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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안러버 Oct 24. 2023

발리살이, 벌써 일 년

백수부부의 하루 일상

우리 집 기상시간은 여섯 시.

우리 부부 사이에서 잠이 든 아이가 시계가 머리에 든 듯 깨어나서 하루의 조잘거림을 시작하는 시간이 아침 여섯 시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마치 그 이전에 한참 생각중이었다는 듯 “그래서 천사는 피부랑 뼈가 있어 없어?” 등의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다른 하루는 엄마 아빠가 아직 잠든 것을 보곤 한참을 애착인형에 대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아침은 주로 남편 담당이라 남편이 느릿느릿 주방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오 분 더 밍기적거리다가 아이가 입을 유치원복을 서랍에서 꺼내 거실로 향한다. 이 곳 유치원이나 학교는 체육복, 교복, 활동복, 인도네시아 전통 문양인 바틱이 들어간 옷 등 요일마다 각각 다른 옷을 입어야해서 아침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그 요일엔 무슨 옷을 입어야하는지 기억해내야한다.


빵을 직접 굽는걸 좋아하는 남편은 식빵이나 모닝빵으로 아이 아침을 준비하고 우리 아침은 과일과 커피로 대신한다. 아침부터 수다를 떠느라 느려지는 속도를 채근하며 아이의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준 후 아침 식사가 끝난 아이의 세수와 양치질까지 끝나면 아이가 스스로 유치원복으로 갈아입는동안 후딱 커피 한 잔과 과일을 흡입한다. 이후 남편과 함께 오토바이로 집에서 5분 거리인 유치원으로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8시.


일주일 중 하루는 가까운 바닷가에 가서 30분 정도 해변 산책로를 걸으며 운동을 빙자한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하고, 하루 정도는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 혹은 애정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나눠마시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다. 다녀본 카페들 장단점 이야기, 아이 학교 이야기, 발리에 사는 한국사람들 이야기, 뭘 먹고 살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이야기하다보면 아이 픽업시간인 12시 반이 다가온다. 유치원에 가기 전 근처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 아이를 픽업한 후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와 급히 둘 중 하나는 점심을 준비한다. 내가 준비하면 한식, 남편은 양식, 일식, 인니식 등

한식을 제외한 그 외 모든 메뉴. 다른 한 사람은 점심이 준비되는동안 아이와 씨름하며 옷을 갈아입히고 오늘은 누가 아파서 유치원에 못 왔고 누가 말썽을

부려서 선생님께 혼이 났는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아이는 방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혼자 플레이도우를 하거나 인형놀이를 하고 그동안 우리는 점심 뒷정리 및 집안일을 한다. 우리 집에서 아이가 티비를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오후 세시, 한 시간정도 본인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아이가 티비를 시청하는동안 남편은 빵을 만들기도 하고 고양이와 놀아주기도 한다. 아이의 티비 시청시간이 끝나면 다시 한 명은 저녁 준비에 돌입. 다른 한 명은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 방에 끌려가 함께 놀아준 후 아이 샤워까지 담당한다. 저녁 식사 후엔 한 명은 설거지, 한 명은 아이 책읽어준 후 재우기에 들어간다. 이 모든 일과가 끝나고 둘이 거실 소파에 앉으면 대략 저녁 여덟시 반.


우리 부부 둘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딱히 우리 일상에서 여기가 발리라고 느껴질만한 요소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외식이 집밥을 해먹는 것보다 싼 곳이지만 우린 우리 고집에 굳이 식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밥을 해먹고 있고, 단돈 몇 만원이면 파트타임 가정부를 고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남에게 집안일을 맡기는 것이 불편해 우리가 다 쓸고 닦고 있다. 싱가폴보다 집이 조금 크다는 것만 빼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이 곳에 온게 작년 11월 말. 한 달이 넘는 떠돌이 생활 끝에 이 집에 이사온 게 1월 초. 벌써 일 년이 되어간다. 엄마가 우리의 발리 생활 얘기를 들으시더니 백수가 더 바쁘다고 하셨는데 맞는 말이다. 오토바이로 이 곳 저 곳을 누비며 좁은 골목을 다녀 동네 지리가 빠삭해졌고 그 덕에 온 가족이 새까맣고 촌스럽게 다 타버렸다. 안 가본 현지 식당들을 하나씩 섭렵하고 있고 발리에 놀러오는 친구, 가족들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난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하다보면 그들이 우리보다 발리 곳곳을 많이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우리 동네에 정착한 이후 발리 내 어딘 가로 멀리 떠난 적이 거의 없는 것에 반해 그들은 누사 페니다에 길리에 로비나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 마치 서울토박이였던 내가 남산타워를 대학생 때 처음 가봤던 것 같이 막상 이 곳에 살게되니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일상이랄 것도 없는 일상에 치여 하루하루를 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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