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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고 Jul 02. 2022

스타트업에서 내가 기대하는 역할을 하기까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 정립 4단계

지난 글에서 내 커리어를 베팅할 초기 스타트업을 고르는 법에 대해 소개했었는데요.

이번엔 스타트업을 정해서 들어간 후에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값진 경험을 쌓기 위한 행동 지침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뽑는 많은 회사들

요새 스타트업의 채용 공고를 보면 모두 약속한 듯이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해요.

예전엔 웹디자이너, GUI 디자이너, UXUI 디자이너였는데 말이죠. 디지털 제품을 다루는 디자이너는 이름이 참 빠르게 변화하는 듯해요. 이렇게 이름이 바뀌는 이유는 분명히 있죠. 디자이너의 역할이 점점 확장되고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뽑는 회사는 별로 없다

그냥 웹이나 앱을 디자인해주는 사람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생각하고 있는 기업도 많고,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인지하지 못하는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잘한다 싶은 스타트업이 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뽑는다고 하니까 그냥 똑같이 따라서 채용 공고랑 JD를 바꾼 걸 수도 있어요.


순진한 주니어는 이런 채용공고를 보고 설렙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사업을 성공시켜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회사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디자인이 사업에 끼치는 힘을 믿고 신뢰해주는 곳이라고 느껴져요. 뭔가 아주 이상적이고 멋진 회사를 꿈꿉니다. 가서 막 활약하고 싶고 포트폴리오에 자랑스럽게 넣을 만한, 디자이너로서 크게 기여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요.



막상 들어간 회사는
주니어의 이상과 너무 다르다

열심히 포트폴리오 만들어서 지원하고, 면접보고. 합격까지 하면 너무 기쁘죠.

하지만, 회사에 가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내가 꿈꿨던 이상적인 스타트업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어요.

- 기획 아이디어는 있으니 디자인, 개발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대표
- 와이어프레임, 기획서 다 있으니 디자이너는 예쁘게 GUI만 입혀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기획자
- 디자인을 심미성 혹은 사용성에만 한정 지어 생각하는 회사 사람들



그러면 입사하기 전에 기대했던 회사에서의 내 역할과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서 계속 떠오릅니다.

'나는 분명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데, 왜 GUI 디자인만 하지?'
'이 기능이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만들어 달라니까 그냥 만들어야 하는 건가?'
'내가 원하는 경험을 쌓고 회사도 나도 성장할 수 있는 곳이 맞을까?'

(물론 GUI나 인터렉션 등 세분화된 디자인 영역에서의 커리어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목표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쓰였다는 걸 말씀드려요.)


고객에 대한 이해 없이 누군가의 상상에 의해 나온 기획대로 디자인하라고 요청받을 수도 있어요. 고객이 이런 제품을 정말로 원하는지 최소한의 니즈도 검증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기능이 많은 벌써 거대한 플랫폼이 기획되어 있기도 해요. 디자인, 개발만 기다리고 있는 채로요. 만약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이었다면 아무리 디자인을 예쁘게, 사용하기 좋게 하더라도 아무도 쓰지 않을 텐데 말이죠.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프로덕트 디자이너란 고객이 마주하는 제품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결정해 고객과 사업의 목표를 동시에 이뤄내는 사람입니다.


지금 사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이해하고 이를 막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해결하는 사람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리서치를 할 수도 있는 거고 새로운 기능의 아이디어를 낼 때도 있고 제품의 플로우, 라이팅, UI까지 모두 보며 개선할 수도 있는 사람이죠.


과거의 롤과 비교하자면 지금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리서처+기획자+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특히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최고 제품 책임자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을
우리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주고 제대로 정립하자

이렇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역할에 대해 정립되고 있는 과도기 단계라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우리의 역할을 우리가 회사 내에서 직접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넓힐 곳은 넓히고 좁힐 곳은 좁혀서, 직접 자신이 속한 회사에서 역할을 만들고 찾아가야 하는 단계인 거죠.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뭔지도 모르는 회사에서 제대로 일하기 위한 방법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행동해서 제가 회사에서 기대했던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사업의 성과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에까지 의사결정 범위를 넓힐 수 있었어요. 추후 이직 과정에서도 이때 제가 수행했던 프로젝트와 성과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어요. 




