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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Report Mar 30. 2020

모르는 것이 약일까? 아는 것이 힘일까? 아니면?

영화 <다크워터스>

비행기 사고로 숨진 존 덴버(1943-1997)의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는 "Take me home, country roads"이다. 이 노래에서 West Virginia는 "거의 천국과 같은 곳"으로 그려진다. 새로 개봉된 영화 <다크 워터스> 초반에 바로 이 음악이 흐른다. 무대가 되는 곳이 파커스버그(Parkersburg)라는 West Virginia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 매거진 2016년 1월에 실린 기사 "The lawyer who became Dupont's worst nightmare"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 곳은 천국이 아닌 지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영향은 단지 미국의 한 도시가 아닌 전 세계 인구 99%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달초 개봉일에 이 영화를 관람한 뒤(당시 극장에는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띄엄띄엄 앉아있었다),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마크 러팔로와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로버트 빌럿 변호사의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영화에는 PFOA (과불화옥탄산, Perfluorooctanoic acid)이라는 화학 물질이 자주 등장한다. 화학회사 듀퐁은 이 물질을 내부에서 C8이라 불렀는데, 1940년대 말 3M이 개발했고, 듀퐁은 1951년부터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 잘 아는 테플론을 생산하기 위해 이 물질을 사들였다. 요리할 때 테플론 후라이팬을 안 써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느 집이라도 부엌에서 쉽게 발견할 것이다. 음식이 팬에 달라붙지 않아 요리하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우라늄 농축 시설의 파이프와 밸브 코팅 용도로도 사용되었으며, 빗방울이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리는 기능성 섬유에도 쓰인다. 심지어 피자 상자에도 쓰인다. '포에버 케미컬(forever chemical)'이라 불리는 화학물질 중 하나인데, '포에버'가 붙은 이유는 일단 우리 몸속에 들어가거나 강이나 산과 같은 자연으로 방출되면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계속 축적되기 때문이다. 이런 물질이 전체 인류 99%의 몸 안에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인 로버트 빌럿은 1885년에 설립된 전통 있는 미국의 법률회사 테프트(Taft)에서 환경법 분야를 전문으로, 화학회사를 위해 일하던 변호사였다(2020년 현재에도 일하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윌버 테넌이라는 파커스 버그의 농부가 연락을 해온다. 자기 농장의 소들이 100마리 넘게 죽어가고 있고, 그 지역에 공장을 갖고 있는 듀퐁사의 오염물질 때문으로 의심되는데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파커스버그는 듀퐁이 거의 먹여 살리는 도시다. 많은 지역주민들이나 그 친구나 가족들이 듀퐁공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었다. 예상할 수 있듯 지역의 변호사나 공무원들에게 호소를 해도 듀퐁과 맞서 싸울 생각이 없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테넌은 동네에 사는 빌럿의 할머니를 통해 빌럿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실제 빌럿은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 놀러 와서 이 동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테넌이 넘겨준 비디오테이프며 온갖 자료를 보던 그는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테넌의 변호를 맡아 듀퐁과 20년에 걸친 싸움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놀라운 것은 화학회사를 변호하던 로펌의 변호사가 제일 유명한 화학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고, 그 로펌 내부에서 이견이 있었지만, 경영진이 빌럿의 싸움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즈> 매거진 기사에 따르면 듀퐁은 1980년대 초반 테플론 생산 분야에서 일하는 임신 직원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PFOA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내부 실험을 했고, 7명의 아이 중 2명이 눈에 기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나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빌럿은 2001년 웨스트 버지니아 주민을 대신하여 듀퐁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시작했고, 2017년 듀퐁으로부터 6억 7천 1백만불(한화 약 8,200억) 합의금을 이끌어냈다. 2018년에는 미국 전 지역으로 확산하여 또 다른 집단소송을 시작했다. 소송 과정에서 듀퐁은 독립된 과학자 집단이 PFOA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무제한의 돈을 지원하도록 했는데, 이 결과 PFOA가 신장암, 고환암, 갑상선질병, 궤양성 대장염, 고콜레스테롤, 임신성 고혈압 등 여섯 가지 질병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probably linked") 결론을 내렸고, 빌럿이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연방환경보호국(E.P.A.)은 2002년 PFOA의 유해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PFOA는 오염된 물을 마시는 사람들 뿐 아니라 테플론 후라이펜으로 요리를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뉴욕타임즈> 매거진에는 빌럿 변호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유명 로펌 태프트의 변호사 중에는 소위 명문 대학이라는 아이비리그 소속 졸업생들이 많다. 하지만 빌럿은 New College of Florida라는 작은 대학을 졸업했다. 이 곳은 학점제가 아닌 합격/불합격으로 평가하며 커리큘럼을 학생들이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는 대학이다. 빌럿은 대학 시절 비판적 사고의 가치에 대해서 교수들로부터 배웠으며 "읽는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배웠고 "어느 것도 액면 그대로 믿지 말고" "남이 뭐라 하든 신경쓰지 않도록" 배웠다고 했다. 그가 대학시절 받은 이런 비판적 교육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만큼이나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가장 커다란 공중보건 위기 중 하나이며 기업의 은폐와 관련된 사고에 대항해 20년이나 싸워온 바탕 중 하나였을 것이다.


듀퐁은 테플론으로 벌어들인 돈의 극히 일부분을 합의금으로 냈지만,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고, <워싱턴 포스트>가 마크 러팔로와 로버트 빌럿 등을 초대해 토론을 할 때, 듀퐁은 <워싱턴 포스트>에 입장문을 보내 영화가 과장되어 있으며, 자사는 직원과 공중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일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보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기업이 새로운 화학물질을 개발하면, 정부의 규제 물질 대상에는 올라 있지 않을 경우, 잠재적 위험은 소비자들이 떠안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먹고 마시는 것에 유해물질이 들어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접하게 되면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모르는 것이 약"일까 아니면 "아는 것이 힘"일까...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힘도 되고 약도 된다. 과연 '박사방'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없다면 범죄자의 신원을 밝히는 조치가 있었을까? 검찰이 다시 과거 사건을 들여다본다고 했을까? 보고 나서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건이자 영화였다.


참고로 영화 본 날 집에 돌아와 딱 하나 있던 테플론 프라이펜을 버리고 스테인레스와 구리 프라이팬을 꺼냈다.


참고자료
. "The lawyer who became Dupont's worst nightmare" (by Nathaniel Rich, New York Times Magazine, 2016. 1. 6)
. "Dark Waters: A Conversation with Mark Ruffalo, Rob Bilott & Emily Donovan"(Washington Post Live, 2019. 11. 19)
. "Why you need to know about PFAS, the chemicals in pizza boxes and rainwear" (by Lauren Zanolli, The Guardian, 2019. 5. 23)
. "The ‘forever chemicals’ fueling a public health crisis in drinking water" (by Tom Perkins, The Guardian, 2020. 2. 3)
. <과불화옥탄산(PFOA) 및 과불화옥탄술폰산(PFOS) 위해평가>(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2015)

taftlaw.com

다크워터스 예고편(한국어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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