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ep Walking Nov 16. 2023

시.지.사.(2)


 8시 30분이 되자 팀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타난 인물은 눈치 빠른 이 승언 대리였다. 그는 오늘이 김 부장 출장 복귀일임을 알고 있었고 그의 생활 습관을 잘 알고 있던 터라 9시 이전에 출근해 자리를 지키고 있을 줄 짐작하고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캐리어에 들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와서는

“부장님 고생 많으셨죠? 따뜻한 커피한잔~~~~” 

하며 캐리어에 있던 두 잔의 커피 중 하나를 건넸다. 마침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있던 김 부장은 커피를 받아들며 이 대리에게 미소 지었다. 

“굿모닝! 이 대리... 역시 나 생각해주는 사람은 이 대리 밖에 없어...별일 없었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충! 성!”

너스레를 떠는 이 대리의 약삭빠른 속이 보였지만 김 부장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잠시 후 김 신재 과장과 박 선미 대리가 나타났다.  

“부장님 바로 출근하신 거예요? 집에 들러서 좀 쉬시고 천천히 나오지 그랬어요? 하여간 우리 부장님은 워크홀릭이셔~~~”

 김 신재 과장이 외투를 벗어 걸며 말했다. 김 과장은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김 부장을 도와 신제품 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본인의 고유 업무 이외에도 팀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팀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직책이 과장이지만 김 부장과는 사실 동갑내기였다. 

 박 선미 대리는 좀 까칠한 성격의 노처녀인데, 제작도면을 작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고 평소 할 말은 하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때때로 팀원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매사에 빈틈없이 보이다가도 어이없는 허당 끼를 보이기도 해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박 대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김 부장에게 가벼운 목례만을 건넸다. 


 회사의 R&D센터 조직은 크게 3개 부서로 나뉘는데 기구설계를 담당하는 연구1팀,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연구2팀,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연구3팀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연구1팀은 제품의 기획업무까지 병행하고 있었고 김 부장은 연구1팀을 이끌고 있었다. 

 연구1팀은 제품기획과 설계 전반을 담당하는 김 신재 과장, 기구 설계를 담당하는 이 승언 대리, 도면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박 선미 대리, 박 선미 대리 밑으로는 캐드 도면만 그리는 계약직 사원 3명이 있었고 박 대리는 이 계약직 직원들의 관리도 맡고 있었다. 연구원으로서의 팀원의 막내는 3개월 차 신입사원인 정 류빈이었고 정부 지원 과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계약직 캐드 인력을 제외한 연구1팀의 팀원 중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출근했다. 

 김 부장은 항상 출근 시간 9:00에 그날의 주요 일정과 각자 할 일에 대해 공유하는 간단한 미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회의 시간은 10분을 넘기지 않았으며 특별한 이슈가 있는 팀원이 있으면 회의를 마치고 별도로 불러 논의했다. 

 사무실 기둥에 걸려있는 커다란 디지털시계의 붉은 다이오드가 09:00으로 바뀌었다. 

“자~ 잠깐 커피 타임 가집시다.” 

 김 과장이 부장을 대신하여 아침 회의를 호출하는 것과 동시에, 연구1팀의 마지막 출근자가 나타났다. 출근 시간을 정확히 맞추어 등장한 마지막 팀원은 입사 3개월 차의 정 류빈이었다. 김 부장은 느릿느릿 걸어 들어오는 류빈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한마디 하려다가 참았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근 시간에 대해 몇 번 지적했음에도 바뀌지 않는 그의 태도에는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류빈은 팀장인 자신이 지켜보고 있으면 서둘러 들어오는 시늉이라도 하며 미안한 기색을 보여야 하는 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태연하게 인사를 했고 조급함이나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긴 출근 시간으로 규정되어 있는 9:00를 넘긴 것은 아니니 지각은 아니었다. 

 김 부장은 류빈과 같은 젊은 세대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 생활방식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김 부장 자신도 개인주의자라고 자처해 왔지만 일단 조직 내 구성원이 되었으면 조직에서 요구하는 문화에 어느 정도 순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이 조직원으로서의 예의라고 여겼다. 그러나 류빈은 조직 문화에 순응 어쩌구 조직원으로서의 예의 저쩌구 하는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자기 행동에 당당했다. 나이에 안 맞게 여유 있는 행동거지도 그의 앳된 얼굴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팀원들이 모두 착석한 걸 확인하고 김 부장이 말을 꺼냈다. 

“류빈 씨...오늘 기계연구원과 공동개발하고 있는 정수 처리 장치 PT자료 초안 검토하기로 했는데...오늘... 볼 수 있는 거지?”  

