 기업을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자리 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미용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공간이 많지만, 오씨가 처음 관련 업계에 종사할 때만 해도 그러한 곳이 많지 않았고, 더욱이 해외 시장을 타겟으로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오씨는 한류 시장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외국인들이 피부 관리를 받고 동시에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화장품을 파는 등, 미용과 관련 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 관광 명소를 만들면 정말 대박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를 데려가려는 좋은 자리들이 늘어가고 경험도 늘어갔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늘 그를 공허하게 했다. 




그는 수 년간의 고민 끝에 사업을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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