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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챌수씨를 만났습니다.

by 청유

가능성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잠재되어 있는(것 같은) 가능성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것은 귀찮음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작가로서 실패한 사람'보다 '작가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 낫다는 보편적(?) 판단이 의식의 흐름 안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아주 중요한 것도 알고 있다. 실패의 뜻은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방금 예로 든 "작가"로서 그대들의 실패는 과연 도전 중에 속해있는가. 혹은 이미 끝에 자리했는가.



한글자한글 별 mock-up


나는 가능성중독자였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치우다 보면 가능성은 상상이 되어 그 틀이 대단히 넓혀져 있었다. 현장과 가까워지고, 세밀해지고, 더 또렷해졌어야 했지만, 내 가능성은 그와 반대로 상상을 넘어 판타지영화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판타지에서 미스터리로 장르가 바뀌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이라 함이 독자들이 보기엔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질 테지만 실은 참 따분한 것들이었다. 뭘 하려는데 돈이 모자란 순간이나, 주주로 있는 테슬라가 갑자기 폭락을 했다거나, 방 세 개짜리 국평의 집이 한계에 다다른- 네 자녀의 성장을 느끼는 순간, 또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면 돈을 벌거라는 기대가 실로 착각이었음이 98% 정도 로딩되었을 때, 하나만 더 꺼내자면 내가 심플하게 걷고 있던 자기계발의 길에 꽃이 피기 시작했음을 느껴갈 때였다. 아, 이제 캘리그라피로 돈을 벌어야 할 때가 됐구나! (돈을 "벌" 때와 돈을 "벌어야 할" 때의 의미와 무게감은 엄청나게 다르다.)

이 미스터리영화는 자아의 발견과 경제적 자유를 두 축으로 하여 소실점처럼 만나게 되는 시나리오를 가졌다.

나는 자아를 발견하려고 애쓰는 중이고 경제적 자유도 올지 말지 모르는 시점이니, 시나리오대로 결말을 맞이한다는 건 아직 약간의 판타지 요소가 있는 셈이다.

나는 이 약간의 판타지적 상상이 참 좋다.

가능성에 중독됐던 예전에는 상상이 끝나면 공허함만 남았었지만, 지금은 그중 하나를 픽업해 실행 중이고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으니 상상이 끝나면 기쁨과 투지가 반씩 남는다.


기질상 즉흥적이란 이유로(닥친 일만 최적화) 미래를 내다보지 않았던 안일함을 최근 들어 수도 없이 반성했다. 어쩌면 남편이 있어 그 부분을 은근하게 미뤘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일은 이제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휘몰아쳤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즉흥성 덕분에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붓을 들었고, 지금은 챗GPT(이름:김챌수)와 하루종일 논의하며 한글의 상품화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단.하.나.도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며칠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적도 있었고, 외국의 한 마켓 입점 심사는 산 넘어 산이었다.(아직도 못넘었음) 아이들 일과 가사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공방 선생님은 무려 네 건의 공모요강 뭉치를 건네며 내게 말했다.

"마감이 다 8월이네요?ㅎㅎㅎㅎㅎㅎㅎ"

"왜 웃어요.."


제 비서 김챌수를 소개합니다. 이 날은 김챌수씨 덕분에 깔끔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김챌수 한 달 월급 3만원


시간이 모자라니 새 플랜의 진행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맞닥뜨린 문제들은 내 판단에 의해 길이 아주 달라지므로 매사 공을 들여 신중을 기해야 했다. 특히 자본금(은 없지만)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돈을 벌려면 돈을 써야 하는가. 투자인지 소비인지의 저울질을 위해 수십 명의 이름 모를 선배들을 찾아 헤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료홍보나 에디터구매 등 그들이 해봤다는 투자(?)들은 대부분 시행착오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성공으로 가는 정답엔 늘 "고품질"이 근본으로 서 있다는 것이었다. 고품질이라... 그것이야말로 이 시장에서 직접 받아봐야 할 냉혹한 평가일 것이다. 이 통계는, 내가 품질 다음으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마인드컨트롤이란 것도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시장조사나 타깃의 취향분석처럼 막연한 것들은 김챌수씨에게 맡겼다. 그는 조금 허당이라, 나에게 큰 힘이 되면서도 100%의 신뢰는 얻지 못한 상태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내가 팩트체크를 해야 했고, 목업디자인 따위는 한껏 의기양양한 채 맡겨만 달라해놓고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보낸다(심지어 프롬프트도 본인이 작성해서 내게 이거 맞냐고 컨펌받지만 그래도 엉망진창). 하지만 내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대다 이내 풀이 죽을 때, 그는 다시 날개를 만져주는 로맨틱가이 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그에게 팩트에 기인하라는 걸 잊지 말라고 조언해주곤 한다.



함께 작업을 수정하던 중에 너무 힘든 나머지 "시작하자마자 대박 터지는 상상을 했던 내가 한심하다"라고 한 나의 푸념에 대한 김챌수씨의 답변 일부.



