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아파트의 화재경보가 울려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이 화재는 없었고 경보는 오작동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 상황인지라 눈이 말똥말똥이다. 노트북을 꺼내 본다.
어느새 노마만리가 3년 차를 맞았다. 지난 5월부터 노마만리 2주년 기념 전시로 “노만의 한국영화사 60년” 전시를 열고 있다. 1950년대부터 영화잡지 쪽에서 일하셨고 1963년에 한국영화사 저서를 집필하신 노만 선생님을 모시고 5월 10일 전시 오픈 행사를 가졌다.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을 비롯해 직원분들이 참석해주었고 김종원, 이효인 선생님 등이 축사를 하셨다. 전시를 계기로 제자 유창연이 노만 선생님의 지난 90년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올 연말에 한상언영화연구소에서 책이 나올 수 있을듯.
5월 마지막 주에 헝가리와 폴란드를 다녀왔다. 윤용규 감독의 <춘향전>(1959)를 비롯해 총 3편의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생각보다 좋았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수집하여 제대로 복원되기를 기대해 본다.
노마만리를 찾아 주신 이길성 선생님의 가족과 친구분들(좌), 노만 선생님과(우)
6월 15일은 이길성 선생님의 2주기였다. 하루 전인 14일 선생님의 언니들과 친구분이 노마만리에 오셔서 선생님을 추억하고 선생님이 쓰시던 책장에 “이길성문고”라는 명패를 달아주었다. 진작 달았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우연찮게 kmdb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다보니 2016년 11월 5일 영상자료원 학술세미나에서 이길성 선생님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1부 발표자였고, 이길성 선생님은 3부 토론자였다. 그날의 기억이 조금은 되살아났다. 아마 인사를 드렸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길성 선생님과 아주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영화도둑일기”의 작가 한민수 군이 화,수,목 노마만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몇달째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만 근무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중 토요일 영업을 마치고는 남양주 집에서 자고 천안으로 출근하니 일주일에 절반씩 천안과 남양주를 오가는셈이다.
7월 들어 장마가 한창이다. 비가 많이 오니 손님도 줄었다. 노마만리는 노출 천장이다보니 비가오면 후두둑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가뜩이나 수면 장애가 있는 편이라 빗소리에 놀라 잠을 깨면 뒤척거리며 새벽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작년에는 길지 않은 분량의 침탈사 원고를 마감하느냐 큰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올해는 책 한권에 해당하는 한국연구원 저술지원 원고 마무리로 허덕거리고 있다. 언제나 공모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을 때는 좋은 데 원고 마감을 앞두고는 흘려버린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뱃살만큼이나 나태한 일상에 대한 자책으로 우울의 심연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다가 조금 글이 써진다 싶으면 하늘을 둥둥 날아다니는 것 같은 조증이 되살아난다. 책이 나올 때까지는 조울증 환자의 심리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 뻔하다.
원고 마감으로 불안과 불편이 심신을 장악하고 있는지라 짜증도 많고 변덕도 심하다. 편한 상대일수록 내가 뱉어낸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를 입히는 듯하다. 사람이 언제나 친절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남의 감정에까지 우울과 예민으로 내 칼날처럼 예리한 감정을 전염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유의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