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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p Walking Feb 16. 2024

이중섭과 고흐

 두 예술가는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고 죽은 뒤에야 작품의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화가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고흐는 후기인상파 화가로 분류되는데, 후기인상파는 인상파의 색채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인상파의 객관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화가 자신의 개성이 개입되어 격렬한 정신의 표현과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다. 이중섭은 아직 한국의 서구 근대화의 화풍이 자리 잡지 못한 시기에 활동하며,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격렬한 정신의 표현과 강렬한 색채를 볼 때 나는 개인적으로 후기인상파의 특징을 더 강하게 느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중섭은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산학교의 유학파 미술선생인 임용련의 지도를 받아 그 영향을 받았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아내가 될 여인, 발가락 군(이중섭은 연인 마사코를 이 애칭으로 불렀다)을 만난다. 둘은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마사코에게 이남덕이라는 한국이름을 지어주었다. 이중섭과 그 가족의 불행은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그의 형이 자본가 계층으로 몰려 수난을 당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결국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제주도로 옮겨 서귀포에서 11개월간 머무른다. 서귀포 생활 이후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이중섭은 가족을 일본에 보내야 했고 결국 험한 생활고로 건강을 크게 해치고 1956년 39세라는 한창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이중섭의 불행한 삶 가운데에서 11개월간의 서귀포 생활은 그나마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몇 년 전 제주도에 놀러갔을 때 이중섭이 서귀포 시절 기거하던 자택을 둘러보았다. 1.4평짜리 방 한 칸에서 네 식구가 살며 게를 잡고 부추를 뜯으며 연명했던  힘겨운 삶이 보였지만 동시에 살을 부대끼며 정을 나누던 그 애절하면서도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풀경>

 이중섭은 소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소는 일반적으로 유순한 동물로 상징되지만 한번 용을 쓰면 무엇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폭발적인 힘을 뿜어낸다. 

<이중섭: 흰소>

 소를 그려낸 역동적인 붓 터치는 그 강렬한 힘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고 적절히 강조된 굵은 선의 농도와 배치, 색의 대조는 세부적인 묘사 없이도 소의 특징을 놀라울 정도로 잘 드러낸다.  미술평론가 김인환은 이렇게 묘사했다.       

 “작가의 격렬함과 집념, 우직함과 자연스러움, 야만성, 고뇌와 연민, 환상과 방랑성, 갈망, 광기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김인환,<공간>,1978년 9월호) 


이렇게 작가의 정신이 작품에 강렬하게 개입되는 예는 고흐의 그림에서도 발견된다.               

<고흐: 두송이 해바라기>

 고흐의 ‘두 송이 해바라기’를 보면 작품에 개입된 강렬하고도 힘찬 작가의 외침이 해바라기의 잎과 줄기와 색채와 붓 터치에 그대로 드러난다. 두 예술가는 한 가지 그림 소재에 꽂히면 그 소재를 반복해서 끊임없이 그려대는 경향이 있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쉴 새 없이 그렸고 이중섭도 같은 소재를 반복해서 그렸다. 수많은 동일 소재의 작품이 그려졌지만 화가가 나타내려는 바는 일관되게 표현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대중들은 왜 이중섭과 고흐의 그림에 매료되는 걸까?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예술 평을 곁들여 대중의 기호를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나의 경우를 들어 그 이유를 유추해 보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첫째, 두 예술가의 드라마틱한, 그것도 비극적인 삶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예술가의 삶이 모두 비극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굴곡 없이 평범하게 살다간 예술가의 이야기보다는 불우한 삶속에 피워낸 예술혼이라는 스토리 전개가 대중에게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이중섭의 불우한 삶처럼 고흐 또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개신교 목사의 6남매 가운데 맏아들인 반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인간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성직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고 자신의 천직이 화가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 그의 나이는 27세였고 그가 예술가로 활동한 기간은 10년 뿐이었다. 아를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신경과민으로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고 심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동생 테오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데서 오는 죄의식, 성공하지 못한 데 따른 열등감에 괴로워하며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에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7세였다. 고독했던 두 예술가의 불우한 삶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은 식지 않고 타오르며 작품 속에 고스란히 살아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우리는 두 예술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둘째, 당연한 얘기겠지만, 작품의 뛰어난 예술성 때문에 대중은 두 예술가를 사랑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개성 있는 선이다. 이중섭의 소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에는 특히 역동적인 굵은 선들이 두드러지는데 이러한 선들은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소의 곤두서려는 힘, 강력하게 지탱하는 다리, 각목 같은 골격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중섭은 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화가였음이 틀림없다. 흰소에 표현된 선은 복잡하거나 많지 않다. 간결하게 구성된 선이지만 이중섭의 사물을 추상화하는 천재적인 능력으로 소의 극단적인 특징만을 잡아 표현을 극대화했다. 또한 선의 색깔에 명암을 넣어 극대화된 표현을 더욱 강렬하게 부추긴다. 이렇게 사물을 추상화하여 간결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이중섭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중섭의 작품 ‘가족과 첫눈’에도 선으로 사물을 추상화하는 마스터로서의 재주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또한 그림 재료가 없어 담배 은박지에 그린 수많은 은지화에도 이렇게 간략하게 추상화된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이중섭: 가족과 첫눈(왼쪽), 은지화 작품(오른쪽)>

