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길 문 밖으로 나오는 아이의 얼굴이 유난히 환하다. 그렇다. 예외없이 그녀의 손에는 구디백(Goodie bag)이 들려있다. 오늘은 또 누구 생일이려나... 집에 돌아와보니 구디백이 무려 두 개였다!!!
지난 학년 같은 반이었던 알버트 그리고 지금 같은 반인 알레씨오 두 명의 생일이 겹친 듯 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점심을 채 먹지 못하고 구디백을 풀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도그럴 것이 투명백에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들이 유혹하듯 잔뜩 들어있었다. 점심을 다 먹어야 풀어볼 수 있다며 엄포를 놓고 막상 나도 그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 아이 몰래 곁눈질을 했다. 점심 식사를 허겁지겁 끝마친 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구디백을 풀어보았고 나도 옆에서 거들며 이번엔 또 두 친구 선물을 무엇을 사서 들려보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물감색칠키트, 우리가 거의 사주지 않는 과자와 사탕, 멸균초코우유, 젤리, 그리고 아이 이름이 들어간 머그잔. 그 덕분에 우리 집 찬장에는 "XX가 N살이 되었어요!"라고 외치는 머그잔이 네 잔. 아니 이번 것까지 하면 총 다섯 잔이다. 물감색칠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는 덕분에 오후 한 시간을 물감 색칠을 하며 보냈고 오후 간식 시간에는 구디백에서 나온 과자 중 하나를 골라 먹었다.
싱가폴에서 만 세 살 생일이 되던 때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지만 아이도, 반 친구들도 어린데다 어린이집의 삼엄한 코로나 경계령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나갔었고 지난 해 만 네 살이 되었을 땐 이미 싱가폴을 떠나 인도네시아에 와있었기 때문에 기관에서 생일을 축하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이가 학교를 떠날 때 그간 친구해줘서 고마웠다는 의미로 한국에서 공수한 수저포크 세트를 10명 남짓한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었다. 놀라웠던 것은 수저포크세트 안에 들어있던 작은 하리보젤리 봉지를 학교에서 모두 걷어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알레르기나 종교등의 문제로 아이들에게 함부로 음식을 나누어줄 수 없다는게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그래서인지 싱가폴에서 기관에 다니는동안 아이가 받아온 구디백에는 간식거리가 일체 없었고 대부분 색칠공부책, 물감, 고무찰흙세트 등등 장난감 종류였다.
싱가폴에서 같이 아이를 키우던 한국인 엄마는 구디백 용품도 한국이 훨씬 예쁘고 다양하다며 아이 생일 훨씬 전 한국에서 뽀로로밴드 등 한국 구디백용품을 공수해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싱가폴 엄마들 사이에서 어깨가 으쓱했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유치원에서 생일 구디백을 나누어 주는 것이 문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이의 현재 학년에는 총 세 반이 있는데 한 반당 인원은 17명 정도이다. 그럼 한 학년에 최소 50명 가까이 되는 셈인데 엄마의 재량이지만 어떤 아이는 자신의 반 친구들에게만 구디백을 돌리기도 하고 같은 학년 모두에게 구디백을 돌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금액상 구디백 하나에 드는 가격은 한국 돈으로 5천원 혹은 그 이상으로 보이는데 일반 직장인 월급이 30만원에서 40만원 사이인 인도네시아에서 구디백 비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원에서 하는 생일파티에 가져가는 케이크도 주문 제작해야한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그나마 로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정도이지만 발리의 국제학교 소속 유치원이나 서양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이 모든것 + 주말 비치클럽 혹은 레스토랑에 부모님과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파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모든 건 부모의 재량이다. 구디백을 아이들에게 줄지 말지. 생일케이크를 주문해서 원에 들고 갈지 말지. 주말에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불러 파티를 할지 말지. 이 모든건 부모 마음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1년 내내 친구 부모님이 디즈니 공주 모양 케이크를 유치원에 들고와 공주드레스를 입은 친구가 초를 불고 모두에게 달달한 과자가 잔뜩 담긴 구디백을 나누어주는 모습을 본 아이는 자신의 생일도 그러리라 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구디백을 받아온 날이면 우리 아이는 묻는다.
"엄마 나는 Paw patrol 주제로 생일케이크 만들어줘. 엄마도 XX 엄마처럼 유치원에 케이크 가지고 올꺼지? 그 날 XX처럼 나도 공주드레스 입고 반지 껴도 되는거지?"
그렇게 우리 부모들 모두는 이 문화에 갇히게 된다.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여기서 타의는 내 아이의 의지도 포함된다)
이렇게 삐까뻔쩍한 생일파티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나는 막상 태어나 생일 파티를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여름 방학 사이에 끼어있던 나의 생일은 친구들과 함께 축하된 적이 없다. 딱 한번 방학식 날 친구들을 초대해도 좋다는 엄마의 허락이 있었지만 그 전 주 다른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벌어진 다툼으로 인해 담임선생님의 생일파티 금기령이 내려지며 나의 한 번 뿐이었던 생일파티 기회가 날아갔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식사 한끼 같이 하며 생일을 지낸 적은 있어도 풍선을 불고 장소를 빌려 맞이하는 생일은 내 인생에선 없었다.
돌아와서, 아이가 구디백을 받아오면 우리는 생일이었던 아이에게 줄 선물을 아이 가방에 넣어 보내야한다. 누구도 그래야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처음 아이가 한 두번 구디백을 받아왔을 땐 안일하게 "그 엄마도 선물을 받으려고 이걸 준게 아닐테니 그냥 넘기자"라고 생각했었다. 이러기를 한 두번 하루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엄마, 오늘 친구들이 다들 XX 생일 선물 가져와서 줬는데 나는 아무 것도 못 줬어." 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 여기서도 우리는 결국 아이의 한 마디에 다른 친구들 선물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디백을 받아올 때마다 선물을 들려보내려니 선물의 단가가 높아질 수도 없다. 한 두번 쓰면 망가질 것 같은, 물감이 잔뜩 묻어나오는 자동차 장난감이라도 그럴듯하게 포장지에 포장해서 그 다음날 들려보낸다.
구디백에 있는 싸구려 사탕을 아이가 보기 전에 얼른 버리면서, 생일인 친구를 위해 얼마 후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싸구려 장난감을 고르면서 우린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발리 쓰레기 중 10프로는 생일관련 쓰레기일껄. 이게 정말 아이들을 위한 생일이 맞긴한거야?
이와중에 아이의 생일이 있는 11월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