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브런치북에서 떨어졌다.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MJ가 기대하면 실망하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실망하는게 두려워서. 그래서 브런치북 당선자 명단에 내가 없어도 낙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코끼리가 떠오르듯 기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다. 특별상이라도 되면 좋겠다. 아이패드를 바꾸고 싶은데 500만원은 무리더라도 100만원 상금을 타 보태면 좋지 않을까. 너무 크지 않도록 조금씩, 가끔씩 브런치북 수상을 기다렸다.
그렇게 브런치북 수상작을 발표한다는 걸 며칠 전에는 사이트에서 확인했지만 정작 당일인 오늘은 잊고 있었다. 알게 된 건 인스타에 다른 작가님 스토리를 보고서였다. 특별상에 당선되었다는 스토리. 그걸 보고 나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나는 떨어진거구나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아주 얄팍한 마음으로 브런치 사이트를 방문했다. 확인했다. 없었다. 몇 천 개의 공모작들이 있었다는 글을 읽었다. 나도 몇 천개의 글 중 하나였을 뿐이겠지. 상 대신 응원의 박수를 받으며 나는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급하게 준비했으니까.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담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의식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하고싶은 일은 또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역시 또 있으니까.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며 오늘의 결과에 너무 젖어 있지 않도록 했다.
근데 계속 마음에 남는다. 운으로 뽑는 복권 같은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래서 더 운동화 안에 들어간 작은 돌조각처럼 거슬리고 신경쓰인다. 대단히 아쉽고 억울하고 내 노력을 인정받지 못해 울분이 차오르는 그런 격한 감정이 아니라 그냥 별 일 없이 내 할 일을 하다 문득문득 떠올라 씁쓸한 아쉬움의 뒷맛이 입안에 남는다.
그래서 글을 좀 적어보기로 한다.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써야지 잘 써지지. 비록 브런치북에 응모한 건 만화그림이었지만 글도 써야지. 계속 써서 나아가고 발전해야지. 언제든 글 같은 건 잘쓸수 있다고 근거없이 자신하지 말고 계속 써서 나를 정리해야지.
그래서 글을 쓰고 있다.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