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Writer. 차이트
인터넷에서 밈으로 떠도는 이미지 중 하나다. 필자도 지인들과 이런 이미지를 주고받으며 원 없이 웃는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유머이기만 하면 다행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이 밈이 현실을 그 무엇보다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고도의 블랙 유머처럼도 느껴진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군가 무언가를 보고 느낀 감상을 묻는다면, “너무 좋았어요.”라고 대답한다. 각자가 느낀 ‘좋음’은 다르겠지만서도 대답하는 것만 보면 모두 똑같은 사람인 것만 같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구구절절 늘어놓기가 뭣해서 ‘안’ 하는 것 뿐이라며 체면치레라 둘러대는 사람도 많은 것은 덤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체면 때문일까? 실상은 진지하게 멍석을 깔아도(예를 들면 수업시간의 발표나, 비공식적인 학술대회 등에서) 자기 생각과 입장을 조리있게 정리하는 것조차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를 애써 웃기려는 목적이었다고 둘러대겠지만 정작 거짓말을 한 꺼풀 벗기면 조리있는 표현력의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 씁쓸한 현실이다. 분명히 해 두어야겠다. 표현을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다르다. 물론, 보통 '안'하는 사람이면 '못'하기 마련이기는 하다는 일종의 상관관계는 있다. 자기 표현을 제대로 끄집어내고 다듬어본 적이 없어지기 시작하니 타인의 표현 역시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렇게 사람의 일반적인 사고과정과 인문학에 대해 전혀 이해도가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곧 사회 전반에 소통 오류가 만연해진다.
평론을 오해하고 분노하는 이들 역시 같은 논의선상에 있다. 특히나 아이돌과 대중문화 음악 평론을 보면 그 저의를 이해하려는 시도는커녕 멋대로 곡해한 맥락 위에서 수신자끼리 설전이 오간다. 이것이 아이돌 판 특유의 극도의 조심스럽고 예민한 팬덤 성향과 만나면 더욱 상황은 소모적으로 번진다. 발신자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듣고 하는 건설적인 피드백보다 분노에 찬 육두문자만 오가는 상황을 건강하다고 생각할 이가 있기는 할까? 이 상황은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문제’라고 할 만한 건덕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하루는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을 내려보다 뜬 블랙핑크 4인 솔로 음반 평론을 향한 대중반응이 눈에 띄었다. 특히 로제의 솔로앨범 평론을 향한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텍스트에 왜곡이 일어나는 과정 설명에 이만한 예시는 없는 것 같아, 지금부터 후술할 내용은 해당 사례분석과 함께 전개해보려 한다.
일단 위 스크린샷 속 별점은 5점 만점, 평론가는 3명이다. 로제의 솔로 앨범 《rosie》에는 2명이 2점, 1명이 3점을 주었다. 평론의 공통된 내용은 ‘앨범명은 《rosie》임에도 정작 내용물은 테일러의 것일 뿐이다’, ‘자기자신이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반응은 위와 같다. 진짜 댓글에서 말하는 대로 이 평론이 단순히 주관대로 그를 깎아내리고 싶어서 하는 ‘후려치기’거나 ‘시기질투’일까? 만약 당신이 단정짓기보다 진짜로 평론의 전문성에 의문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면, 우선 테일러의 잔재일 뿐인지부터 확인해봐야 할 일일 것이다. 만약 잔재가 아니라면 댓글 반응처럼 ‘후려치기’에 가까울 가능성이 한 단계 높아진다고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댓글 작성자의 주장이 맞을 경우, 앞선 세 평론가를 제외한 다수의 평론은 정반대 논조여야 한다. 하지만 피치포크, 이즘, 브런치 등 각기 다른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세 평론가 역시 비슷한 시기에 만점 중 절반 내외의 점수만 주었다. 아이돌을 포함해 폭넓게 듣고 리뷰하는 두 엔터업계 및 음악 유튜버(나초마초, 익평삼)에게서도 역시 이견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쪽이 중론과 객관에 가깝지 않을까. 하물며 점수 뿐이라면 모르겠으나 모두가 짠 듯 내용도 똑같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닮았다’고 말이다.
