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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작가 Apr 01. 2024

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행이 그리워지는 순간

지난달, 나는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갔다 왔다. 일본 후쿠오카로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나의 두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태국이었고 그때도 가족들과 갔었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 되었다. 내 지난 여권은 태국여행 도장 한 번으로 사용기간이 만료되어 버렸다.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해 분실신고를 하고 새 여권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참 나는 여행이랑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였다. 물론 해외여행이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닐 거다. SNS에 여행 간 사람이 수두룩하다지만 막상 사는 게 바빠서 해외여행 못 가본 사람들, 그래서 SNS에 올리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겠지. 나도 그랬다. 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눌 때 잘 끼지 못했다. 매번 어딜 가보셨어요? 묻는 질문에 고갤 젓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흔한 제주도 조차도 그랬다. 아니 제주도까지 갈 것도 없이 내가 사는 동네 외에는 어딜 다녀본 적이 지극히 드물었다.


그런 내가 누나들의 설득으로 가족들과 일본여행을 가게 되었다. 일본 여행은 어땠나. 좋았다. 예상외로 날씨가 조금 추웠던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음식은 정말 별로였다. 못 먹겠다 싶은 음식은 없었지만 정말 대부분의 음식이 다 짜고 느끼했다. 느끼한 건 잘 먹지만 짠 건 정말 힘들었다. 어딜 가나 고봉밥을 주는데 아마 음식이 짜기 때문에 밥이라도 많이 먹으라고 그렇게 주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런 점을 빼면 여행을 즐거웠고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어 행복했다.


여행을 갔다 온 후 누나들은 여행 후유증에 빠졌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지나간 여행을 그리워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지난주 이 시간에 우리 다 같이 공항에 있었는데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어디가 좋았고 뭘 해서 좋았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인화했는데 그걸 보면서도 다시금 추억에 젖었고 후쿠오카 캐널시티 1층에 있던 가차샵에서 뽑은 열쇠로리를 보면서도 또 여행을 그리워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누나들은 나와도 이 그리운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자 했는데 막상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아련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일본에 있을 때는 일본에,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에 있었다. 사진을 편집하고 인화 사이트에 맡기면서 여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지만 별로 마음에 와닿는 건 없었다. 여행이 생각보다 별로였기 때문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단지 여행을 갔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그리워해야 하는 건지.


근데 오늘 문뜩 내가 뽑은 사진 중 하나를 책상 옆에 집게로 걸어두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지나간 일본 여행이 그리워졌다. 가족들끼리 찍은 사진도 아니고 사진만 보면 그게 일본인지도 모를 풍경 사진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내가 그 사진을 찍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그때의 시간과 기억들이 짧은 단편 영화처럼 지나갔다.

오렌지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사진. 사진을 찍은 건 여행 중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돌아다닐 때였다. 가족들끼리 간 것이었는데 누나들은 여행 내내 조카들을 봐주는 것이 고맙다면 나에게 짧은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다. 3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나 혼자 숙소 주변을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구경을 했는데 이 사진은 시장을 가는 길에 있던 어느 집 담장 너머 과실수를 찍은 것이다. 정확하게 저게 무슨 열매인지는 모르겠으나 담장 너머 크게 자란 나무에 선명하게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예뻐서 찍었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어느 작은 주차장 안이었다. 주차장에 들어가 서서 담 너머로 보이는 나무를 찍었다. 


참 적어놓고 봐도 별 특별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게 기억에 남았다. 저 사진을 찍었던 그 순간이 정말 별것도 아닌데 기억에 남는 것이다. 가족들이랑 다 같이 돌아다닌 여행 명소도 아니고 사진이 대단히 잘 찍힌 사진도 아니건만 그 골목에 서 있던 내가 왜 그렇게 그리워지는지. 너무 일상적인데 나에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일상이라서. 저 시장 골목에 있던 사람들,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 거기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매일일 일상에 나도 잠시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라서 계속 마음에 남나 보다.


작은 누나도 그런 얘길 했다.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만 기억에 남는 건 저녁에 누나들과 나만 따로 나와서 돈키호테에 물건을 사러 가던 그 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 여행을 간다면 이런 순간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유명한 장소나 특별한 공간보다는 이런 순간들.

사진 원본 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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