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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Mar 19. 2021

한결같던 MBTI가 달라졌다.

사람은 안 변하는 줄 알았는데, 변하긴 변합디다.

가진 게 없어 맹신하는게 많다. MBTI도 그 중 하나다.


나는 30년을 넘게 살면서 ENFP와 INFP가 아닌 적이 없었다. 행복하게 살 때는 ENFP가 나오고 우울한 나날을 보낼 때는 INFP만 나왔다. E와I가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걸 제외하면 항상 같았다. 어쩜 단 한번을 틀리지 않고 저런 우유부단한 성향이 나오는지, 개인적으로는 불만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나는 30년동안 상담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상담을 청했다. 나는 잘 들었고 잘 끄덕였다. 특히 연애상담을 잘 했다. 간혹 내 연애상담에 좋은 결과가 생겨 고맙다고 밥을 산 이도 더러 있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데에 특화돼 있는 듯 했다. 확실히 그랬다. 사람들이 날 표현할 때 그렇게 말하곤 했다. 공감을 잘한다. 공감의 아이콘이다. 넌 참 나의 감정을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아.

나는 날 기특하게 여기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고민을 듣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다. 고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그렇다. 예전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는데, 요즘은 그런 고역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힘이 든다. 대화를 피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얘기를 두 번 하면 그렇게 답답하다. 예전엔 5번을 넘게 들어도 처음 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들었는데, 이제는 그게 참 힘들다. 예전엔 누군가 틀린 얘기를 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해도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면서 다 들었는데, 요즘엔 사사건건 사실관계를 따지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구나, 하면 끝날 얘기를 그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 아니냐며 따지고 있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 놀라곤 한다.



이렇게 된 시점이 언제인고 하니, 결혼을 한 뒤부터다.


나와 남편은 약간 여자와 남자의 심리적 역할이 반대다. 남편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는 해결책을 제시하려 든다. 그러면 남편은 공감해주지 않아 슬프다고 말한다. 너처럼 공감 못하는 애는 없을거라면서 삐진다. 나는 그 와중에도 니가 이러니까 이렇게 된거지. 니가 잘못했네 같은 얘기를 펼친다. 남편은 더 삐진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찔찔댄다.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런 타입이 아니었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예전의 나는 조립같은 건 손도 대지 못했다. 예전의 나는 심심하면 상상을 하고 공상을 했다.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즐겼다. 그런데 요즘은 남편을 대신해서 조립을 하고 조명을 바꾼다. 심심하면 수학문제를 풀고 알고리즘을 만지작댄다. 웬일인지 영화와 드라마는 너무 지루해서 못 보겠다. 성격이 변하고 있다. 성격이란게 변하고 있다. 성격이란것이 변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남편은 정말 어떻게 이렇게까지 마이너스의 손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계를 잘 못 만지는 편이다. '만진다=부셔진다'가 공식이다. 컴퓨터도  내가 고친다. 남편의 자전거가 오면 내가 조립한다. 남편은 봄이를 보며 잠자코 기다린다. 내가 잠깐 나가서 조립이 어려워지면 빨리 오라고  손을 모으고 기다린다. 사람이란게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상대적인 거라더니, 조립고자 감성파 남편과 있으면 나는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부부라는 건 서로 닮아가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점점 채워가는 거라더니. 내 성격까지 바꿔가면서 함께의 의미를 다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얼마 전 MBTI를 다시 했다.

INTP가 나왔다.

아무리 다시해도 INTP만 나온다.

33년의 성격이 변했다. 확실히 나는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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