한성현 평론가가 따로 꼬집어준 테일러의 《1989》를 들어보자. 그리고 이를 〈Two years〉, 〈toxic till the end〉를 들으며 비교해보자. 테일러 스위프트는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 Taylor+economics)’라는 유행어도 만들고, 대학에서는 그의 음악을 주제로 한 강의도 열릴 만큼 이제 그는 현대음악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필수교양 같은 존재다. 그 정도로 이미 글로벌 팝에 누구보다 끼친 영향이 많다.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런 테일러를 잘 몰랐던 필자조차 로제의 노래에서는 그의 향기를 너무도 강하게 느꼈다. 하필 최종공개 타이틀로 내세운 〈toxic till the end〉는 그 어느 곡보다도 더 그렇다. 브릿지에서 이펙터 먹인 보컬과 가쁘게 치고 들어오는 신스, 곧 이어지는 어쿠스틱 기타 위 절제미 있는 감정표현의 보컬에서 그의 잔상이 강하게 비친다. 이후 고음 애드립과 전개되는 3절의 편곡 방향 및 사운드 설계는 테일러의 그늘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앨범은 굳이 말하자면 로제의 ‘취향 모음집(compilation; 컴필레이션)’에 가깝다. 같은 부분을 한성현 평론가는 ‘정성들인 필사본’보다 ‘참고문헌 일람’ 같다고 표현해냈는데, 필자 뿐 아닌 전문 평론가 분들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부분이라고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고유한 개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없다는 것 외에 후반부 전개가 너무 느슨하다는 단점도 있다. 〈APT.〉가 있는 초중반부까지는 그래도 감상에 완급조절이 될 만큼 신선함과 편안함이 교차로 감상자를 휩쓸고 지나간다. 하지만 후반부는 최소한의 ‘밀당’도 보이지 않아서 발목을 잡는다. 특히 9번 〈not the same〉부터 12번 트랙 〈dance all night〉까지가 그렇고, 보너스 트랙인 〈vampirehollie〉까지 조금의 변주도 없다. 장르도, 분위기도 말이다. 잔잔한 감성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이상적인 완급조절과 역동성의 정도가 따로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없다. 한줄평에는 자세히 적혀있지 않지만, 위 평론의 출처인 라디오방송 ‘음악매거진 뮤브’ 원본을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황선업 평론가는 여기서(상단 우측사진 참고) “기억이 나야 얘기를 하죠. 기억이 안 나는 거에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라며, “아무리 진솔하게 얘기를 하려고 해도 인상적인 부분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혜림 평론가 역시 “아파트 외에는 그 노래가 다 그 노래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이라고 보태는 모습이다.
다시 댓글을 보자. 어라? 싶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평론과 댓글내용은 전혀 딴판이어서, 이 글에 댓글을 단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이들 중 대다수가 한줄평조차 제대로 읽은 건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왼쪽 댓글에서 지적한 바에 먼저 덧붙이자면, 평론진이 ‘로제 음악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기에는 좀 어폐가 있다. 정확히는 ‘음악의 개성 부재’라고 했다. 라디오에서도 ‘무난무난한 트랙으로 골라왔다’라고 이야기했으니 곡 선정 센스나 뼈대 자체부터가 문제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기는 아무래도 힘들다.
이런 의미에서 우측 사진 역시 문해력 문제의 일종이다. ‘개성 부재’가 가사의 내용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언급한 적이 없다. 가사 표현과 보컬의 호소력이 반짝이는 〈number one girl〉 정도를 빼면 이별, 후회, 불안, 우울, 분노에 대해 말하는 나머지 챕터는 전부 전 연인과 나쁘게 이별한 누군가라도 풀 수 있는 내용이고, 없는 상황을 지어내서라도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만 갖고 가사가 ‘개인적’인지 알 수 없고, 결국 가사만을 빌미로 ‘자기화’가 됐다고 말함은 설득력이 너무 약하다. 당장 내용을 보아도 장르, 편곡법, 사운드 설계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개성을 문제 삼는 글이 많을 뿐 가사를 꼬집는 글은 없다. 당초 논의의 범주부터 잘못 짚은 예시다.
