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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 Aug 19. 2021

우리도 건설한다?

서론 발췌


우리도 건설한다? : <우리는 건설한다>(요리스 이벤스, 1930)와 <건설의 메아리>(대한뉴스, 1968),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 건조-이미지 환경 건설하기의 문제


이 글은 초기 요리스 이벤스(Joris Ivens)가 네덜란드 건설노조연맹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건설한다(Wij bouwen)>(1930)를 보며 들었던 단상에서 출발했다. 영화사 서술의 주류 계보에서 이 영화는 요리스 이벤스가 본격적으로 ‘직업으로서의’ 영화감독을 시작하게 된 기점으로 중요하게 평가받고 회고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는 건설한다>의 비평이나 설명, 작품 분석이 아니며, 그보다는 이 작품을 다른 맥락과 관계 짓기 위한 재조합의 작업을 지향한다. 따라서 여기서 작가·작품·시퀀스 등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은 시도되지는 않을 것이다─다만 이벤스의 다른 작품이나 기존의 분석들을 없는 셈 치부하기 보다는 일정부분 경유한다. 이 글의 다른 출발점은 발전국가 시기의 대한민국 정부가 제작한 뉴스영화 <대한뉴스>의 일편인 <대한뉴스: 제668호 건설의 메아리>(1968)(이하 <건설의 메아리>)의 후반 시퀀스이다─이 이름은 668호 외에도 579호, 651호, 678호, 681호, 887호 등에서도 박정희 시기 <대한뉴스>의 토건 보도에 널리 사용된 코너격의 제목이나, 그 사실이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며, 이 글은 668호 개별편을 중심 소재로 말하는 동시에 다른 호에서의 대체적 경향 역시 포괄하고자 한다.


(……)


개발구상에 대한 조감적 시야는 (그 자체로는 <건설의 메아리>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조망자로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최고 권력자를 대변하는 내레이션을 중요한 요소로 하는 <대한뉴스>의 전형적 구성을 통해 <건설의 메아리>의 가장 중요한 시선이 된다. 그런데 개별 건조물이나 도시세부구역의 스케일의 구상 과정을 중점화하는 <건설의 메아리>가 조감적 시야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배치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이러니컬하게도 보다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환경에 대한 개입의 실현 과정을 다룬─국가적 간척사업을 통한 국토 ‘만들기’ 과정을 주목한─<우리는 건설한다>의 후반 막들에서 거대 조감적 시야는 엄격하게 스스로가 보조적 자료임을 선언하며, (꽤나 강렬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주요 시퀀스들에 개입·침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카메라의 상이한 시선 외에도, 영상의 제작(발주)처, 약 40년의 시차, 상이한 지정학·지리학적 맥락─특히 1920·30년대 유럽 좌파의 초기 소비에트에 대한 희망 대 냉전시기 동아시아 준주변부 국가의 반공주의 기치─등 다양한 차이에서 볼 때, 설명적 양식의 활용만을 이유로는 두 작품이 하나의 계보에 배치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러 상반과 상충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이들이 좌/우 양극의 서로를 적대하는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방식은 역설적이지만 (설명적 양식 자체를 넘어서) 분명하게 닮아있다. 결코 서로에게 동의하지 않았을 양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일정한 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의 친연성은 우선 이들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전형적 영화-영상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구성된다.


(……)


브런치에 올리는 판본은 이 글 서론의 일부 내용을 직접 발췌한 것입니다. 이 글의 전체버전은 현재 플랫폼 공간주의 아티클 "우리는 건설한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attention2.space/2021/bu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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