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How Do You Feel?>
딸이 21개월쯤 아주 짧지만 문장 형식으로 정확하게 발화하여 나를 놀라게 한 문장이 "I'm full." 간식을 먹다가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나온. 배를 만지며 한 터라 더 놀라웠다. 자신이 발화한 영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제대로 필요한 상황에 사용했으니까. 이를 가능케 한 건 자주 노래로 듣고, 읽었던 그림책 <How Do You Feel?>이다.
<How Do You Feel?>의 노래는 재생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흥이 나는 선율과 리듬으로 몸을 쉬이 들썩이게 만든다. 그래서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춤도 추고 리듬에 몸을 맡기며 흘려듣기로 익숙해진 뒤 책을 함께 보며 읽어주었다. 책 내용도 영어로 몇몇 감정이나 상태 관련 형용사들을 이해하기 쉽게 잘 묘사한 그림들로 한 장씩 구성돼 있다. 읽을 땐 목표 형용사(책 내 진하게 표시된 부분)를 더 강하고 세게 불러주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엄마의 과장된 연기력으로 표정, 제스처를 가미했다. 가령, happy의 경우 "하하하" 하며 웃고, sad의 경우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불렀다. bored나 sleepy의 경우엔 우리말도 사용했다. "심심해", "아이 졸려 아함~"처럼.
약 1주일간 반복된 노래 듣기와 책 읽기로 자연스레 습득한 내용들이 제법 되었나 보다. 재생된 노래와 함께 엄마가 책을 읽어줄 때 딸은 종종 자신이 소리와 의미를 아는 형용사를 노래와 동시에 따라 부르기도 했다. 위의 사진들이 그 예시들인데 ‘bored’, ‘happy’, ‘sad’, ‘shy’, ‘sleepy’가 그것들이다. 가끔 한글이나 영어를 보고 “엄마 이건 뭐야?” 하고 묻곤 하는데 “글자들이야. OO이가 글자를 알게 되면 혼자 책을 읽을 수도 있어”하고 대답해주곤 했다. 아직 소리와 글을 매칭하진 못하지만 소리와 그 의미를 잘 파악하는 두 돌 즈음의 딸. 가까운 미래에 글자를 깨우쳐 책이 주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 푹 빠질 딸을 사뭇 기대하곤 한다.
어느 대학 교수가 말했다고 한다. 자식이 영어를 잘하길 바란다면 아기 때부터 영어 노래를 틀어놓고 들려주라고. OO이가 태어나고 6개월 전후부터 우리 동요든, 영어 동요든 하루의 많은 시간을 들려주곤 했다. 계속 듣다 보니 엄마인 내가 다 외워버리게 되었고 많은 시간 내가 노래를 직접 불러주었다. 엄마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에 대해 영어는 모국어만큼이나 디폴트값인양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혀 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내 딸이 영어를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했던 마음은 그저 영어를 놀이로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다. 진실로. 그렇게 딸과 함께 한 영어 노래 듣기와 영어 그림책 읽기 시간들이 딸의 나이만큼 쌓여갔다. 잘 웃고 활동적인 성향의 딸이라 그 시간들이 더 달콤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에 아빠, 엄마가 귀여움에 몸 둘 바를 몰라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춰버렸고 많은 순간 어른인 우리가 더 그 순간에 몰입했더라. 그 시간들이 쌓여 딸은 나의 바람대로 영어를 거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또 다른 소리일 뿐이다.
1살 딸이 나에게 알려주는 답: 이른 영유아 시기에 언어란 글자가 아니라 소리이자 그림(이미지)이다. 세상의 많은 소리들을 들려주고 그 소리가 가진 의미들을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으로, 그림책의 그림으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들로 체득토록 도와주는 것이 딸이 태어나고 만 1년 동안 내가 엄마로서 해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