그저 좋은 음악이라는 점 역시 호감의 이유는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뿐 ‘별점이 올라야 하는 이유’까지 되기는 어렵다. 왜일까? 그냥 ‘듣기 좋은 음악’이어야 함은 상업 음반의 당연한 전제조건이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음반은 대개 이 조건을 이미 충족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멤버들은 듣기 좋으면서 개성도 챙긴 상황이라면, 《rosie》는 그에 비해 낮은 점수인 것이 이치에 맞고 공평하며, 타당하다. 게다가 그저 ‘좋은 음악’일 뿐이라면 이미 많은데, 그것이 전부라면 ‘굳이’ 로제의 음악이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로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를 찾아들을 이유도 없어진다. 이는 좋은 일이 아니다. 로제는 자기 음악에 반해서 사람들이 먼저 찾아올 만한 가수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많고 많은 ‘그냥 좋은 음악’을 하는 가수들 사이 부러 그를 찾을 이유가 없음은 곧 음악 외적인 캐릭터(음반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비성이 매력적인 블랙핑크 메인보컬이라는 그룹 내 역할 등)에 기대지 않는 이상, 청취자층으로부터 어떠한 독립적 수요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도 로제의 경우 〈APT.〉 이외에 부차적으로 고르게 주목받은 B-Side 곡은 전무하다. 다수의 시상식에 후보 지명을 받은 곡도 〈APT.〉 뿐이다. 좀 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멤버들의 B-Side 곡에 대한 성적과 평가 모두 어땠는지 함께 기술해보겠다. 지수의 경우 나머지 세 곡이 고르게 팝송과 케이팝 사이의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라며 호평 받았고, 제니는 타이틀 곡 〈like JENNIE〉 외에도 〈Mantra〉, 〈ZEN〉, 〈ExtraL(Feat. Doechii)〉 등이 앨범 전체의 흥행을 함께 이끌었다. 리사 역시 〈Rockstar〉, 〈Moonlit Floor〉, 〈Born Again(Feat. Doja Cat, RAYE) 〉, 〈NEW WOMAN(Feat. ROSALIA) 〉 등 선공개 곡의 셋리스트를 잘 꾸려서 좋은 첫인상을 남긴다. 리사의 경우 각 곡의 장단점이 다른 앨범보다 들쭉날쭉하지만서도 동시에 그만큼 훌륭한 상호보완이 이루어지는 덕에 감상자가 다른 곡을 찾아 헤매도 앨범을 이탈하지는 않도록 확실히 붙들어 맨다.
물론 로제도 눈여겨볼 만한 트랙이 없지는 않다. RnB치고 흥겨워서 신선한 리듬의 〈drinks or coffee〉, 갈라지는 쇳소리와 탁성, 긁는 소리 등으로 부르는 〈stay a little longer〉 등 곡마다 소구점이 확실한 부분도 엄밀히 말하면 있기는 하다. 다만 자신의 앨범 안에서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갈 정도로 환기력을 만드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뜻이고, 시상식 후보지명 결과로 보이듯 그의 앨범은 B-Side가 전체적으로 모범적이라 할 만큼의 고른 주목도를 받지는 못했다는 것이 글의 요지다.
