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합격의 기쁨일까, 드디어 끝이라는 해방감일까.
합격전화를 받았을 때, 하필 부모님과 함께 있었다.
나는 서류에 합격하거나 면접전형에 가더라도 절대 부모님께 알리지 않는 아이였다. 괜히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해드릴까봐, 또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어서. 서류전형에 합격하더라도 절대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고, 평상복을 입고 나간 뒤 싸가지고 간 정장을 갈아입고 면접을 갔다. 그리고 다시 평상복으로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절대 모르실 줄 알았던 부모님은 야속하게도 다 알고 계셨다. 내가 발버둥치고 있는 것을 그저 묵묵히 모른척하셨다.
어느덧 학기의 끝무렵이 되자, 뜬금없이 아빠는 휴가를 냈고 갑자기 지방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셨다. 어디로, 왜 가는지 괜히 물어보기 겁났다. 그저 차 뒷자리에 탄 채 졸업유예를 해야할까, 어떻게 신청하지 멍하니 이런 생각이나 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가 차 안의 정적을 깼다. 뜨는 번호를 봤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많이 본 번호였다. 아무 생각없이 받았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ㅇㅇㅇ씨 되시지요? XX사 최종합격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세상 천지가 개벽할 줄 알았다. 당장이라도 데굴데굴 구르고 방방 뛸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지신 부모님을 느꼈다. 차 안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통화소리가 다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 나는 그저 얼떨떨했기에, 감사하다며 아주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심지어 인사담당자가 당황해서, '아, ㅇㅇㅇ씨는 별로 안 기쁘신가봐요. 하하하... 그.. 다음 전형은 어떻게 되냐면요.' 하며 민망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렇게 길지 않은 통화를 끝내자, 분명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고 있을 엄마가 조용히 물어봤다. "누구니?"
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드렸다. "응. XX사 최종합격했대."
데굴데굴 구르고 방방 뛰시는 건 우리 부모님이었다.
그렇게 위로의 가족여행은 축하의 자리가 되어 나는 그날만큼은 너무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게 합격이라는 기쁨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드디어 해방이라는 자유로움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했던 건,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다 잊혀졌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날 하루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만큼 최고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매사 그렇지만, 취업도 등산과 같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고생스러웠던 오르막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잊혀진다. 그러니 힘들어도 그냥 그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럼 최종합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