등장인물의 팔다리 등이 비례에 맞지 않는 과장된 길이 등으로 강조되기도 하지만 곡선이 주는 관용성과 등장인물들의 적절한 배치로 어색하지 않고 짜임새 있는 구성이 느껴진다. 선으로 사물을 추상화하되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선의 굵기, 농도, 곡률 등을 자유자재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                                    

 이제 고흐의 선을 보자. 고흐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에’에는 고흐의 그 유명한 꿈틀거리는 선이 잘 나타나 있다. 단절된 직선이 이어져 곡선을 이루니 직선보다 더 강렬한 곡선의 역설이 가능해진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여기에 더해 형태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테두리선을 사용함으로써 실제 세상이 아닌 동화 속 세상의 느낌을 준다. 물론 그림에 사용된 색조가 그 느낌을 배가시키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색조에 대해 좀 더 얘기해 보면, 고흐의 ‘론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을 보면, 화려하지만 거부감이 없고 따뜻함과 균형감이 느껴진다.  

<고흐: 론의 별이 빛나는 밤>

적절한 비례를 갖춘 형태가 균형감을 주듯이 색깔에도 조화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비례가 있다고 해야 할까? 강렬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그 강렬한 빛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특히 전체에 깔려 있는 선명한 파란빛과 물속에 반사되어 흔들리는 노란 불빛은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강렬한 색의 대조는 이중섭의 ‘달과 까마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중섭 특유의 간결한 선만으로 추상화된 까마귀를 볼 수 있으며 색조마저도 간결하게 세 가지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간결함과 생략은 작품을 보는 우리들 각자가 느끼는 감정들을 오히려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중섭: 달과 까마귀>

 

 이렇듯 두 화가가 작품 속에 나타내는 특징은 강렬히 대비되는 색조, 개성 있는 선의 사용, 작품에 개입된 작가의 정신 등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들이 매우 두드러져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우리들은 작품 외적으로 그들이 처해 있던 불우한 삶을  생각하며 연민을 느끼지만 그들의 작품에 드러나는 역동적이고 거대한 힘을 보면서 그들의 불행한 삶이 작품에 끼친 의외로 미미한 영향력에 놀라며 오히려 가장 불우한 시절에 가장 절정의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사실에 감동하게 된다.      

 이중섭과 고흐의 작품을 접할 기회를 주는 전시회가 열리면 가급적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의 해설을 들으면 감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림과 마주섰을 때 작품에서 받는 인상과 느낌은 전적으로 나의 개성에 의존한다. 미술 작품은 주로 시각에 의존하여 감상되는 데 시각 이미지의 특성상 우리가 인지한 느낌과 생각들을 버퍼링하며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그림을 접하는 그 순간에 바로 우리의 정신을 강타하기 때문에 때때로 충격적인 인상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 충격의 강도에 대소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미술관을 다녀오면 항상 이러한 여운이 머릿속에 남아 평범한 일상 속에 잔잔하게 유지되었던 정서상태가 출렁출렁 크게 흔들리고 다시 소팅(sorting)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요동은 마치 굳은 육체를 스트레칭으로 이완시켜주듯이 경직되어있던 우리의 정서에 탄력을 주기에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처럼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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