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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 Jul 06. 2018

실장실에 마실 것 좀 가져와, 시원한 걸로.

"인원은 4명."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참 얄궂게도 실장실은 인사팀 바로 옆에 있었다.


실장실은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팀장님은 실장실에 불려들어갔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실장실에서는 큰소리가 났다. 그래서였는지 사무실은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신입사원이었던데다, 가뜩이나 큰소리가 오가는 실장실 옆이었다보니 어떻게 하고 있어야할지 방법을 몰랐다. 다행히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동기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누군가 볼까봐 눈치보여 못했다. 그냥 중간중간 선배님들이 부르시면 이것저것 잡일을 했다.


여자 선배님은 2분이었는데, 1분은 나이가 많으셨고 또 1분은 사무지원 일을 같이 하시는 것 같았다. 다른 팀원들이 출장을 다녀오거나 뭔가 비용지출이 있으면 영수증을 들고 그 선배님한테 왔다.

배치된지 하루가 좀 지났을까, 그 사무지원 일을 겸하시는 선배님이 나에게 오셔서 그 지원업무를 알려주셨다. 전표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팀원들의 출장비는 어떻게 지급하면 되는지 등을 말씀해주셨고, 어떻게 알았는지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다 나에게로 왔다. 그 때 나는 한창 채용업무를 팀장님으로부터 배우고 있었는데 아, 이것도 인사업무인가보다, 하면서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이많으신 여자 선배님께서 우리 2명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대뜸 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내가 지켜봤는데, 손님이 오면 호두 씨(작가)가 제깍제깍 센스있게 응대해야하는 거 아닌가? 막내면 막내답게 눈치껏 굴어야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거니와 당황한 마음이 커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왜 실장님이나 팀장님이 호두 씨 안시키는지 알아? 불편해서 그런거야 불편해서. 그러면 호두 씨가 알아서 먼저 가서 커피타드리고, 차 드리고 해야지. 자꾸 쟤 (사무지원 선배) 시키잖아."

"아, 너무 그러지 마세요 선배님. 제가 그냥 하면 돼요~"


그렇게 약 30분간 꾸중을 들은 뒤, 마지막으로 "예, 알겠습니다."하면서 나왔다.


타이밍도 정확해서, 마침 나오자마자 손님이 오셨다. 또 꾸중을 들을까봐서,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부리나케 탕비실로 들어갔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대충 커피를 탔는데 정신이 없어 손님 수를 헤아리지 못해 몇 개를 타야할지 몰랐다. 그렇게 허둥지둥하고 있으려니, 팀장님이 오셔서 뭐하고 있는건지를 물었다.


"아, 손님이 오신 것 같아서 커피를 타고 있었습니다."

"음."

"그런데 몇 명이신지를 미처 못봤습니다."

"음, 3개타면 돼."


그리고는 돌아가셨다. 허겁지겁 3잔의 커피를 타고, 그냥 가지고 가면 안될 것 같아 쟁반도 찾았다. 그렇게 덜덜거리며 실장실로 들어가서 부들부들 커피를 드렸다.  




그 이후, 팀장님은 손님이 오실 때마다 나를 부르시고 자연스럽게 몇 명인지를 말씀해주셨다. 한번은 커피를 준비해서 드리고, 한번은 차를 타서 드렸다. 나중에는 커피와 차, 둘다 넉넉히 쟁반에 들고가서 손님께 어떤 것을 드실지 여쭤봤다.

얼음이 없어도, 차가운 커피와 차가운 둥글레차를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실장님 손님 분들은 나이대가 있으시니 물의 양을 가급적 적게 해서 진하게 커피를 탔다.


난 그저 내가 신입사원이라 이렇게 커피를 타고, 전표처리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1년이 가고, 3년이 지나 인사팀에 새로운 신입사원이 와도 난 여전히 그 일을 했다. 부서 사무용품들을 관리했고, 부서 회식 건이 있을 때는 장소 예약을 하고, 탕비실을 청소하고 커피를 사서 채웠다. 그렇게 7년을 했다.

참 원망스럽게도 난 눈치가 너무 빨라서, 불만을 제기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팀장님은 이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2명의 여자 선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팀장님보다 근속년수가 길었고 승진에서 계속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런 예민하고, 머리만 아프고, 티나지도 않는 일들에 팀장님이 쏟을 신경 따위는 없었을 것이었다.


내 이후로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은 모두 남자였다. 팀장님도, 실장님도 모두 남자였다. 왜 여자선배들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전표며 커피며 넘기기에 바빴을까.

처음에는 여선배들을 원망했지만 그들도 피해자라는 걸 이해하게 된 지금은, 그렇게 옹졸해져버린 그들이 참 가엾다.

하지만 제일 무지하고 바보같은 건, 이런 전근대적인 조직에 들어온 바로 나 자신일진대.

나말고는 탓할 사람도 없고, 탓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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