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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성 Aug 23. 2019

어른으로 사는 게 힘겨울 때 나는 엄마 밥을 떠올린다

나에게 집밥은 '가족'의 동의어

어른으로 사는 게 문득 복잡하다 느껴질 때면 엄마 밥을 먹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퇴근하는 이들로 꽉 찬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겨우 의지해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재료를 손질할 힘도, 가스불을 켤 엄두도 좀처럼 나지 않는다. 지하철 가까운 곳에 자리한 편의점이나 베이커리, 분식집에서 한 끼 식량을 구입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퇴근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인스턴트로 배를 채우는 것이 문득 지겨워지거나 집 안의 공기가 적막하게 느껴질 때면 금요일 저녁 기차를 충동적으로 예매해 부모님이 있는 안동으로 내려가곤 한다.

고추, 오이, 블루베리, 상추, 대파, 흑방울 토마토가 자라는 옥상, 그곳을 매일 가꾸는 부모님. 다음날 아침 익숙하면서도 따스한 공기에 기분 좋게 눈을 뜨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엄마와 그 날 먹을 각종 채소를 옥상에서 가지고 내려오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행복이라는 말에 이미지가 있다면 바로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엄마 밥을 먹다 보면 나는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 든다.

집밥을 먹으면 고달프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 힘차게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그 어떤 영양제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에너지가 몸 깊은 곳부터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집밥을 먹을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힘이 솟는 데는 땅의 기운을 담뿍 머금은 제철 식재료의 덕도 있는 것 같다. 옥상 텃밭, 그리고 집에서 20여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800평 규모의 밭에 씨앗을 뿌리고 사계절 내내 아기처럼 돌본 끝에 수확한 땅콩 호박, 참깨, 메주콩, 복수박… 여기에 정성이 담긴 요리가 더해져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집밥으로 탄생한다.   

내게 집밥은 '엄마 밥'과 동의어인 가족 그 자체다. '행복이 뭐 별건가. 우리 다섯 식구 모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게 인생 최고 행복이지'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한 살씩 더 먹을수록 마음에 점점 크게 와 닿는 건 내가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일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곳에 있음을 집밥을 먹으며 늘 깨닫게 된다. 다시 당차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올해 두 번째 수확한 고추. 당장이라도 집에 달려가고 싶은 빛깔이다.


지난 봄에 가족이 함께 심은 땅콩 호박은 벌써 수확했다고 한다.



아빠가 그린 블루베리 그림. 직접 농사지은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딸이 쓰고 아빠가 그림을 그려 언젠가 한 권의 책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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