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조할인 Jun 28. 2020

[결백] 후기

예정된 눈물에서 느껴진 예상 밖의 맛

*스포일러 포함

'목소리 크면 이긴다', 그리고 '선즙 필승'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한국 영화 속 법정이다. 심지어 죽어서 재판받는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도 이 논리를 증명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치밀한 논리로 설득하기보다는 감동으로 윽박지르는 한국 법정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바닥이다. 미안하지만 코로나를 뚫고 어렵사리 개봉한 <결백>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다. 허점투성이 영화를 메우는 것은 시끄러운 감정이다. 다행히 이게 먹혔는지 극장 내에서도 훌쩍이는 관객을 많이 만날 수 있었지만, <결백>이 선사하는 눈물의 맛은 약간 묘하다.



용의자로 몰린 치매 걸린 어머니, 그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트 변호사 딸, 예고편에서부터 구린내를 풀풀 풍기는 정치인 등등 <결백>은 예상 가능한 카드들을 굳이 숨기려 들지 않는다. 심지어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구멍들도 여럿 눈에 띄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김윤진 주연의 영화 <세븐 데이즈>처럼 단점들을 눈치채지 못할 속도감으로 후려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의외의 결말을 선택하며 놀라움을 안긴다. 모녀가 흘리는 눈물은 누명을 벗은 것에 대한 후련함이 아니라, 대를 이어져 내려온 폭력의 굴레를 끊어낸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 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배종옥이 분한 엄마 '화자'는 떠나지 못해 머무른 사람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동네에 살았으나 여전히 외지인처럼 겉돈다. 동네를 장악한 것은 그 지역 토박이 카르텔이고, 이들은 오랜 기간 지역 사회를 주무른다. '화자'는 이 카르텔이 가한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능력의 부재와 자식 때문에 얽매인 채 벗어나지 못한다. 딸 '정인'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능력 있는 사람이지만 카르텔이 직간접적으로 가하는 폭력 앞에서는 계속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끈끈하게 엮어있는 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 화자가 택한 방법은 폭력이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그리고 이 방법밖에 없음을 체감한) 정인은 택한 것은 이에 대한 동조다.



이처럼 <결백>은 진실을 밝혀 사법 체계에 처벌을 위임하고 가해자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끌어내리기보단, 사적인 복수를 통해 폭력의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에 손을 들어준다. 마지막에 모녀가 흘린 눈물에서 감동이 아닌 후련함이 느껴졌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쉽게도 영화 자체는 시종일관 올드한 전개와 연출, 과한 감정으로 아쉬움을 안기지만, 결말의 선택은 곱씹어볼 만하다. 무엇보다 첫 스크린 주연작임에도 극을 이끌어가는 힘을 보여준 '신혜선'의 활약이 반갑다.

작가의 이전글 [#살아있다]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