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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30. 2019

지금은 없는 카페에 대한 기억

_카페 녹색광선



나는 간 적 없을 때부터 그곳이 좋았다. 실제로는 고작 두어 번 가봤을 뿐이다. 그곳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즈음엔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녹색광선>을 꼽았고, 그렇게 말하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을 때였으니, 좋아하는 영화와 동명의 카페를 그때의 내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금이야 네 글자로 떨어지는 한자 조어의 상호가 차고 넘쳐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때가 많지만 간결하게 떨어지는 네 자의 상호가 그때는 근사했다. 싸구려 액세서리와 보세 옷을 파는 작은 가게들과 곱창집을 지나 사람들을 비집고 간신히 당도했던 입구부터, 거기서 다시 비좁은 계단을 오르는 여정의 끝에 그 카페가 있었다.      


첫 번째는 초여름, 두 번째이자 마지막 방문은 한겨울이었다. 그 둘 모두 저녁이 아니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한다. 대낮인데도 카페는 어두운 편이어서 매번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벽지를 뜯어내서인지 혹은 마감을 의도한 건지 얼룩덜룩한 자국이 남아있던 벽과 짙은 색의 나무 바닥이 이유였을 거다. 작은 창가 자리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시끄러운 홍대 골목 위에 사람들의 머리가 복작복작 몰려다니는 게 보였다. 저기서 몇 층만 더 올라왔을 뿐인데. 아래와는 공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경사진 천장이 있는 다락방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거나, 식탁이나 기다란 피아노 의자 아래에 숨어 있기를 즐기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대체로 그곳을 사랑했을 것이다.      


고전적인 서체로 CAFE 綠色光線이라 적혀 있던 유리 파티션도 멋졌는데, 그것 역시 딱 하나만 놓여 있어서 좋았다. 거기서 뭘 마셨지? 그때 어떤 노래를 틀어줬지? 이런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어둡고 그다지 소란하지 않은 공간 안에, 거기 놓여있던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알맞게 웅크리고 있었다는 점만 기억하고 있다. 좋았고, 더 좋아하고 싶었다.     


겨울의 방문에 장갑 한 짝을 놓고 왔는데 사라진 카페가 내게 선물한 에피소드가 될 줄 그땐 몰랐다. 이후에, 언젠가 또 가봐야지 기약하고 있다가 녹색광선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봤다. 폐점 소식을 들은 지도 벌써 6년 전 일이 되었다.      


가끔 사라진 어떤 공간의 냄새나 조도를 완벽하게 떠올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공간이 간절히 그리워서 혹은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런 휘발성의 열망에 나는 조금 울고 싶지만 정말로 눈물이 날 만큼의 추억은 없는, 애매하게 애상적인 기분이 든다. 아주 잊어버렸거나 이제는 돌보지 않는 기억들과 더 바래지게 두고 싶지 않은 기억들의 틈에 카페 녹색광선이 끼여 있다.          




온실과 난전

온실과 난전이, 어제와 오늘이 섞인 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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