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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Nov 18. 2023

시.지.사.(3)


 저녁 6시가 되어 오랜만에 김 부장은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쌓인 출장의 여독을 풀기도 해야겠거니와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업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류빈이 6시에 PT자료를 보고했다면 그것을 검토하느라 퇴근이 늦어졌겠지만 김 과장이 도왔는지 어쨌는지 PT자료는 점심시간 전에 올라왔고 그 내용은 손 볼 것 없이 완벽했다. 자신이 의도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었고 그 내용을 담은 장표의 순서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PT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었다. 발표 자료를 검토한 김 부장은 흡족한 마음이 들었고 류빈에게 가진 불만이 약간은 누그러지는 마음이 들었다.       

 상도동 집에 도착하여 도어록 코드를 누르고 현관에 들어섰다. 7시가 다 되었는데도 거실에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아직 아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신도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거실 불이 갑자기 켜지며 귓속에 딱 하는 소리의 울림이 고막에 닿아 멎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아들 녀석이 터진 폭죽을 천장 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 옆에는 아내와 딸이 박수치를 치며 서 있었다. 김 부장은 어안이 벙벙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저쪽 식탁 위에 촛불이 켜져 있는 케익을 발견하고 그제서야 이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아빠 생일 축하해~~” 

 초등학생 딸이 달려와 안기고 뒤이어 아들 녀석도 머뭇거리다 달려들었다. 

“시간을 지배하는 사나이씨~~~!! 이름을 좀 바꾸시죠 생.까.사.라고...생일을 까먹는 사나이~~!”
 김 부장의 아내가 팔장을 낀 채 눈을 홀기며 비꼬았다. 

“어서 와서 저녁 먹어요”

식탁에는 아침에 못 얻어먹은 미역국이 따뜻한 밥과 함께 차려져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무 계획이 없던 김 부장은 서재에 파묻혀 생각에 잠겼다. 출장동안 쌓였던 피로가 몰려왔지만 잠은 오지 않고 머리는 각성해 있었다. 평소에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회사생활과 퇴근 후 생활의 불균형에 대한 인식이 어쩐지 오늘은 의식의 이편으로 건너와 신경이 쓰였다. 집으로 돌아와서의 무방비 휴식은 낮 동안 전력을 다한 자신의 열정과 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인식의 파편이 남아 자신을 괴롭혔다. 그것이 무엇일까? 김 부장은 사라져 가려는 그 파편을 추적하기 위해 생각을 집중했다. 철저한 시간 관리자로 회사에서 정평이 나 있는 자신이지만 어이없게도 자신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모순은 무엇이란 말인가? 

 김 부장이 신입사원이던 시절, 그는 자신의 일에서 전문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고 있었으며 동시에 업무 이외의 삶에서도 만족을 얻는 균형 잡힌 직장생활을 해 나가리라 다짐했었다. 학창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특히 기타 연주 실력이 출중하여 고등학교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었다. 그 특기를 살려 직장 동호회를 만들어 밴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간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때부터 그에겐 시간 관리가 습관이 되었고 나름 시간 관리에 대한 노하우도 쌓였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의 균형 잡힌 생활은 깨지기 시작했고 회사 업무에만 가중을 두는 불균형한 시간 관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의문점은 바로 이와 관련된 문제였다.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사람과 회사 밖에서 만족스런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며칠 후 김 부장은 연구소 내 팀장들과 모처럼 만의 저녁 식사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연구 2팀장인 강 부장의 아들이 재수 끝에 인서울에 성공하여 강 부장이 한턱쏘는 저녁 자리였다. 강 부장이 김 부장과 연구 3팀의 조 부장 해서 팀장 세 명만 부른 조촐한 자리였다. 팀장 3인방은 이렇게 가끔 저녁 술자리를 갖곤 했다. 

 강 부장은 김 부장의 같은 대학 3년 선배였지만 전공은 달랐다. 강 부장은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회사 제품에 탑재하는 디스플레이나 제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팀장이었다. 

 일행은 회사 주변의 일식집 ‘국수사’에 모였다, 국수사 내부 중앙엔 주방장이 초밥을 빚고 요리 준비하는 것을 의자에 앉은 손님들이 보면서 주문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중앙으로부터 사방으로 구획된 칸막이 방에는 저마다 손님들이 차 있었다. 내부 조명은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홀 내부를 비추고 있었고 그 흐릿한 조명 빛으로 인해 칸막이 방에 들어있는 손님들은 왠지 소곤소곤 속삭이며 얘기해야만 하는 듯 보였다. 

