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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Sep 26. 2017

02. 설거지를 돕지 않는 남편

부부 리포트 02. 설거지

2017년 3월, 결혼을 했다.

우리는 누구보다 길게 연애를 했지만 결혼은 달랐다. 결혼 전에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만나는 ‘점’으로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통화를 하는 ‘선’의 형태로 서로를 이해했다. 지금은 물건과 공간, 호흡을 함께하면서 삶 전체를 입체적으로 공유하는 기분이다.

이것은 서로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고, 새로운 익숙함을 만들어 나가는 부부의 이야기다.


02. 설거지 - 설거지를 돕지 않는 남편


의식주 문제 중에도 ‘식’은 개개인의 취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먹어야 사는 것은 같지만 누구나 세 끼를 챙겨 먹지 아니하기도 하고 단 한 끼를 먹으려고 할 때도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다. 때론 먹을 게 없어서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우린 제 돈으로 밥을 사 먹게 된 시점부터 너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우린 늘 먹어왔고 이렇게 살아있다.


그런데 우리가 먹어 치운 그 많은 밥그릇은 다 누가 씻었을까?

고백하면 결혼 전 나는 밥 먹고 뒤도 안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는데도 그랬다. 살기 위해 밥을 차려먹고 상을 치우는 일까지는 했다. 설거지만큼은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가끔, 간신히 설거지를 해냈던 그런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고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괜찮다. 내가 설거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난 방법을 공개한다.


우선 설거지를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봤다.

당연히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난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면서 하루 세 끼를 집밥으로 먹는 사람이다. 집밥이 너무 좋다. 그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설거지를 맡기자. 아내? 아 그것은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한다. 아니다. 그 돈으로 아내와 더 좋은 곳으로 놀러 갈 테다.

조금 양보해서 식기세척기를 사면 어떨까. 집집마다 호불호가 살짝 갈리긴 하지만 사실 우리도 혼수 준비 때 식기 세척기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결론적으로 주방이 좁은 탓에 세척기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아 포기했다.


다시 원점이다.

내가 설거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싫지만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어른의 삶이다. 그래서 또 생각해봤다. 어떻게 하면 설거지를 덜 힘들게 할 수 있는가.

하나, 설거지를 하면서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듣는다. 트와이스 노래를 따라 부르면 “치어럽 베이베” 하니까 힘이 난다. “수세미가 오늘따라 샤샤샤”하며 가사를 바꿔 부르는 재미도 있다.

둘, 그때그때 한다. 한 끼를 먹고 소량의 그릇이 있을 때 잽싸게 하면 된다. 그릇이 적을 때는 뭔가 아쉬워서 ‘다음에 해야지’ 생각하는데 막상 쌓이면 엄청 하기 싫어진다.

셋, 특히 덩치가 큰 냄비나 팬을 먼저 씻자. 하나뿐인데도 싱크대를 꽉 채우는 냄비는 이상하게 의욕을 떨어뜨린다. 냄비라도 얼른 닦으면 그릇 몇 개쯤은 잠시 미뤄도 할만하다.

마지막 네 번째, 다 무시하고 그냥 설거지를 도와주지 말자. 이게 핵심이다. 설거지를 도와준다는,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면 스트레스가 확 사라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은 남자가 도와주는 게 아니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부부일수록 남편이 집안일을 돕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설거지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저 내가 먹은 밥그릇을 내가 닦는 일이다. 종종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남편이 집안일 잘 도와줘?”라던가 “내가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거든.”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왜 때문일까. 왜 우리는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원봉사자 같은 존재인가. 혹시 헷갈릴까 봐 정확하게 다시 한번 힘주어 이야기한다. 집안일은 돕지 말자. 우리 집 일은 우리가 하는 거다. 돕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힘들다면 기계 문명의 힘을 빌려보자. 식기세척기를 사고 무선청소기를 사고 빨래건조기를 사자. 어떤 기계는 정말 삶의 질을 올려준다.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가전

1.    빨래건조기 – 우리 집 베스트 가전.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다 되면 건조기로 옮겨 넣고 다 되면 접어서 옷장에 넣으면 된다. 세탁에서 건조까지 2시간이면 된다(가스건조기의 경우).

2.    로봇물걸레청소기 – 우리 집 노예템. 정말 소리도 안 내고 돌아다니며 방바닥을 닦아줘서 내가 바닥에 엎드릴 일을 줄여준다.

3.    무선청소기 – 선 없는 자유로움. 경험해본 자만이 안다.

4.    로봇청소기 – 우리 집 원조 노예템. 가만있어도 먼지가 쌓이는 집안을 자주 훑어주는 덕에 사람이 청소하는 빈도수를 낮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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