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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Sep 28. 2023

복수국적인 아이를 키운다는 것


우리 아이는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인도네시아인, 그리고 태어난 곳은 싱가폴이다.


보통 국제결혼으로 아이가 태어났다 하더라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국경을 넘어야할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어머니나 아버지의 나라 중 한 곳에서 태어났다면 굳이 아이 여권을 일찍 만들 필요는 없다.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아닌 제 3국인 싱가폴에서 태어났던 우리 아이는 싱가폴에서의 체류 자격을 얻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여권이 꼭 필요했다. 그래야 여권을 토대로 싱가폴에서 체류하기 위한 비자에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는 생후 한 달정도는 허용되는 기간동안 무비자로 싱가폴에 머물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출산 후 조리원에 들어가있었을 시기에 나는 아이의 인도네시아 여권 발급을 위해 생후 일주일 된 아이를 안고 그 더운 나라에서 수유복에 양말에 가디건까지 껴입고 아직 출산 흉터가 아물지도 않아 걸어지지도 않는 걸음으로 인도네시아 대사관 앞 기나긴 줄에 서있었다. 인도네시아 여권은 따로 외부에서 여권사진을 찍어가는게 아니라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야해서 자고 있는 아이를 남편이 세로로 안아 흰 배경 앞에서 팔을 최대한 뻗어 아이만 나올 수 있도록 찍었는데 그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 (라이온킹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랄까)


여권사진이란 자고로 양쪽 귀가 훤하게 나오고 눈을 뜨고 있는게 기본 중 기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진 찍던 대사관 직원은 이런 일은 흔하다는 듯 심드렁하게 아이가 자고 있어도 상관없다며 그냥 아이를 흰 배경 앞에 잘 들고 있으라고만 했다.


이 여권사진은 두고두고 싱가폴을 출입국할 때 나에게는 곤욕을, 아이에게는 굴욕을 안겨주었다. 신생아 아이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겼을 뿐더러 눈감고 자고 있는 사진을 보고 본인인지 확인을 하려니 이민국 직원은 한참을 아이와 사진을 번갈아 살피다 결국 나에게 항상 추가적인 질문을 하곤했다. 아이 생년월일이 언제인지, 풀네임이 무엇인지 등등. 그 뿐만이 아니었다. 출입국시에 종종 복수국적자에게 여권을 모두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국경을 넘으려면 내 여권에 더해 아이 여권 두 개를 부지런히 챙겨야했다. 싱가폴에서 출국할 때는 인도네시아 여권을 보여주고 (비자가 인도네시아 여권을 기준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입국할 때는 한국 여권을 보여주어야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을 나올 때는 한국 여권을, 싱가폴에 다시 입국할 때는 인도네시아 여권을 제시해야했다.


인도네시아인인 남편은 한국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복잡 다단한 과정을 거쳐 여러 서류를 작성한 후에야 방문비자를 받아 한국 입국이 가능하고 한국인인 내가 인도네시아에 와서 길게 체류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고향에서 동사무소 구청 시청 이민청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과정을 거쳐 배우자 체류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두 나라 여권을 버젓이 가지고 있는 아이가 아무 문제 없이 두 나라 어디든 기간에 얽매이지 않고 체류 가능하다는 사실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아이가 이번 해 말 만 5세가 되며 태어날 때 발급 받았던 여권들을 갱신해야할 시기가 다가왔다. 이 또한 부모는 일이 두 배로 많아진다. 좀처럼 가만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를 겨우 사진관 흰 배경 앞에 앉혀 여권사진을 찍어 한국 영사관에 제출하려 가져갔지만 결과는 퇴짜.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아이는 습관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씨익 웃으며 손으로 브이까지 했다. "그런 사진이 아니라니깐!!!"이라는 우리의 외침에도 아이의 입꼬리와 고개는 똑바로 돌아올 줄 몰랐다. 열 번 가까운 시도 끝에 베스트샷을 골랐건만 아이의 고개가 똑바르지 못하고 배경색이 크림색에 가까워 결국은 다시 찍어와야한다는 영사관 직원 말에 절망 아닌 절망을 맛봐야했다.


영사관에서 알려주신 다른 사진관을 찾아 다시 심혈을 기울여 아이의 여권사진을 찍고 겨우 여권신청이 마무리 되었는데 특이한 아이의 인도네시아 성과 긴 이름으로 직원 분도 아이 이름과 출생지를 여러 번 다시 확인하셨었다.


인도네시아 여권은 또 어떠한가. 아이의 유치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픽업해 부지런히 발리 이민국에 달려갔는데 점심시간에 걸려 수많은 발리에 사는 외국인들 사이에 앉아 한참을 기다린 후 담배 냄새 푹푹 나는 이민국 사무실에서 아이의 징징거림을 사탕 몇 개로 견뎌내며 두 국가의 여권 신청을 겨우 마쳤다.


복수국적인 아이를 키운다는건 특별한 경험이다. 다른 나라의 여권발급과정을 뜻하지 않게 자세히 알게된다는 것. 출입국 심사를 할 때 나는 외국인이지만 아이는 자국민이기에 서로 구분된 다른 줄에 서야할 수도 있다는 것. 또 두 나라 여권을 5년마다 부지런히 연장하느라 돈도 두 배로 든다는 것.


영국에서 공부할 때 주변 많은 친구들이 복수국적자였는데 벨기에/캐나다, 미국/프랑스, 독일/볼리비아 등등 한 국적은 유럽인 경우가 많았다. 영국이 EU를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EU 회원국 국적자인 이 친구들은 사실상 영국에서 취업을 하거나 알바를 해서 돈을 버는 데에도 법적인 제한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졸업 후에도 영국이나 다른 유럽국가에 일자리를 바로 구해 떠났다. 그 땐 뭔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일하는 비자받기가 얼마나 힘든데 저들은 저리도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더 중요했던건 국적이 아니라 능력이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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