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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국 Jan 12. 2023

눈과 함께

홋카이도 여행

홋카이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삿포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여행했는데

그 기억이 요즘 무척 아련하다

삿포로의 근교에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유명한 오타루가 있다.

오타루는 가급적 기차를 이용해서 다녀와야 한다.

1시간 남짓 거리인데 삿포로에서 오타루 가는 길에

오른쪽 창가로 바다가 계속 스쳐 지나간다.

기찻길에 인접한 바다의 풍경도 이색적이지만

바다의 경계에서는 눈이 시작한다. 하얀색과 옅은 파란색의 조화가 기차 창문 너머로 순식간에 그리고 하염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오타루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현실에서 발은 몇 센티쯤 공중에 떠 있다.

으헝...

오타루 역에 도착한다.

오타루는 하루에 다 둘러보며 구경할 수 있는

자그마한 도시다.

그런데 그곳이 모두 하얀색으로 덮여 있다.

분명 눈이 치워진 도로도 있었고 회색빛 누런빛, 심지어 초록색의 건물도 있었는데,  지금 떠올리면

온통 하얀색만 떠오른다.

오타루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로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15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오타루의 풍경은

친근하며 따뜻했다.

발 끝에 힘을 주어도 현실과 닿지 않을 만큼

몽환적인 느낌이 지속되었다.

흰 눈이 쌓여 있는 전망대에서 흰 눈으로 덮여 있는

오타루를 바라보았다.

난 러브레터의 OST를 재생시켰다.

러브레터 영화는 첫사랑의 순수함과 오묘함을

흰 눈으로 형상화했더랬다.

러브레터의 'Winter story'는 오타루를

더 오타루답게 만들었다.

사진이 즐 수 없는 현장감

그래도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오타루 운하를 거닐 때는 도저히  착륙할 수 없을 거 같았던 현실감각이 조금씩 돌아왔다.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던 작은 음식점에서 스키야키를 먹고 아기자기한 디저트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오르골 가게에서 오르골 구경을 하며 나름 관광객의 본분을 다했더랬다.

하지만 오타루는 그 흰 눈이 쌓인 도시의 느낌 그 자체가

가장 매력적인 관광상품일 것이다.


오타루를 방문한  다음날

비에이를 향했다.


비에이 여정은 렌터카를 이용했다.

보통은 고속도로로 1시간 반 정도 가면 되지만

그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고속도로가 폐쇄되었다.

그래서 일반 도로를 이용했다. 

비에이까지 4시간 정도 걸렸다.

평소라면 그 정도 걸리지 않겠지만 눈이 너무 많이 왔다.

우린 눈이 쌓이고 눈이 휘몰아치는 산 길을 헤쳐서

비에이로 향했었다. 생각해 보면 고속도로를 폐쇄될 정도로 눈이 오는데 일반도로는 왜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오타루의 여정은 바다와 이어져 있었지만

비에이는 눈 덮인 산을 넘어 다녀야 했다.

오타루의 눈이 낭만을 주었다면

비에이의 눈은 공포를 주었다.  

눈이 너무 쌓여 길인지 길이 아닌지도 모르는 도로를

헤쳐 나가는데 아무리 와이퍼를 흔들어도 눈으로

시야가 하얗게 되는 순간이 꽤나 길게 자주 발생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 가면 무섭다.

고립과 조난의 공포가 계속 나를 괴롭혔다.

동행한 친구는 색다른 경험이라며

뭐가 신났는지 속절없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한 번은 눈에 차가 파묻혀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차를 밀려고 차문을 열려니 눈이 너무 쌓여

열리지 않았다.

아...

겨우 차 문을 조금 열고 눈을 헤치고 차를 미는데

차는  센티 정도만 앞으로 갈 뿐이었다.

이것은 조난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내 친구는 연신 색다른 경험이라며 짖어 댔다.

마침 제설차가 눈보라 속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그 위용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내 친구의 바람처럼 되었을 것이다.

미쳐가는 친구

흰 수폭포에 도착했다.

잠시였지만 눈이 오지 않았고 날씨도 화창해졌다.

눈 덮인 설산과 얼음의 폭포가 만들어내는 장관이

꽤나 신선했다.

흰수염 폭포래... 얼굴이?

청의 호수와 크리스마스 나무도 좋긴 했지만

그때부터는 다시 눈이 쏟아져 목숨을 걱정해야만 했고

관광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살기 위해 삿포로를 향했고

다시 가슴 졸이며 산을 넘고 눈을 헤쳤더랬다.


눈에 낭만과 목숨을 걸고 다녀온 여행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이 따듯하기만 한 겨울을 보내고 있자니

그곳의 하염없고 무자비했던

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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