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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프 YUNP Aug 15. 2021

400일의 쏘버(SOBER)

나의 금주기


2020년 7월 4일, 새벽 3시쯤. 금주를 결정했다. 딱히 누구와 싸우거나 혼이 난 것은 아니고, 어느 순간 '내가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라는 법적 허용 연령에 들어서면서 낭만이며 멋으로 시작했던 술이 분명 맥주 한 잔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나는데 10년이 지난 그 순간에는 위스키 1병으로 진화(사실은 악화)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혼자 살기 시작하며 내가 스스로의 규칙을 정하다 보니 '매일 저녁 한 잔(또는 한 병) 한다'라는 스스로의 가훈이자 가풍이 되어 모르는 새 나의 지갑과 건강을 털어가고 있었다. 몇 번 절주도 해보고 단기적으로 금주도 해봤지만 결국은 그 한 잔의 낭만으로 돌아가곤 했다. 술을 끊지 않을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사회생활하려면 해야 한다, 여기까지(주로 해외 출장지) 왔는데 한 잔 해야지, 한 잔 마셔야 진솔한 대화를 하는 것 같아 등등. 이런 얘기를 타인이 했다면 그들을 원망이라도 하겠지만 전부 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끔은 남들에게 하던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얼굴은 북쪽의 김 모 씨를 닮아 둥그레지기 시작했고 관절은 아파졌다. 러닝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즐기고 싶어도 무릎이 매번 비명을 질러 중도 포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무서운 것은 그때는 내가 그렇게 헤비급이 되어간다는 것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체중에 세 자릿수로 향해가는데도 여전히 나는 근육량이 많은 거라며 착각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숙취로 인해 업무 능력이 떨어졌으면 당연한 바이다.


혼술을 즐기던 7월 4일 새벽, 나는 마시던 위스키를 전부 세면대에 부어버렸다.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마시고 싶다는 얘기가 곧 또 나오면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로 했다. 물론 비웃음을 살 것은 알고 있었다. 부모님, 여자친구, 회사 팀원들, 친구들에게 나의 단호한 결단을 통보했다. 역시나, '며칠이나 가나 보자', '한 달 넘으면 그때 와서 얘기해라' 여자친구를 제외한(유일하게 처음부터 믿어준 사람이다) 지인들은 고맙게도 코웃음을 쳤다. 정말로 고마웠던 것이, 그들의 웃음이 나의 의지를 불태웠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분노가 치솟았다.


그렇게 벌써 400일이 지났다. 아직도 사람들은 그렇게 좋아하던 네가 술을 끊었다니 믿을 수 없다. 한 잔은 몰래 먹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금주 약속을 깨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 생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는 무알코올 맥주를 마셨고, 회식으로 바에 가면 무알콜 칵테일(보통은 그냥 여러 가지 주스를 섞은 설탕물에 가깝다)을 마셨다. 금주와 함께 삶에 긍정적인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체중을 10kg 감량했으며 피부 염증이 사라졌다. 뜨겁던 얼굴과 상체의 열기가 내려갔고 잘 붓지 않았다. 건강을 회복하자 운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으며, 운동은 정신을 청명하고 날카롭게 유지시켰다. 시간이 많이 생겨 다른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라인 PD 일을 했으며, 번역 프로젝트를 몇 번 했다. 뉴스레터를 시작했고 방통대 통계학과에 입학했다. 음주인이었다면 아직도 도전도 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술친구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차피 나와 친한 것이 아니라 술과 친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가끔은 한 잔의 낭만도 그립긴 하다. 그러나 그 잠깐의 낭만보다 현실에서 목표를 실현하는 성취감이 더 커서, 금방 그립지 않아진다.


앞으로 술을 마실 계획은 없다. 400일의 쏘버가 4000일, 20000일의 쏘버가 되었으면 한다. 만약 독자가 어디선가 벌건 얼굴과 격양된 목소리로 떠들고 있는 나를 만난다면, 한대 쳐도 된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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