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제생맥주 Nov 19. 2021

알 수 없이 새는 돈(2)

내가 모르는 약정서


입출금 내역을 모두 복사한 그는 S 대표를 만나기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회사 일을 도와주던 회계사를 찾아갔다. 회계사는 일단 베트남 법인에서 작성된 현지의 회계장부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했다. 


오 씨는 베트남 법인 측에 회계장부를 요청했다. 실무자들은 일주일 후 회계 장부가 아닌 입출금 내역을 엑셀로 정리한 표를 보내왔다. 오 씨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대로 C라는 법인으로 계속적으로 출금이 되고 있다는 표시가 있었다.


오 씨는 베트남 법인 실무자에게 출금 내역의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이 돈이 왜 도대체 이쪽으로 빠져나가는 거죠?



"대표님, 이 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한 약정서가 있습니다."


베트남 쪽 실무자가 답을 해왔다.


'내가? 내가 그런 약정서에 사인을 했다고?'


어떠한 약정서를 쓰려면 단독 대표인 자신이 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그러한 수수료 약정서를 작성한 기억이 없었다. 물론 너무 많은, 분명하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 모든 계약서 작성은 최고급 식당 혹은 호텔의 금빛 조명 아래에서 이루어졌고, 계약서 작성을 독촉하는 건배가 자신의 옆에서 오고 갔던... 기억뿐이었다.



'하아... 이런, 계약서 사본도 없네'


자신이 사인을 했던 수 십 가지의 계약서 어떤 것도 사본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어쩌면 이건 게임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베트남에 연락하여 수수료 약정서를 보내달라고 하였으나, 역시나 그들은 보내주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계약서의 위변조를 마음먹는다면, 그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결말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억지로 지워버리고 강남 영업소로 향했다. 자신의 방 문 앞에 직원 몇몇이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대표님.... 저... 지난달 임금이.. 어려우시겠죠?'


풀 죽은 직원들이 모두 자신을 원망하는 듯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고, 소파에 주저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저녁 10시, 집은 고요했고 창 밖에는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비행기로 오가며 새로운 꿈을 꾸었던 기억.


베트남 공항에서 작별의 인사를 할 때 만해도 S 대표는 오 씨의 손을 꼭 잡고 악수를 해주었다. 모든 게 오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때 그렇게 좋았는데, 이럴 리가 없잖아 ㅎㅎ'


지금 베트남은 오전 9시였다. 아, 그래 아까 베트남은 새벽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오 대표는 S 대표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수 십 번을 전화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베트남 법인 직원들도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는 위스키 한 병을 비우고 그대로 쓰러졌다.







'띠리 리리---'


'여보세요'


'어디야 너'


박 씨였다. 오 씨는 새벽부터 집으로 찾아온 박 씨를 만나 상황을 이야기했고, 박 씨는 크게 한 숨을 쉬었다.


'변호사한테 가보자'


오 씨는 한 번만 더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나도 베트남에 당신못지 않게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업무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상장회사가 멀쩡하게 버틸 수 있을것 같나요?' 


그는 최후의 통첩을 메신저로 남겼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을 기다렸고, 한국의 영업소는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어쩔 수 없이 오 대표는 변호사를 통해(내가 아닌 다른 변호사) A 대표를 상대로 횡령죄 고소를 진행했다. 고소인과 피의자 조사가 끝나고, 대질 조사가 시작되었다. 변호사는 S 대표가 베트남인이기 때문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S 대표는 생각보다 순순히 한국의 경찰서에 출두했다. 처음 보았던 그 온화한 미소와 함께.


오 씨는 S 대표를 쏘아보았고, 왜 연락을 받지 않냐고 크게 소리치며 다가갔다. S 대표의 변호인단은 그를 막아섰다. S 대표는 오 씨가 왜 이러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오 씨를 바라보았다. 


수사관은 인출 내역을 가르키며 집중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이 돈이 어떤 이유로 C법인으로 인출되는 건지 말해줄 수 있나요?'


'총 얼마가 인출된거죠?'


경찰의 질문을 통역사는 S 대표에게 전달했고, 그녀는 수수료 계약서를 제출했다. 아마도 이 계약서에 근거해서 지급한다는 설명 같았다. 


그는 낚아채 듯 계약서를 빼앗았다. 전혀 본 적 없는 계약서에 자신의 도장이 찍혀있었다.


"저기 수사관님, 저는 모든 계약서에 제 이름을 직접 만년필로 서명합니다. 이렇게 도장을 찍는 경우는 없어요. 위조가 분명합니다."


그는 실제로 모든 사인을 S 대표가 선물한 몽블랑 만년필로 사인을 했다. 생경한 도장, 위조가 분명했다. 계약서를 흔드는 오 씨의 모습을 S 대표는 담담하게 바라봤고, 수사관은 계약서는 열람 등사가 불가능하다며 오 씨에게서 계약서를 낚아채서 가져갔다. 


그리고 수사관은 오씨에게 말했다.


'대표 도장이 찍혀있으면, 끝인거 몰라요?'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알 수 없이 새는 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