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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Nov 10. 2023

친구

사실 나는 친구와의 영원한 우정이니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니 하는 낭만적인 말들은 믿지 않는다. 인간의 관심 우선순위는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을 모든 일의 중심에 두고, 자신을 제외한 여타의 것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존재가 (자신의 존재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며 새삼스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왜일까? 아마도 친구는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시기에 그 존재 의미가 두드러지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잘 채워줄수록 좋은 친구라고 느끼면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유년시절, 친구는 놀이동무였다. 같이 모여 뛰어놀던 개구쟁이 시절 우정보다는 누가 누구를 이기고 누구에게 진다는 서열이 관계를 지배했지만 (실제 싸움을 해보지도 않은 채 서열이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리 심각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며 서열이 정해주는 긴장보다는 만나서 뛰어 놀 때의 천진난만한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친구간의 우정은 만나는 빈도가 높은 순서에 따라 깊이가 결정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빈번하게 만나는 또래 중 몇몇 녀석들과 새끼손가락 걸며 동맹(?)을 맺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이때의 친구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효과적으로 채워주는 역할보다는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 친구로 제한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친구는 같이 놀아주는 역할에 더해 통하는(?) 역할이 추가된다. 통하는 친구는 친한 친구이다. 너랑은 통하는 게 있어 라고 말하는 사이는 우정이 돈독한 사이인 것이다. 둘 사이의 비슷한 가정환경, 또는 유사한 고민거리, 기호에 대한 공통점 등등 다양한 부분에서 통할 수 있으며 이런 것들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많을 경우, 친구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어루만지며 큰 위로를 줄 수 있다. 놀기에 더해 정신적인 부분에도 위로와 충족을 주었던 존재였기 때문일까? 이 시절의 친구는 현재까지도 관계가 유지되며 누가 물으면 가장 우정이 깊은 친구라고 대답하게 되는 후보 일 순위로 꼽힌다. 또한 영원한 우정이니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니 하는 대상이 생기는 시절이기도 하다. 마치 이성간 사랑의 맹세를 하듯 우정을 맹세하며 일기장을 알록달록 스케치북으로 만드는 시절이다. 

     

 이제 중년이 되어 친구를 생각해도 변한 건 별로 없다. 여전히 친구는 놀이동무이며 나와 공감하고 통하며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이다. 단지 순수했던 시절에 가졌던 ‘우정의 맹세’, ‘영원한 우정’ 등과 같이 상대방에게 반 강제적으로(?) 요구했던 유치한 의무조항들이 빠졌을 뿐이다. 반면, 공감의 영역은 더욱 확대되었다. 인생의 다양한 풍파와 희노애락을 경험하며 쌓인 중년의 회한은 고스란히 공감의 영역으로 옮겨져 굳이 말을 안해도 서로의 아쉬움과 부족한 부분을 어루만져준다. 지금의 나의 시기이기도 한 이 시기는 과거를 회상하고 복고하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나간 시절이 아름답게 기억되어 그 아름다운 기억을 현재로 이어지게 하여 새삼스레 다시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과거의 사진 한 장을 들춰내어 사진 속 멤버들을 부추기며 그 때의 사건을 재현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시간의 일방통행이라는 속성은 누구에게나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을 남긴다. 이러한 아쉬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를 더해가기에 중년을 넘어선 우리에게 무엇인가 총족되지 않는 정서적인 허기가 찾아오며 이를 채워줄 친구의 존재가 더욱 절실해 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는 거기에 순응하자. 친구와 함께 정서적인 허기를 채워보자. 영원한 우정을 맹세했던 사진 속 친구를 꼬셔내어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양팔을 벌려 할리를 타자! 대륙을 횡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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