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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Mar 16. 2024

뭐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나를 위한 적응기간이었다

 3/4(월) 모든 학생들의 2024년 신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듯, 18개월 내 딸에게도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어린이집 첫 등원날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3/16(토). 이주가 넘은 현시점에 딸의 어린이집 등원을 주제로 한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겐 사실 참 당황스럽다. 왜냐하면 솔직히 딸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마다 내가 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딸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분리불안에 시달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등원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내가 우는 내용의 글을 쓸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딸의 어린이집 입소 확정 통보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감기 증상과 함께 고열을 앓은 적이 있었다. 열이 40도에 육박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워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많이 아프다던데. 3월에 내가 계획대로 복직을 했을 경우 딸이 아프다고 어린이집에서 연락이라도 오면 학교에 있는 나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내가 옆에 있지 않은데 딸이 아픈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남편이 휴직을 하고 딸 옆에 있다고 해도 불안했다.


 흐르던 눈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더 고민 끝에 남편이 아니라 내가 6개월을 더 휴직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흘러 2월 중순의 어느 날 저녁, 어린이집 신입 원아 부모를 대상으로 OT가 진행되었다.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분위기였지만 딸이 내 품을 떠나 처음 이곳, 외부기관에 맡겨진다고 생각하니 괜히 긴장이 되어 입이 바짝 마르고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었다.




 첫 등원 날이 도래했다. 다행히 아이들의 적응기간이라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오전 10:00-11:00, 1시간 동안 있다 귀가한다.


 딸이 엄마와 함께여서인지 울지 않고 대부분 잘 지내는 듯했으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여서인지 엄마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이었다. 또, 걱정하던 딸의 욕심이 드러났다. 친구들이 갖고 있던 장난감을 갖고 싶어 떼를 쓰고 울고, 하나씩 배부되는 풍선을 더 갖고 싶어 했다. 친구들과 함께 갖고 놀아야지 하며, 친구가 딸에게 장난감을 줄 땐 고마워 하자 하고 딸을 어르고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존재하던 긴장감은 사라질 줄 몰랐다.


 둘째 날, 딸이 어린이집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또래들과의 생활을 인지한 것인지 친구들의 장난감을 뺏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갖고 있던 장난감을 친구에게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첫날의 딸의 욕심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역시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인가.




 시간이 흘러 3월 둘째 주가 되었고, 이번엔 엄마 없이 딸만 어린이집에서 1시간을 보내다 온다. 드디어 나의 눈물샘이 터질 시기가 온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문 앞까지 나오셨고, 딸에게 친구들, 선생님과 재미있게 놀고 있으면 엄마가 좀 이따 올게하며 인사했다. 딸은 같은 시간에 등원하던 아이에게 온 관심을 두느라 엄마는 보는 둥 마는둥한 채 선생님의 손을 잡고 반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일어난 딸과의 헤어짐이라 눈물이 날 새가 없었다. 선생님은 그날 알림장을 통해 딸이 반에 들어가서 엄마가 없음을 인지하고 1시간의 대부분을 울면서 보냈다고 한다.


 둘째 주도 어김없이 하루, 이틀 흘러갔지만 희한하게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 날은 없었다. 딸은 울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날이 갈수록 현격히 우는 양이 줄어들었고, 금요일엔 거의 울지 않았다.




 나는 내가 딸을 어린이집에 홀로 보내는 데 울지 않은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어린이집 보내기 한참 전에도 딸과의 분리를 상상하며 울었던 나였으니까. 딸이 아니라 내가 더 불안하고 울 것 같아서 계획했던 복직을 미루면서까지 휴직을 연장했으니까.


 어쩌면 어린이집에서 딸과 함께 한 일주일의 적응기간이 딸이 아니라 엄마인 나를 위한 적응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딸과 노는 것이 익숙해졌고, 선생님과 얘기하는 시간이 늘었으며, 어린이집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불안해하는 엄마까지 품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어린이집이 더 포근한 곳으로 느껴졌다.




 모레면 3월 셋째 주, 마지막 적응 주이다. 딸이 이번엔 두 시간 동안 엄마 없이 어린이집에 있다 온다. 그다음 주부터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야말로 진짜 어린이집 생활 시작이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적응주 이후, 7-8시간 동안이나 딸과 떨어져 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직 적응주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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