1단계. 기본적인 신뢰 쌓기

일단 나에게 기대하는 일을 잘하면서,
사업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기

저는 처음에 회사를 들어가고 2~3달 정도까지 이런 기간을 가졌어요. 내 역할을 넓히기 위해서 기본적인 신뢰를 쌓아두는 단계입니다.


디자이너를 뽑았다는 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필요를 느껴서일 거예요. 당장 내가 원하는 대로 화면을 만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럼 일단 내게 맡겨진 일을 기본적으로 빠르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금 맡은 일을  해내고  후에야 처음에 기대했던  이상으로  사업의 성공을 위해  역할을   있는 사람이란  보여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회사에서 요새 사업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대표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아내 보세요. 팀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내는 거예요. 또 디자인을 잘하려면 고객에 대해 이해하는 게 필수니까 인터뷰나 설문조사 등으로 이 기간 동안 이해를 쌓아보세요. 그리고 같이 일하게 될 멤버들의 성향, 어떤 사람의 의견대로 주로 의사결정되는지 등을 관찰하고 사람들이 어떤 순간에 어떤 근거에 설득되는지를 파악해보는 것도 좋아요.





2단계. 사업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사업 성공을 위한 내 문제의식/생각/의견 나누기


내가 디자이너로서 만족할만한 퀄리티 높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하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 사업의 성공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단계입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디자이너가 우리 사업의 성공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걸 느끼면 굉장히 고맙고, 믿음이 갈 거예요. 자연스럽게 사업의 큰 결정에도 함께하게 됩니다. 꼭 엄청나게 중요한 아젠다를 나누는 회의 시간에만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는 건 아니에요. 식사시간, 잡담시간 등 틈틈이 사업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 무엇이든 의견을 나눠보세요.


그래서 대표와 팀원들이 고민스러운 게 있을 때 나에게 터놓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꼭 엄청난 솔루션을 내놓지 못해도 괜찮아요. 적어도 같이 고민해줄 수 있고, 새로운 의견과 시야를 준다면 신뢰하는 팀원이 될 거예요.





3단계. 내 역할을 행동으로 보여주며 제대로 정의하기

지금 우리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을 발견해
어떻게든 해결하기


이제 회사 내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역할해보는 단계입니다. 앞서 1, 2단계에서 신뢰를 쌓고 이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도, 고객에 대한 이해도가 쌓였다면 도전해보세요.


나에게 주어진 디자인 일을 넘어서 우리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고려해 선정해보세요. 이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가장 잘 해내야 할 주요한 일이에요. 지금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를 발견해내고, 문제의 작은 일부라도 해결하는 케이스를 만든다면 큰 인상을 줄 거예요. 이런 케이스가 한 번이라도 생긴다면 다음부터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특히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는 건 저희가 갖춰야할 중요한 역량이기도 하니, 회사가 모르고 있었거나 중요도를 낮게 보았지만, 사실은 고객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발견해 해결해본다면 좋아요. 또한 사업적 성과에도 직결되는 문제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3-1. 역할 넓히기

회사에서 디자이너에게 바라는 역할이 매우 좁았다면 스스로 올바른 방향으로 넓히는 게 중요해요.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화면 디자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할 지부터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솔루션을 기획하고 구체적인 화면과 플로우까지 만들어내는 사람이죠. 리서치, 문제정의, 기획, 전략 설정까지 역할을 넓혀 문제를 해결해보세요.


예를 들어, 다 나와있는 와이어프레임과 스토리보드 문서를 GUI만 입혀주길 바라는 것 같다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 목적,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다음 기획부터 제안해보는 거예요.

문제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 같다면 고객 리서치를 할 수도 있고요. "이런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리서치를 시도해보고 싶어요"라고 알리고, 리서치를 설계하고, 참가자 모집 계획을 세우고, 직접 리서치를 진행해 인사이트를 찾아낸다면... 굳이 말릴 사람이 있을까요?


