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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Apr 23. 2024

행복과 즐거움만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고통과 슬픔도 다시

 이제 막 20개월이 된 딸을 키우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한 번 뿐인 인생을 자식 덕분에 다시 살아보는 것 같다고. 딸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 즐거움을 옆에서 지켜보며 같이 느끼고 있으니까.


 세상살이에 지쳐 잊고 있었던 유아기의 순수한 행복감에 깜짝 놀라곤 하지만 이내 반갑다. 참 많이 삶에 찌들었었네. 나도 저랬었지. 딸 덕분에 이걸로 다 웃기도 하고. 하면서


개미 관찰에 빠져있는 딸



 남편과 딸을 데리고 집 근처 산책을 하다 벤치에 잠시 앉아 쉬고 있었다. 발치를 멍하니 들여다보다 개미를 발견했는데, 최근 딸과 개미를 주제로 한 자연관찰책을 읽은 기억이 났다.


 “우와 OO아, 여기 개미 있네. 봐봐! “ 하고 딸을 불렀더니 딸이 웃으면서 개미를 한참 동안 관찰한다.


 개미가 아주 작은 부스러기류의 먹이들을 들고 가는 모습에 책 속에서 본 그림과 영락없이 같아 딸에게 일러주었더니 씩 웃는다.


 남편은 딸 덕분에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소환하다 이내 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딸 덕분에 잊고 살았던 나의 어릴 적 추억까지 회상해 본다며. 사느라 참 바빴나 보다. 나도 옛날에 개구리, 잠자리, 풍뎅이, 여치 같은 거 많이 잡고 다녔었는데 하면서.     


잠든 딸을 팔베개해주며, 그리고 왠지 모르게 전보다 더 꼭 나를 껴안던 딸을 안아주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순간들


 그날 밤, 딸이 밤새 기침과 38.7도에 육박하는 고열, 코막힘 등으로 인한 호흡 곤란으로 잠을 설치기에 심각성을 인지하고 아침이 되면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단순 감기로만 생각하고 집 근처 소아과에서 기침, 코감기 약만 처방받아 며칠을 먹였는데 아침에 좀 더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니 폐렴이었다.


 의사의 진단을 듣자마자 그동안 딸의 상태에 대해 그저 조금 심한 감기겠거니 하며 안일하게 생각한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했다. 딸에게 너무 미안했다. 결국 집중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을 하려면 피검사를 해야 한단다. 약 20개월밖에 안된 딸의 연약한 팔에 주삿바늘을 꽂아 피를 뽑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것이 힘들어 딸과 함께 나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약한 엄마이고 싶지 않아 소리 없이 흘린 눈물을 몰래 소매 자락으로 훔쳐냈다.


 입원하는 3박 4일의 기간 동안 딸에게 약을 투입하기 위해 링거도 꽂아야 했다. 유아의 혈관을 찾기가 쉽지 않아 2-3번을 다시 찌르고 딸은 대성통곡을 하며 엄마에게 매달렸다.


 자책과 동시에 딸의 고통을 어쩌면 엄마라 더 깊디깊게 느끼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럴수록 딸을 더 내 품 속 깊이 안아주고 딸의 뺨에 내 얼굴을 맞대고 조금만 참자, 괜찮아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함께 지나가야 했다.




 딸 덕분에 인생 2회 차를 다시 살아간다고 느낄 정도로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음에 딸에게 고마웠다. 힘든 육아임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행복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딸이 느낄 고통과 슬픔까지 다시 느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그러면서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어디 숨어있다 갑자기 나를 놀라게 하며 눈앞에 나타난 듯했다.


 몸이 아플 때나 또는 청소년기, 성인이 되는 성장과정에서 겪을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이나 자신만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많은 어려움 등. 딸을 기다리고 있을 성장통들이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엄마인 나도 고스란히 같이 그 어려움, 고통을 느끼며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인 내가 더 힘들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이미 겪은 성장통이었으므로 좀 더 의연하게 딸이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잠시 기대어 쉬다 다시 일어설 힘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 딸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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