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집중 호흡으로 관람하게 만드는 몰입감
<귀멸의 칼날>을 작년 초에 지인의 강력추천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봤지만 며칠 만에 만화책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까지 정주행 해버렸다. 내용은 전통적인 소년만화 배틀 왕도물이기는 하지만 시원시원한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설정들, 꽤 잔인하고 화끈한 액션까지 더해져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귀멸의 칼날> 첫 극장판 <무한열차편>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국내 개봉일까지 참지 못하고 주말 유료 시사회를 통해 일찍 작품을 보고 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1위 기록을 무려 19년 만에 꺾은 일본 내 엄청난 흥행세 때문에 영화의 기대치가 더욱 커진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많았다.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은 당연히 알겠지만 <무한열차편>은 애니메이션 마지막화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보통의 애니메이션 극장판들이 만화책 전개와 크게 관련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인 것에 비해 <귀멸의 칼날>은 원작이 본격적으로 탄력 받기 시작하는 <무한열차편> 에피소드를 극장판으로 제작했고 이 선택은 적중했다. <귀멸의 칼날> 팬들이라면 말 안 해도 당연히 극장으로 달려가겠지만, 일본 내 흥행 소식만 듣고 <무한열차편>이 궁금한 일반 관객들도 많고, '원작 하나도 몰라도 <무한열차편> 관람하는데 문제없나요?'라는 질문도 많다. 하지만 이번 <무한열차편>은 이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봤다는 전제 하에 시작되기 때문에 원작을 아예 모르고 보는 것보다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안되면 요약본이라도)나 만화책(우선 8권까지라도) 보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MCU로 따지자면 <인피니티 워> 안 봤는데 <엔드 게임> 봐도 되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어쩌다 보니 사설이 길었는데, 이번 <무한열차편>은 원작 팬들이라면 만족할만한 재미를 갖추고 있다. 우선적으로 짚을만한 장점은 바로 작화다. 사실 <귀멸의 칼날>이 인기 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애니메이션 때문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원작의 밋밋했던 액션들을 애니메이션 작화진이 영혼까지 갈아 넣어 엄청난 퀄리티와 분량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번 <무한열차편>도 90년대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선 굵고 화려한 높은 수준의 작화를 선보이고, 화끈한 액션 시퀀스들로 무장하여 웬만한 액션 영화 못지않는 박력을 뽐낸다. 그리고 중반부까지 소소하게 채워진 유머들과 캐릭터들의 가슴 아픈 과거사, 액션만큼 진한 감동까지 자아내며 원작 팬들의 눈물 탈곡기로 자리매김한다.
무엇보다도 <무한열차편>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극장판의 진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렌고쿠 쿄쥬로'의 존재감이다. 특이한 외형과 마이 페이스적인 성격 때문에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전투에서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기백과 최강의 적과 팽팽히 맞서는 강함을 보여주며 후반부를 압도한다. 또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칼을 맞댈 수 있는 용기의 기반이 무엇인지 렌고쿠의 꿈과 회상 장면들을 통해 그려내며 감정적으로도 관객들을 자극한다. 원래 원작에서도 아주 멋있는 캐릭터로 나오기도 하고 <무한열차편> 에피소드 자체도 꽤 괜찮았지만, 이번 극장판은 기대 이상으로 원작을 보완하여 다음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감을 엄청나게 높인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고, 본격적으로 액션이 펼쳐지는 중반부 이전까지의 전개가 좀 밋밋하다.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도 액션이 없을 때 분위기가 쳐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 부분은 꼭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팬들에게는 후반부가 감동적이긴 하지만, 라이트한 팬이나 일반 관객들에게는 신파로 보일 부분도 꽤 많기는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이게 과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기록을 깰만한 작품인가?'라는 부분에 집중해서 관람할 관객들이 많을 것 같긴 한데, 이 점은 원작 팬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의견이 갈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무한열차편>이 꽤 재밌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니, <귀멸의 칼날> 팬들이라면 절대 놓치지 말고 극장에서 '렌고쿠 쿄쥬로'의 불꽃 카리스마를 관람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