 강 부장과 일행은 미리 예약한 적당한 크기의 칸막이 방으로 안내되었다. 잠시 후 정갈하게 준비된 음식들이 차례차례 서빙되어 나오고, 몇 차례 술잔이 오가며 이런저런 회사 얘기들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김 부장은 강 부장 아들의 입학을 축하했다.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그 어렵다는 인서울에 성공했으니 이제 자식 걱정은 한시름 놓아도 되겠어요. 앞으로 그 입시 노하우 좀 부탁드립니다. ㅎㅎㅎ ”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입시전쟁이란 표현이 딱 맞아~ 나야 머 한 게 있나? 마누라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다 했지~”

강 부장은 따뜻한 사케 한잔을 원샷으로 흡족하게 목에 털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머 이게 시작이지...대학 졸업하면 또 취업 경쟁에 시달릴텐데... 요즘 청년 세대들...정말 치열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그래도 우리 젊은 시절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야...”   

이야기는 요즘 청년 세대들의 힘겨운 삶에 대한 얘기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가 너무 심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거 같아요...난 도통 걔네들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김 부장이 불만스레 덧붙였다. 

“하하하 김 부장이 젊은 직원들한테 불만이 많았구만~” 

연구3팀 조 부장이 끼어들었다. 조 부장은 하드웨어 팀을 맡고 있었는데 연구1팀과 겹치는 업무가 많았고 일을 설렁설렁한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회사 업무보다는 사적인 취미 생활에 더 관심이 많았다. 김 부장은 자신보다 3살이 많아 선배 대우를 해주고는 있지만 그런 조 부장을 내심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회사란 게 조직이잖아요...조직 문화라는 게 있고...그럼 최소한 그 문화에 순응하고 맞춰줘야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데...요즘 젊은 직원들은 그런 개념이 전혀 없는 거 같아요” 

 김 부장은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참치 회 한 점을 간장에 살짝 찍었다가 말을 끝낸 후에 입에 넣었다. 강 부장과 조 부장은 김 부장이 에둘러 말한 요즘 젊은 직원들이 신입 3개월 차 정 류빈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았다. 강 부장이 말했다.

“우리 팀에도 젊은 직원이 있긴 한데...김 부장 말마따나 제멋대로인 면이 좀 있어...그래도 1팀의 류빈 씨는 평판이 좋던데? 항상 즐겁고 일도 잘하고 안 그래 조 부장?”  

“그러게...류빈 씨는 보기 드문 젊은이지...” 

강 부장과 조 부장은 동갑내기로 사석에선 말을 편하게 하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류빈 씨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분이 몰라서 그렇지...이 친구 정말 답답해요...뭘 시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어찌 그리 태평한지...젊은이다운 민첩함이 안 보여요..”

김 부장이 반박하며 말해놓고 보니 어쩌다가 정 류빈의 뒷담화가 되어 버렸다.  

“류빈 씨가 민첩하지 못하다는 건 김 부장이 몰라서 그런 거야...내가 아는 류빈 씨는 대단한 젊은이야...”

 조 부장은 정 류빈에 대한 뜻밖의 정보를 알려주며 김 부장의 평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조 부장은 정 류빈과 같이 사내 독서모임 동호회 회원이라고 했다. 2주에 한 번꼴로 정해진 책을 읽고 와서 그 주제에 관해 토론하고 발표도 하는 모임인데 그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류빈 씨고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는 것이다. 

 모임에서 추천하는 책이 철학이나 심리에 관한 서적이 많아 꽤 어려운 편이고 자신은 2주에 한 번꼴로 책 한 권을 읽어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류빈은 정해진 책 이외에도 관련된 책 두세 권을 더 읽고 와서 내용을 소개해주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조목조목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지식의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방면으로 해박하여 나이를 의심할 정도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책을 읽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어떻게 매번 그 많은 양을 읽어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 부장은 류빈이 업무시간에 책을 읽는다거나 딴짓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주어진 일을 정해준 시간에 꽉 채워서 하는 것이 그의 업무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잉여 시간을 활용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날 저녁 술자리는 강 부장과 조 부장의 정 류빈에 대한 칭찬 일색으로 끝났고 김 부장은 자신이 류빈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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