리서치 방법 중에는 특히 UT(사용성 테스트)를 추천해요. 특히 작은 스타트업에선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부어줄 정량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정성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UT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는 것 같아요. UT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여기 남겨놓습니다.

https://www.slideshare.net/linsy88/pswc-ux-20120330/23

http://www.yes24.com/Product/Goods/15238736

https://blog.gangnamunni.com/post/usability-test/



3-2. 역할 좁히기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중요한 역할 외에는 덜어내는 것도 중요해요. 디자이너가 한 명인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보여지는 모든 작업물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회사 홍보용 굿즈를 디자인 해달라거나, 회사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달라거나, IR 장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달라거나, 배너에 들어갈 퀄리티 높은 그래픽 작업을 바랄 수도 있죠. 대부분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것들이에요.


하지만, 사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이런 멋져 보이는 곳에 리소스를 들여야 할 상황은 잘 없어요. PMF 찾기도, 리텐션 높이기에도 바쁠 텐데 말이죠. 우리 디자이너 있으니까, 다른 잘 나가는 힙한 스타트업처럼 뭔가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이는 것을 하고 싶어서 시킬 수 있어요. 그런 일들은 과감하게 쳐내거나 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업적으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그래픽 소스도 요새는 아주 많죠. 그런 것들을 적절하게 찾아 사용함으로써 시간은 적게 들이면서 회사에서 바라는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해요. 혹은 사업적으로 꽤 도움이 될, 필요성이 높은 작업이라고 판단되는 것만 선택적으로 할 수 있겠고요. 물론 이를 위해서는 내 리소스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더 사업적 성과를 높이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과 나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필요할 거예요.




4단계. 내 성과 알리기

프로젝트를 수행한 후엔
성과와 러닝을 기록 & 공유하기

해결책을 수행했다면, 반드시 어떻게라도 성과를 측정해서 기록하고 사내에 공유해보세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런 솔루션을 실행했더니 이렇게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디자인 성과를 증명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이 솔루션의 성과를 판단할 지표를 먼저 설정해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성과로 삼을 수 있는 것을 예로 들자면, 우리 사업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지표인 유료 서비스 구매율이 올랐다거나, 회원가입 과정 중의 이탈이 줄었다거나, 또는 해당 개선 사항에 대한 긍정적인 유저 보이스가 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겠습니다. '성과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게 되는데요, 쉽게 생각해서 그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목적을 달성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결과를 어떻게든 찾으면 됩니다. 구체적인 숫자의 변화로 보여줄 수 있다면 가장 좋아요.


이러면 포트폴리오에 쓸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나온 거예요. 나중을 위해서 꼭 기록해 두세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이런 역할을 했고, 그래서 이런 성과까지 낼 수 있었다를 알리게 되는 거죠. 이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항상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성공하는 때보다 실패할 때가 더 많기 마련이니까요. 실패했더라도 그러한 시도를 하면서 깨닫게 된 러닝을 기록하고 공유해보세요. 다음번엔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해야 할지를 제안하고 수행할 수도 있겠고요. 디자인 이터레이션이라는 게 사실 별게 없고 이 과정이에요.






이런 과정을 거쳐 회사에서 신뢰받는 디자이너가 된다면, 내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사업 결정에 온전히 함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가 되어서 비로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의 역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습니다. 큰 임팩트를 낼 수도 있고, 의사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결과를 보면서 깨닫는 것도 많아집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기업은 아직 별로 없는듯해요. 말로만 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도 없을 거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설득합시다. 모든 초기 스타트업의 디자이너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글들을 써볼 예정이에요.

날 가르쳐 줄 사수도, 체계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성장하는 법

설득력 있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포트폴리오 구성법

데이터를 볼 수 없는 회사에서 제대로 디자인하는 법

회사 다니면서 이직 준비하는 법


초기 스타트업에서 내가 원하는 역할을 한 후,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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