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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스틴 Nov 16. 2022

뉴욕 센트럴파크의 흥미로운 사실들

A great day in New York would be to wake up, get a cup of coffee and head up to Central Park for a nice walk.
 
- EMMANUELLE CHRIQUI -

조경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뉴욕의 센트럴파크(Central Park). 1858년,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칼베르 보(Calvert Vaux)의 공동 설계 아래 뉴욕 시민들에게 자연을 경험하고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160년이 지난 현재, 여전히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으며 매년 4천200백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는 세계 최고의 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일산, 분당, 송도와 같은 신도시들도 뉴욕 센트럴파크를 모티브로 삼아 도시계획 단계에서 중앙공원을 포함하게 된다. 뉴욕 센트럴파크의 총면적은 여의도 면적과 맞먹는 수준인데, 자본주의의 끝판왕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 맨해튼 알짜배기 땅 한가운데에 이렇게 거대한 공원을 지었다는 것이 믿기는가? 이번 글에서는 뉴욕 센트럴파크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센트럴파크 이전의 역사

뉴욕 센트럴파크가 지어지기 전에는 소규모 농장과 늪지대와 언덕 사이사이 집을 짓고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맨해튼 중심지에서 여러 핍박과 인종차별을 받으며 힘든 삶을 살아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일부가 현재 센트럴파크가 위치한 맨해튼 북쪽으로 이주하여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되고 이를 세네카 빌리지(Seneca Village)로 불리게 된다. 1850년 뉴욕시에서 센트럴파크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세네카 빌리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강제 해산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게 된다.


이후 1990년이 되어서야 역사 학자들에 의해 해당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연구 초기에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유지를 무단 점유하여 판자촌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짐작했지만, 실제로는 꽤 부유한 주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증거로 뉴욕의 노예제도가 폐지된 1827년 당시, $250 이상의 가치의 자가를 소유하고 3년 이상 뉴욕에 거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만 투표권이 행사되었는데, 투표권을 가진 뉴욕 전체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구 100명 중 10명이 세네카 빌리지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알래스카보다 비싼 땅값

뉴욕주 의회에서 센트럴파크를 조성하기 위한 토지 매입에 지출한 비용은 1850년대 당시 740만 달러로, 현재가치 원화 기준 약 2천7백억 원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 오는데 지출한 720만 달러보다 높은 금액이다. 그 당시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160년이 지난 지금 뉴욕 센트럴파크의 가치를 단순히 화폐의 숫자로 매길 수 있을까?


100% 핸드메이드 공원

뉴욕 센트럴파크는 모두 수작업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을 아는가? 5백만 입방 야드(약 460만 세제곱미터) 부피의 돌과 흙, 7개의 호수, 36개의 다리와 아치들, 50만 그루의 나무와 식물들 모두 건설장비의 도움 없이 수작업으로 운반하고 지어졌다.


유산을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

아무리 훌륭한 기획도 꾸준한 관리 없이는 무용지물인 듯하다. 1900년대 초, 정치적인 갈등으로 인한 예산 부족으로 뉴욕시에서는 공원의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아름다운 모습의 센트럴파크는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지고 수도가 막히는 등 열악한 환경의 공원으로 변모되고 만다.


센트럴파크의 예전 모습을 되찾기 위해 1934년 당시 뉴욕시장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H. La Guardia)가 로버트 모세스(Robert Moses)를 뉴욕시의 공원 관리를 총괄하는 NYC Parks의 커미셔너로 임명하게 된다. 정부로부터 조달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대규모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지만 1960년 로버트 모세스가 사임하게 되면서 센트럴파크는 다시 하향길을 걷게 된다.

이후 1979년,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나서 공원 개선 프로젝트를 주도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센트럴파크 컨서번시(Central Park Conservancy)라는 비영리 단체를 꾸려 뉴욕시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공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현재까지 센트럴파크 컨서번시는 기부금을 통해 공원 관리 자금을 충당하고 있으며, 매년 무려 780 백만 달러(2022년 11월 16일 환율 기준 원화 약 1천억 원)의 자금을 공원관리에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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