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상/어지럼을 주의하세요
오늘도 적잖이 피곤했으나, 일단 밤이 다가오니 한숨 돌려봅니다. 매일 밤마다 하루를 되돌아본다거나, 일기를 쓰면서 기록을 하는 루틴은 제게 없어요. 그냥 하루가 끝났으면 끝난 겁니다. 내일로 미룬 일이 있다면, 굉장히 찝찝해하며 푹 쉬지도 못할거고요. 오늘 일을 다 끝냈다면, 유튜브 쇼츠나 보다 졸려죽겠네 하며 잠들겠죠. 제게 온 고요한 시간에 주섬주섬 펜을 들고 바스락 종이를 만지던 은밀한 희열이 요즘엔 없어요. 너무 피곤해서요. 모로 누워 영상을 봐야 하니 휴대폰도 남는 베개를 베고 나란히 눕습니다. 아니, 이 친구는 비스듬하니 일어선 것이 되려나요. 자려는 건 나고, 깨어난 건 그쪽이겠군요.
아이들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라 해놓고, 막상 저는 오늘을 돌아보기보단 내일을 걱정하는 쪽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일을 마치지 못했거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문제를 오늘도 쓸데없이 성실하게 고민하곤 하죠. 낮에는 밤으로 미루지만, 밤에는 내일로 미루게 되는 고민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에요. 새롭게 태어난 고민보다 더 생명력 넘치는, 늙고 병약하고 지루한 고민 말이에요. 쭉 살펴보니, 너무 정확하게 한가운데만 감정이 머물러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엄청 행복하지는 않아도 되는데, 최소 불행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다녀요. 엄청은 어디까지가 엄청인지, 불행의 최소 단위는 누가 가르쳐줄지 그런건 어려우니까 내일로 함께 미룹시다. 엄청 행복하지 않은게 곧 불행이라는 모순에 빠지기 전에요. 어딘가 털어놓으면 이 심란이 금세 풀릴 걸 알지만, 나는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라는 것도 동시에 알아요. 그렇다면 나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 이 의문은 타인에게 제공된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게 돼요. 저에겐 어려워서 평생 풀지 못할 문제지만 남이 보기엔 쉬운 문제니까요.
이렇게, 어차피 다시 올 하루가 굳이 갔어요. 딱히 기쁨도 고통도 없는, 망사와 같은 시간이었달까. 망사는 실로 꿰어져 있지만 면을 구성하기 위한 것인지, 촘촘한 구멍을 만들기 위함인지 누구도 결정할 수 없어요.(둘 다이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저 역시 결정을 못하고 별일 없다 치며 끝을 냅니다. 내일로 미룬 고민은 베개 아래 재웠지만, 휴대폰이 기댄 그 베개라는 게 문제네요. 자꾸 같이 보여서 말이죠.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이 아니면 못할 일이 있으니 애써 무시해 봅니다. 매우 졸린 밤의 잠자기 같은 일이라면 더더욱.
기필코 우울이라 부르지 않을 겁니다.
돈은 벌고 싶으나 일은 하기 싫은 마음을 예로 들어보죠.
자랑은 하고 싶은데 부끄러움이 상회하는 순간도 있어요.
말하고 싶지만 알게는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대표적입니다.
성장한 내일을 꿈꾸며,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면서요.
그렇게 전두엽의 하루가 빙빙 돌며 끝났습니다.
지가 뭐 시곗바늘인줄 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