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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Dec 07. 2016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

오늘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한 할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천안을 가는 열차가 맞냐고. 1호선 신도림에서는 같은 승강장에 인천과 수원, 천안 방면으로 가는 열차가 번갈아 오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종종 있다. 나도 집이 안양이라 열차를 타긴 했는데 병점행인지, 천안행인지가 헷갈렸다. 둘다 방향은 같지만 병점은 중간 종점이어서 천안을 가려면 한 번 내렸다 다시 타야한다.

이런 설명을 하려고 다시 물으니,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천왕' 이라고 말한다.

천왕역은 광명과 부천의 사이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해있다. 지금 이 열차를 타도 가자면야 얼마든지 가겠지만 일단 7호선이니 문제가 다르다.

사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1호선 인천행을 탔다면 온수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거나, 지금처럼 수원행을 탔다면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환승해도 된다. 아니면 아예 2호선을 타고 대림역에서 7호선을 타는 방법도 있다.

영 못미더워 다시 물으니, 이번엔 '대림'역을 가신단다. 이젠 몇 번을 물어도 '대림'이다.

아쉽게도 대림역이야말로 1호선이 아니라, 2호선을 타면 딱 한 정거장이다.


자, 이제 열차는 출발했다.

할아버지는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렸고, 갑자기,여기서부터는 잘 알겠다면서 성큼성큼 떠났다.


어제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셋이 앉아있었다. 인천가실 분들은 내려서 환승하시라는 안내멘트가

나오자 갑자기 분주해졌다.


A: 우리 내리라는 거 아니야?

B: 뭔데, 어딘데, 우리 갈아타야해?

C: **어딨지?(반대편 벽에 붙은노선도에서 자신들이 내려야 할 역의 위치를 살폈다)


1호선 하행 지하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인천행이건 수원행이건 구로역에서만 결정하면 늦지 않는다. (구로역에서는 환승하려면 육교를 오르락내리락 해야하기 때문에 신도림역에서 미리 갈아타라는안내를 해주는 기관사 아저씨도 있다)

따지고보면 -어디서부터 타고 왔는지는 몰라도-애초에 인천, 수원행을 가려 탔으면 좋았을텐데 중간에서 한 번 갈아타야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학생들은 다음 역을 알리는 안내판에 나오는 '신도림' 이라는 한자를 '동대문'으로 읽는 작은 소동까지 벌인 끝에, 결국 인천행을 탔어야했다는 사실을 끈질기게 밝혀내고 구로역에서 하차에 성공했다.


학생들은 지금이 무슨 역인지도 잘 모르고 환승방법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지만 목적지가 확실했다. 오늘만난 할아버지는 비록 "알겠다"며 자신있게

내렸지만 결국 어디가 목적지였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학생들처럼 확실한 목적지를 두고 불확실한 방법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속편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목표가 있으니 어떻게든 잘 가면 되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 나는 불확실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있다고 믿거나 익숙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보며 불안하다고 생각했던 태도를 내 삶에 적용해놓고 편안하다고 느꼈으면서 학생들의 상황이 속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무슨 '언젠간 분명 죽음'이라는 정해진 내일 앞에서, 어떻게든 내일은 꼭 살 것처럼 큰소리를 떵떵치다니.


충격에 빠졌지만, 오늘은 이거라도 썼으니 괜찮을 거야, 라는 마음으로, 내일도 뭐라도 해야지, 마음먹으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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