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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세기말에서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비교적 올드하게 느껴지는 장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테크노 음악이라고 말했을 때 떠오르는 대표적인 곡은 이정현의 <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테크노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테크놀로지(Technology, 과학 기술)에서 파생된 단어인 테크노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한 갈래로, 신시사이저에 드럼 비트가 추가되어 격렬한 느낌을 주는, 4/4박자로 일정 구간이 반복되는 특징을 보이는 장르다. 테크노 음악을 듣는 이들은 이를 ‘패션쇼에서 흘러나올 것만 같은 곡’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테크노는 1980년대 후반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디트로이트 테크노’라는 단어가 나오며 그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한 테크노는 영국과 독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후 테크노는 버밍햄 사운드, 인더스트리얼 테크노, 하드코어 테크노 등 여러 하위 장르를 파생시켰다. 이로 인해 테크노가 기원한 지역은 미국 디트로이트,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 총 세 곳으로 설명된다.
한국에서 테크노는 수명이 짧았지만, 외국에선 꽤나 오랜 시간 그 명맥을 이어왔다. 1980년대 등장한 디트로이트 테크노 음악으로 대표되는 곡으로는 리딤 이즈 리딤(Rhythim Is Rhythim)의 <Strings Of Life>, 모델 500(모델 500)의 <No UFO’s>가 있다. 이어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애시드 테크노가 등장하며 플라스틱맨(Plastikman)의 <Plasitque>이 많은 사랑을 받았고, 1990년대엔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하드코어 테크노가 등장하며 Rotterdam Terror Corps(로테르담 테러 콥스)의 <God is a Grabber>가 인기를 끌었다. 또 앰비언트 테크노 장르 또한 등장하며 Aphex Twin(에이펙스 트윈)의 <Tha>가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DJ UMEK(디제이 우멕)의 <Sunday at El Row>, Egbert(에그버트)의 <Dezelfde Weg>, Alan Fitzpatrick(앨런 피츠패트릭)의 <Love Siren>, deadmau5(데드 마우스)의 <FALL>, Maddix(매딕스)의 <Your Mind> 등 여러 테크노 음악이 발매되며 명성을 이어갔다. 물론 시대가 변하며 여러 사운드가 곡 내에 추가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테크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 장르 중 하나다.
테크노에 대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바로 케이팝 씬에 테크노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극 초반을 마지막으로 한국 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테크노는 최근 여러 케이팝 곡을 통해 기적적으로 대중들에게 또 한 번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이번 글에서 얘기할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르세라핌(LE SSERAFIM)의 <Crazy>다.
지난 8월 발매된 르세라핌의 <CRAZY>는 테크 하우스 비트에 어반 스타일 랩을 더한 곡으로, 이 길 끝에 번듯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보장도, 보기 그럴듯한 포장도 필요 없으니 짜릿하게 모든 것을 던지고 미쳐보자고 말하는 르세라핌의 포부를 담아냈다는 것이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설명이다. 이전에 발매된 <Smart>가 ‘아프로비츠’라는 생소한 장르에 기반을 두었던 것처럼 르세라핌은 이번에도 흔치 않은 장르를 선보이며 자신의 음악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르세라핌은 ‘내 심장에 강림 넌 CPR 같이’, ‘몰라 육하원칙 따윈 제길 난 그런 재질’, ‘내 답은 make me super crazy’, ‘더 이상 내 끌림 앞에 거짓 증언은 않지’, ‘우린 눈이 멀 것을 알아도 저 태양에 kiss’ 등의 가사로 자신을 미치게 하는 대상을 만난 순간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냈다. 그뿐만 아니라 보깅을 안무에 넣으며 곡이 자아내는 강렬함을 배가시켰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중독적인 비트, 보깅으로 신선함을 선사한 <Crazy>는 빌보드 핫 100 차트 76위, 영국 오피셜 차트 83위에 오르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음악방송 4관왕을 달성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이처럼 르세라핌은 테크노가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케이팝 그룹으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에스파의 <Whiplash> 또한 이번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지난 10월 발매된 에스파 <Whiplash>는 EDM 기반의 테크노 장르의 곡으로, 틀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기준과 잣대로 거침없이 나아가며 어딜 가나 판도를 바꾸는 당당한 에스파의 매력을 담아냈다는 것이 SM엔터테인먼트의 공식 설명이다. ‘어디서나 거침없어 I’m the coldest’, ‘오직 나만이 이 판을 바꿀 Changer’, ‘알아 적당함이 뭔지 Keep it classy’, ‘I’m the highlight 비춰 Red light’, ‘거친 Next sigh 만들어갈 History’와 같은 가사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에스파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앞서 테크노의 특징을 설명할 때 언급했듯, <Whiplash> 또한 강렬한 사운드를 내뿜는 일정한 구간이 계속 반복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흔히 ‘쇠 맛’이라고 불리는 에스파만의 날카로우면서도 중독적인 비트, 멜로디는 청자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곡을 따라 부르게 만든다. 빠르고 파워풀한 곡인 만큼 안무 영상을 곁들이면 즐기는 재미가 배가 되는 것도 감상 포인트다.
높은 중독성과 장르의 참신함 때문일까, <Whiplash>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Global Top Song Daily’ 차트 스트리밍 지수 2024년 케이팝 걸그룹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음악방송 2관왕을 달성하고, 음반을 총 백만 장 이상 판매하는 등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에스파는 이로써 케이팝 씬에 테크노의 완전한 부활을 선언했다.
르세라핌의 <Crazy>, 에스파의 <Whiplash> 등 앞서 설명한 곡들은 테크노 장르에 대한 한국인의 관점을 뒤집어 놓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선 올드하게만 여겨져왔던 테크노가 이와 같은 음악들을 통해 이미지를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테크노라는 음악의 한 장르가 더 이상 옛날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이상 더 많은 아이돌이 이에 도전하고, 또 획기적인 퍼포먼스를 세상에 보여주길 바란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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