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히려 여유 있는 날의 아침에 차를 타고 커피를 사서 도서관을 가는 그 적당한 거리가 나를 즐겁게 하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독서량이 많지는 않다.
내가 즐기는 것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이지, 책을 읽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재밌을 거라고 기대했던 책이 실제로 재밌어서 술술 읽게 되는 즐거움보다
재밌을 것처럼 보이는 책을 고르는 순간이 더욱 행복하다.
다독상을 받은 적도 있다.
도서관에서 대출 도서량을 기준으로 상장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고르는 것에 더 기쁨을 느끼는 것은 어떤 도착증의 증상이려나?
필시 상관관계가 있을 듯한데, 나는 현금을 좋아한다. 어떤 이는 소비에서 행복을 느끼도 하지만 나에게 소비는 필요에 의한 것이거나 가성비 눈금의 미세한 떨림이 만들어내는 적절한 조정의 순간이 일으키는 소박한 충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행동일 뿐이지,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열망은 거의 없다. 나를 스크루지에 빗대며 너는 늙어서 외톨이가 될 거라며 나의 인색함을 비난하는 아내에게
스크루지나 자린고비 일화의 주인공들이 존중받아야 할 부분을 무시당하고 단지 문제만 있는 부류로 취급하는 것은 사회적 폭력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아내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떨게 만든 적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현금을 좋아하는 건 단지 인색하거나 쪼잔함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숭고하거나 경이로운... 없어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빌리는 것을 좋아하고 소비보다 소비를 할 수 있는 현금 보유에 집착하는 것은
'나는 가능성을 사랑하는가 보다.' 하고 다소 있어 보이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서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로 우리는그냥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부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소망한다. 비싼 집과 화려한 생활, 멋진 곳으로의 여행,
실제로 이런 것들을 성취하는 것보다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상징을 열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연예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가?
나의 고백을 승낙하던 그녀의 입술이 주었던 황홀함보다
오히려 밤길에 나란히 걷다가 유난히 대화가 잘 된다 싶어
그녀를 바라봤을 때, 우연히 마주친 그녀의 눈빛으로 느꼈던 그 순간의 설렘의 잔상이 더 뚜렷하지 아니한가?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으로 인한 고양감과 흥분!! 그 순간에 우리는 열광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슬픈 착각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끼어들 새도 없이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입술인가? 빛나던 눈망울인가?
도서대출과 현금에 대한 선호도가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라면... 그 집착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