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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Mar 12. 2024

내향인이 찾은 느리지만 확실한 행복 디테일

작년 11월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코로나19가 예고도 없이 나의 삶에 들이닥쳤고 지난 3년 동안 내 안에 있던 내향인의 유전자를 더 공고하게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과 사람들과 밀접하게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어느새 혼자 지내는 일상이 습관처럼 익숙해져 버린 몸과 마음은 좀처럼 밖으로 나서지를 못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생각이었는지 도서관 프로그램을 덜컥 신청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화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버스 엔진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딱 한 번의 수업을 들었을 뿐이었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의 장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나의 하루를 충만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내향인 유전자와 외향인 유전자를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주장과 마주했다. 놀라운 것은 물려받은 유전자가 우리의 행복에 관여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행복은 외향인, 내향인 유전자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활성화된다고 한다.      



내비게이션에 도착지를 행복이라고 찍고 길을 나섰다고 해보자. 외향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안내에 따라 비교적 망설이는 것 없이 최단경로로 직행한다.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빠르게 찾아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행복한 상태로 만들어 간다.


     

그러나 내향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똑같이 최단 거리를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을 켜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직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중간중간 쉼이 필요하다.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가는 게 맞을까?’ ‘괜찮은 사람일까?’ ‘괜히 나갔다가 기운만 빼고 오는 건 아닐까?’ 내면에서 넘어야 하는 걸림돌들이 외향인들 보다 많아서다.


     

내향인인 나도 ‘행복’해 지기 위해 ‘사람’을 만나러 가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무의식이 제 멋대로 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부인할 수 없다. 화요일마다 참석했던 도서관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느낀 감정들이 그걸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화요일마다 참석했던 도서관 독서 프로그램은 참여자 수가 꽤 많은 편이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낯선 사람들과 꼼짝없이 2시간을 있어야 한다는 게 나로선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기억이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던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요일마다 한 번씩 만났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면 군더더기 없이 헤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화요일이 되면 정해진 시간 동안 만났다가 헤어진다. 적당한 거리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으니 편했다.     


 

둘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꽤 수다쟁이였다. 사람들의 눈이 모두 나에게 집중되었고, 목소리는 떨렸고 가끔 더듬거렸지만 그래도 말하는 게 좋았다. 집중해서 들어주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는 게 좋았다. 아마도 그 밑바탕에는 책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 대해 마음껏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다. 주변에는 책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눈치 보지 않고 나눌 수 있었다.      



도서관에 다녀온 날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아이들의 투정도, 쌓인 집안일도 기꺼이 해 낼 정도의 기운이 생겨났다. 화요일의 행복이 이제야 설명이 된다.          



나의 행복도 행복의 기원 책에서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좀 더 좋은 기운으로 살아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내향인 성향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저런 신경 써야 할 것들 때문에 나의 행복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디테일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그게 누군가가 보았을 땐 좀 답답하기도 하고,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해?’ 하면서 유난이라는 눈빛을 마주하더라도 주눅 들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기 보단 조금 더 나 자신을 섬세하게 관찰하며, 알뜰살뜰 보살펴 주는데 시간을 쓰고 싶다.     



화요일 오전 10시, 도서관에 도착했다. 모인 사람은 여럿이지만 서로에 대해서 깊이 궁금해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필사해 온 문장을 낭독하는 동안 심장은 기분 좋을 정도로 두근거린다. 내가 찾은 느리지만 확실한 행복의 디테일 딱 이 모습이다. 이거 하나면 적어도 3일은 행복한데 조금 유난스러워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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