 김 부장이 물었다. 

“퇴근 시간 전까지 끝내겠습니다. 팀장님.”    

“퇴근 시간에 마치면 내가 검토할 시간이 없는데...오전까지 안 되겠어? 그거 1주일 전부터 부탁한 건이잖아” 

“......저는 오늘까지 완료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조금 서두르면 오전까지 마칠 수 있지 않겠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

“제가 같이 좀 도와서 오전까지 마치겠습니다.”

분위기가 안 좋아질 뻔한 걸 김 과장이 끼어들어 무마했다. 오늘 아침 회의에서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각자 할 일에 대해 짧게 공유하고 서둘러 회의를 마쳤다. 자리에 돌아 온 김 부장은 영 마뜩치 않았다. 아니 신입사원이 부장의 지시에 어찌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 걸까? 정해진 업무 마감 시간보다 항상 일찍 아웃풋을 내는 자신의 스타일과는 너무나 다른 류빈의 업무태도가 못마땅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일에 대해 애달파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다. 류빈으로부터 시작된 불만이 젊은 세대 전체에 대한 불만으로 번져나갔다. 시간 관리에 대해 조언이라도 조금 할라치면 앞에서는 경청하는 척하다가도 뒤돌아서서는 꼰대로 치부하는 젊은 세대들의 경솔함과 어리석음이 안타까웠다. 지혜로운 젊은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만한 것은 겸손하게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지혜로운 젊은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회의를 마치고 이 승언 대리와 박 선미 대리는 마시던 커피잔을 들고 5층 복도 끝에 있는 휴게실로 쪼르르 달려갔다. 휴게실에 군데군데 서 있는 사람들 틈 한 편에 알맞은 공간을 찾아낸 두 사람은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그리로 천천히 이동했다. 전자 담배에 담배를 끼우며 이 승언 대리가 말했다.

“류빈 씨는 어찌 그리 눈치가 없지? 어리버리한 건지 고집이 센 건지... 오전까지 완료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부장님~ 딱 이렇게 대답하면 간단하게 넘어갈 걸.”

“아니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부장님이 오늘까지 마치라고 해서 오늘 퇴근 전까지 마친다고 한 건데...괜히 부장님이 자기가 하던 데로 마감시간보다 일찍 끝내라고 요구하는 게 오바지...”

박 대리가 류빈을 옹호했다. 

“그래도 그렇지... 출근도 정각 9시 되어야 나타나고, 업무시간에도 느릿느릿, 여기저기 잡담하는 데는 잘 끼어들고...그런 시간 조금만 줄이면 부장님 시키신 건 벌써 다했겠다. 하여간 자세가 영~ 글렀어”

이 대리는 김 부장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류빈의 여유 있는 생활 태도와 서두르지 않는 업무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류빈 씨가 약속 어기는 건 한 번도 못 봤어요...업무마감도 다 지키고...그리구 말에요” 

박 대리는 눈을 반짝이며 이 승언 대리에게 바짝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내가 입사 때부터 주욱 지켜봤는데...출근 시간 9시를 넘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딱 9시 정각이 되면 나타나~ ㅋㅋ 어디 숨어 있다가 그 시간 되면 나오나 봐 ㅋㅋ ”     

 류빈은 사실 약간 괴짜 같은 면이 있었다. 박 대리의 지적대로 출퇴근 시간이 누구보다 정확했다. 김 부장과 쌍벽을 이룰만했다. 단지 김 부장은 출근이 한 시간 빠르다는 것과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 다를 뿐, 두 사람이 아침에 사무실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따로 시계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또 다른 특징은 항상 즐겁다는 것이다. 업무시간 내내 지루한 내색이 없고 얼굴엔 항상 웃음기를 띠고 있다.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는 경우는 그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뿐이었다. 

 때때로 개발 제품에 대한 자료를 조사한다거나 PPT를 작성하고 있을 때 미소가 사라진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얼굴 모습은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 눈동자는 모니터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눈 깜박도 거의 없으며 꾹 다문 입술을 앞으로 삐죽 내밀고 있어서 꼭 생각하는 원숭이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이외의 시간 대부분은 유쾌하고 중간중간 잡담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박수치며 웃기도 하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리고 류빈은 메모광이었다. 휴대용 태블릿을 항시 몸에 지니고 다니며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심지어 식사할때에도 태블릿을 옆에 두고 있으며 잠깐 잠깐씩 무엇인가를 기록했다. 

작가의 이전글 시.지.사.(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