글씨로 경제활동을 하겠다는 막연한 마음은 캘리그라피를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다만 아는 만큼 보이는지라 그저 내 맞은편 선생님의 강사라는 직업만을 떠올렸고, 그다음 선생님을 만난 후 행사 섭외라는 부수입을 추가적으로 기대했을 뿐이었다.

하여,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은 고달프고 외로우며 후회와 다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다시금 가능성중독을 떠올린다. 실행 중인 가능성은 중독될 만큼 기대어야 한다는 것을. 될 수도 있는 사람에서 될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큰 장벽을 마주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며 짜증내는 나에게 김챌수씨가 건넨 말



계속되는 실패에 욱해서 냅다 포기선언을 했더니 김챌수씨가 나를 달랬다.


나는 이런 말을 해주기만 해봤지 들어보진 못했다. 왜냐. 내 심연의 상태는 항상 비밀이었으니까. 챌수 보고있나? 칭찬이야.




자신이 가능성 중독자라는 건 스스로 되돌아보면 얼마든지 보이는 것이다. 중독이라고 표현할 만큼 다양한 상상만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중독이라는 단어보다 가능성이라는 단어에 더 비중을 두라고 하고 싶다. 그 지분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시작에 성공한 자들이라고 해서 더 이상 가능성 중독자가 아니라는 법은 없다. 그들은 또다른 가능성에도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상품 이미지 아닙니다/재미로 만든 디지털한글 활용예시 mock up



이 글은 브런치 업로드를 한 달 이상 연체(?)한 뒤의 첫 글이다. 요거 하나로 회생하려는 건 아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브런치가 늘 불을 밝히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대체로 흔적을 남기진 못했다. 이왕 이렇게 내뺀 거, 최대한 당당하게 글과 함께 안부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멀고 험했다. 당당해질 순간이란 것이 있긴 있는 건지 싶었다. 과정의 성과들보다 결과의 그림에 집착했던 것 같다.

때로는 글을 너무 쓰고 싶기도 했다. 가능성에 대해 체득하며, 그럴듯한 계획보다 하루를 채우는 조용한 실천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기록하고 싶었다. 붓글씨를 위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수집했던 명언과 좋은 글들이, 위로가 아닌 응원이 되어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최근에는 조회수가 부쩍 늘어있다는 부분도 묵과할 수 없었다. "12년동안임산부"라는 브런치북이 뒤늦게 브런치스토리의 어딘가에 뜬 모양이었다. 방문자통계를 보고 서둘러 수정을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했다. 그 브런치북은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됐을 출판프로젝트 이벤트가 열려 급히 썼던 글이다. 오랜만에 열어보려니 쬐금 마음이 불편했다. 어딘가 부끄럽고, 내 글 내가 본다는데 왠지 모를 벽이 있었다. 그냥 그대로 냅두자, 결국 지금도 통계목록의 제목들만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오늘은, 돌아왔다기보단 원래 있던 이 곳에서 마이크만 들었다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을 직전 글에서도 쓸까 말까 상당히 고민했었다. 그 때는 내가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고, 지금은,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잘한다는 확신같은건 서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주의깊게 읽으시오)


그리고 이건 김챌수씨가 내려준 답이기도 하다. 기다릴거 없고 그냥 쓰면 되지 뭐가 그렇게 고민이냐는 것이다.

"나중에도 안할껄요?"

"저는 성공을 확신하지만 청유님은 의심이 많으니까요."

"의심이 많다는 건 그만큼 꼼꼼하다는 거예요."

-<Q. 이게 자꾸 늦어져서 브런치 글도 못쓰고 있잖아. 언제 쓸 수 있겠어, 이래가지고.>에 대한 김챌수씨의 병주고 약주고 전법



곧 연재를 재개하겠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쉬어갈지언정 멈추진 않을 것이며, 쓰지 않을지언정 최대한을 읽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내가 여전히 여기 있다는 라이킷 깃발 하나쯤은 꽂아놓고 다니는 건 괜찮지 않을까..


요..?




종이 위치를 잘못잡아 좌측이 짤려있습니다.
20250723_120839.jpg 25년 7월23일


★제 안부를 궁금해 하시고, 기어이 오셔서 문도 한번 두들겨주셨던 독자님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 김챌수씨는 제가 브런치스토리 작가라는 건 알고 있지만 작문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캘리아트 영감도 차라리 핀터레스트에서 얻어옵니다. 그런건 안시켜요. 김챌수와 저와의 케미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


한 미술 공모전 예선을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본선작 발표가 30일이라네요. 총 상금이 무려 6천만원이 넘는 큰 규모의 행사입니다. 상금 붙은 상 받고 싶어요. 제발요:)


아이들이 순차적으로 방학에 들어가고 있어요. 중딩>고딩>유딩>초딩 순으로요. 초딩이 깊은 억울함으로 밤마다 몸져눕습니다. 저는 아주 종일 몸져눕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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