내 취향인 곡이 나쁜 점수를 받았다고 해 보자. 설사 그렇다 한들 기분으로 응수할 일은 아니다. 기분이 나쁠 것 같다면 평론을 찾아보지 말고 혼자 기분 좋게 들으면 된다. 굳이 평론을 찾아본다면, 내 취향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은 상기하고 보아야 한다. 점수를 낮게 줄 만한 이유가 있다면 낮게 줘야 하고, 높게 줄 만한 이유가 있다면 높게 줘야 하는 것이 평론이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평론이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이상한지 느낄 수 있다. 평론을 볼 때 기분이 좋을 것(개인 취향인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을 기대하고 본다면 자신을 위한 편파판정을 바란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평론이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려 한다면 누군가의 홍보용 메가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눈치나 자본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제일 자유로워야 할 위치의 “평론”을, 본인이 읽는 중이라는 메타인지조차 없이 접하다 기분이 나빠졌다면 그것은 읽은 사람의 책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만약 완독 후 기분이 나빴다면 오해는 아닐지 다시 읽어보는 것도 권한다. 머리 식히기에 좋다. 내 입장과 다르다면 작성자가 글에 담으려던 저의는 무엇일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일단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 이런 부분을 거치지 않으면 논의의 장은 금세 소모적 각축장이 된다. 물론 글을 읽고 받아들이고, 느끼는 과정에서의 모든 사회적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리터러시를 기르려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 노력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취향과 애정이 끼어드는 영역이라 더욱 말이 제대로 오가기 조심스러운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평론이란 제 3자의 시선이 얹어질 수 있다는 메타인지력 확보와 피드백의 소중함에 그 의미가 있다. 이런 통찰이 주어지면 차기작의 방향에 녹여낼 수도 있고, 시장 전략에도 반영할 수 있다. 아티스트는 이를 바탕으로 아쉬운 부분을 다음 작품에서 보완해낸다면 더 나은 길을 제시하는 데에 결정적인 방향키가 된다는 궁극의 목적도 실현할 수 있다. 예술작품 해석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해석 가이드라인을 잡아주기도 한다. 입문자들에게 역시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 및 통찰력을 길러주는 것도 평론이 하는 일이다. 그러니 그저 ‘쉽게 말하는 것’, ‘자신의 지적 허영을 보이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논리적 어폐가 있다. ‘기분 나쁨’은 평론이 지탄받을 이유가 못 된다.
어떤 음반이 좋은 음반일지 비전을 제시하고 기준을 잡는 것. 그것이 평론의 목적이다. 그렇다 보니 업무의 일종으로 점수로써 음악의 위아래를 필연적으로 나누게 된다. 이것을 취향을 깎아내린다는 식으로 오해한다면 사실과 당위의 문제를 크게 혼동하는 것이다. 취향에 점수를 매기면 안 된다는 것은 ‘당위’이고, 취향이든 뭐든 결과물에 평가가 내려질 수 밖에 없음은 ‘사실’이다.
필자는 묻고 싶다. 평론가들이 정말로 나 혼자 잘남을 떠들기 위해 글을 쓰는 것 같은지, 그렇게 느꼈다면 대체 어디가 그랬는지 말이다. 오히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자신이 가진 음악적 지식을 나누는데 열중하고, 신보를 알린다. 평론은 더 좋은 음악을 많이 발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이를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라는 취지가 행동과 글 내용에 묻어난다. 그러므로 이들은 보통 자신이 느낀 ‘좋음’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열심히 설파하고 다닌다. 별로라면 왜 별로인지, 앞으로 이 가수가 어떤 음반을 내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동호회를 만들고, 강연도 연다. 필자 역시 이런 흐름에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의지를 이어받아 달리고 있다. 아이돌레에 들어와 수많은 음악과 아이돌 업계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발견하고 누리는 기쁨을 나누고 싶다. 음악에 대해 급을 나누는 일이 필연적이어도 좋은 음악을 알아보고 배운다는 행위 자체에 의의를 두고 싶다. 랭킹은 어디서든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순위를 매기고 평가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 분노하거나, 속상해 하거나,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결국 크게 의미가 없지 않나. 그보다는 점수가 매겨진 뒤 각자의 대처와 감정 추스르기 및 피드백 반영, 발전 등에 마음을 쏟는 것이 훨씬 ‘평가’라는 필연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길일 것이다.
올 상반기 음악평론단체 izm(이즘)에서는 대중을 상대로 몇 차례 강연을 열었다. 당연히 필자도 열심히 들으러 다녔다. 하지만 생각하고픈 대로 생각하고, 읽고 싶은 대로 읽는 사람들 중에서는 정작 강연을 들으러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하진짜너무좋앗어’ 정도로 모든 것을 소비하고 표현하는 상황이 그저 현실을 부풀린 풍자라면 차라리 좋겠다.
