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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jade Dec 18. 2019

말라위에서의 두더지 게임

말라위에서의 1년 업무를 종료하며

모두가 그렇듯, 제 몸집만한 백팩을 메고 (사실 몸집만하지 않았다. 난 초등학생때부터 키가 컸다.) 학교, 학원, 문방구, 놀이터를 차례로 누비던 초등학생이라는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혹은 학원이 끝나고 해방감에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문방구 앞에서 친구들과 (잘 하지도 못하는)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자동차 레이싱, 뽑기, 권투게임 등 그 종류는 다양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두더지 게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와 경쟁해서 이겨야한다는 압박이 없는 게임이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두더지가 귀엽기도 했고.. 또 동시에 망치로 열심히 두더지를 때려대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서 였던 것 같다 (초등학생도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다).

쉴틈없이 올라오는 두더지들을 모두 때려줘야한다.


프로젝트 말라위에서 Project Manager/Research Assistant로 일하던 1년은 마치 초등학생때 하던 두더지 게임과 같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전혀 다른 새로운 또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 그곳에 있는 1년 내내 민둥머리를 들이미는 두더지를, 아니 서로 다른 두더지들을 쉴새없이 잡아야했다.


전 거주지 소송사건,

이민국 비자사건,

오피스 강도사건,

집과 오피스 - 두 번의 이사,

말라위 대선,

기름값 폭등으로 인한 오피스 closure

...


이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두룩했다. 당시에는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마음과 제멋대로 굴러가는 이 사업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아보자는 다부짐, 그리고 내 커리어를 이어가겠다는 욕심이 나를 버티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려움들을 어떻게 모두 버텨내었나 스스로가 대단하기도 하고, 또 아직까지도 버티며 사업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게 된다 (약 10년의 사업 끝에 2019년을 마지막으로 종료한다고 한다).

이사하기 전의 집- 마당과 정원, 그리고 애증의 두 마리개가 있는 집이였다.
이렇게나 하늘이 (꼭 선셋이 아니더라도) 예쁘고 평화로워 보이는 나라였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왠만큼 큰 사건이 아니면 놀라지 않고, 비자가 안나와서 골머리를 앓는 다른 크고 작은 기관들을 보면 'I've been there... even further to be honest'하고 (속으로) 웃는다. 힘들고 괴로웠던 1년이 나를 더 악독하지만 동시에 인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악착같이 견디고 또 극복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근데 뭐지, 나 왜 아직도 힘들지?

아직도 두더지 잡는 중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Charles Spencer Chap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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