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끼랑 산다. 매일 아침 알람이 미처 울리기도 전에 침대 위로 무언가 깡충 뛰어 올라온다. 그녀의 이름은 햇살. 나의 가족이다. 작은 공원에서 태어나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던 토끼다. 내 품에 온 후 나는 가장 먼저 이름을 지어줬다. 인생에 따사로운 볕만 비추라고 붙여 준 이름이다.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지고 있고, 긴 속눈썹이 참 예쁜 토끼다. 햇살이가 침대에 올라온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달콤한 사료를 어서 달라는 신호다. 내가 조금이라도 잠에 취해 지체하면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 머리카락을 앞니로 콕 물어 잡아당긴다. 그러면 나는 이 귀여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주섬주섬 서랍을 열어 사료를 건네면 햇살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사료를 꼭꼭 씹어 먹기 시작한다. 햇살이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잠을 방해 받는 건 싫지만 나도 이 소란스러운 아침이 사실 꽤나 마음에 든다.
토끼를 만난 후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내 방은 이제 더 이상 내 소유가 아니다. 햇살이를 위한 풀과 사료가 방 곳곳에 자리했다. 화장실 겸 휴식처는 어찌나 큰지 내가 햇살이 집에 얹혀사는 꼴이 됐다. 그래도 나는 크게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매일 봐도 귀여운 햇살이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물먹는 모습도, 앞니를 뽐내며 하품을 하는 모습도 전부 사랑스럽다. 가끔은 회사 생활이 힘들다며 햇살이를 붙잡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햇살아, 엄마가 사룟값 번다고 얼마나 힘들지 알아?” 그러면 햇살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그저 두 귀를 흔든다. 두 귀를 한참 흔든 뒤에 또 간식을 달라고 보챈다. 그 모습에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전부 잊고 또 피식 웃고 만다.
행복이란 게 뭐 별건가 싶다. 살아 갈 의미를 주는 것이 또 뭐 그리 거창한 것인가 싶다. 내 옆에 웃음을 주는 햇살이가 있고, 햇살이 사룟값을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오늘도 아침부터 우리집 토끼는 요란스레 나의 잠을 깨운다. 그러면 또 나는 못 이긴 척 잠에서 깨어나야겠다. “햇살아~ 사료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