표현해낼 줄 모르면 다른 사람의 사고과정도 유추할 수 없기에 타인의 텍스트를 읽을 줄도 모르게 된다. 읽을 줄 모르는 사람 한 명이 만들어내는 오해의 맥락을 다 풀어내기에도 온갖 노력이 동원되는데, 그런 이가 다수라면 세상은 온갖 오해가 만들어내는 불만으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작품을 진지하고 무겁게 소비하는 이들이 자신의 지적 허영을 자랑한다는 오해는 이미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오해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글 끝에 와서야 밝히는 바지만 필자는 블랙핑크에서의 최애를 물으면 항상 로제라고 대답해 왔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그런데 왜 점수를 짜게 줬나요?”라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면, 지금 당장 돌아가서 다시 글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개인적인 취향과 애정이 점수에 영향을 대놓고 미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작품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받는 오해와 이들의 순기능을 조명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헤비리스너에 대한 대중의 오해와 힐난 양상, 그리고 그 원인을 다룬 한 블로그의 글인데,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 이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려 한다.
지식탐,
지적 허영...
(중략)...
헤비리스너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가 저런 어휘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그들은 왜 저런 어휘들을 쓰면서까지
헤비리스너를 굳이 비판하고 싶어하게 되는 걸까.
간단하다.
나도 그런 지식인이 되고 싶은데
헤비리스너가 그걸 막고 있기 때문이다.
헤비리스너들은
그저 보통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지적 허영도 허용하지 않고,
지식탐이나 지식욕에 대한 의욕도 상실하게 만들고,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도 워낙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불가능해지고,
자기 위로를 하고 싶어도 왠지 초라하게 느껴지고,
포스팅을 해도 괜히 비교만 되고...
그러고 나면 음악은 자신에게 도피처로서 제대로 구실도 못하게 되고,
쿨한 낭만주의적 양태를 갖기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저런 마인드가 없는 사람들은 헤비리스너를 비판/비난하지 않는다.
(중략)
하지만 정작 헤비리스너들은 저런 것들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며 살고 있다.
헤비리스너라고 뭔가 굉장한 상징적 가치를 갖던 시대는 갔다.
이제는 저런 방식으로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인 시대인데 말이다.
그리고 헤비리스너들의 양태를 살펴보면
그들은 언제나 타인과 음악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동호회를 만들고
음악추천을 하고
게시판 활동을 하고
신보소개를 하고
리뷰를 하는,
그런 모든 것들을 한다.
그걸 지적 허영이나 포장하려는 의지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고마움을 느끼며 함께 즐기는 사람도 역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Alex Ramos, Pitchfork, 2024년 12월 19일, https://pitchfork.com/reviews/albums/rose-rosie/
Tiffany_kikiki, Instagram, 2025년 3월 15일, https://www.instagram.com/p/DHOI5WsTpoa/?img_index=2&igsh=MWVhNmpiYWpnODJ5ag%3D%3D.
나초마초, “팀전 끝 개인전 시작�ㅣ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블랙핑크 솔로 활동기”, YouTube, 2025년 3월 10일, https://youtu.be/sPGl2m9K4GI?si=0ESK5uvBoYtqHQPZ
박정빈, “로제 첫 정규 앨범, 어땠어?”, brunch, 2024년 12월 21일, https://brunch.co.kr/@kpopberdiblue/285
우키팝, “이번 피치포크 사태에 대하여”, YouTube, 2024년 2월 2일, https://youtu.be/3rC-Wa-zcl4?si=ZIzj_cGe7viaKz_7
익평삼, “4인 4색 음악세계, 블랙핑크 솔로활동 리뷰”., YouTube, 2025년 4월 18일, https://youtu.be/K8lXHXI8ypE?si=tz7NEph3Gts5F_dh
지니, “헤비리스너에 대한 변명.”, 네이버 블로그(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 2005년 7월 27일., https://blog.naver.com/afx1979/80015478482
뮤직 매거진 ‘뮤브’ MUVE, “80회 - 지드래곤, 제니, 리사, 지수, 로제의 솔로 앨범 전격 리뷰 (with 황선업 평론가, 조혜림 기획자)”, YouTube, 2025년 3월 13일, https://www.youtube.com/watch?v=8Hjpq-jTbn0&t=3876s
한성현, izm, 2024년 12월 28일, https://www.izm.co.kr/posts?id=33083
* 이 글은 아이돌레 웹진 소유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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