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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성 Nov 08. 2020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

혼 아카데미우스의 탄생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몇십 년치 미래가 한 번에 배송된 기분이 든다. 원래 하던 대로 하다간 도태될 것만 같다. 테스형 멱살을 잡고 세상이 왜 이러냐고 묻고 싶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저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것만으로는 조바심이 난다. 다들 불안해서일까.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육아휴직에 들어갔던 K는 복직을 앞두고 회사에서 다시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고 한다. IT 회사의 기획자인 K는 걱정만 하는 대신 평소 배우고 싶었던 영상 편집 기초와 포토샵을 공부하기로 했다. 혼자서는 어려워 탈잉을 뒤져 튜터를 구했다. 가끔씩 영상 편집자나 디자이너와 이야기할 때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답답했는데 그 분야를 알고 나니 업무가 한결 즐겁고 쉬워졌다는 것이다. 공부로 능력치를 키워 업무의 공백을 성공적으로 채웠을 뿐 아니라 자신감까지 얻었다. 용기, 자존감, 긍정성, 삶의 여유…. 공부는 지식의 차원을 넓혀준다는 효용 외에도 보이지 않는 슈퍼파워를 불어넣는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2020년. 이 시대 최고의 미래학자로 꼽히는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 소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리셋’이 아닌 ‘리부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부트는 일어난 것을 바탕으로 더 잘되게만드는 것이다. KBS와의 인터뷰를 보면 우리가 왜 요즘 공부에 빠졌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이 기간 생각할 시간을 가졌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일을 하는 게 맞을까? 이게 내가 삶에서 진짜 원했던 거였나?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의미 있고 목적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됐어요.”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이제 더 이상 공부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하고 싶어서 도전한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공부를 한다. 학창 시절 그렇게 하기 싫었던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걸 보니 ‘공부란 늦춰서도 안 되고 성급해서도 안 되며 죽은 뒤에나 끝나는 것’이라고 한 율곡 이이의 말이 떠오른다.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공부란 무엇인가>를 쓴 김영민 교수는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젊은 날 입시와 취업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마치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돌아보지 않고 바삐 지나치는 것이 그 시간에 대한 모욕인 것처럼. 나중에 돌이켜본 자신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기껏 수능 시험을 얼마나 잘 보았나, 혹은 명문 대학에 입학했는가 정도라면 그것은 그보다 흥미로운 지적 체험이 없었다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근로제 변화 등으로 생긴 여유 때문만은 아니다. 더 의미 있고 목적 있는 내 안의 ‘무엇’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다. 더불어 코로나19로 먼 미래가 성큼 다가와버린 시기, 변화는 세상에 발 빠르게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존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이 한순간에 사라지더라도 괜찮을 수 있게 말이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유튜브에 배우고 싶은 검색어를 입력하거나 온라인 클래스를 수강 신청하면 시작할 수 있다.


물론 피곤함, 밀린 집안일, 편히 쉬고 싶은 충동과는 싸워야 한다. 공부에는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음’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럴 땐 유튜브 공부 방송을 켜고 함께 공부하거나 챌린지 앱을 다운로드해 일정 금액의 돈을 걸어놓으면 된다. 그래도 어깨가 아파 못하겠다면 독서대를 사거나 의자를 장만해보자.


글 김희성

* <싱글즈> 2020 11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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