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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Sep 28. 2023

취미 인간

기대했던 추석 연휴의 첫날, 오전이 훌렁 지나가버렸다. 이번 연휴 동안의 목표는 시나리오의 트리트먼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파일을 열자마자 거부감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써야겠지만 일단은 도망치고 싶어 져서 일기를 쓰러.. 왔다. 소설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그렇고... 각 잡고 쓰려고 하면 두려워진다. 


한 글자도 못 쓰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취미 인간'. 

취미 인간은 작년에 내가 썼던 단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나는 자꾸만 내가 사는 것이 취미 인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어느 한 분야에 진정으로 몰입하거나 전문가가 되거나 헌신하지 못하고, 자꾸만 깔짝깔짝.. 대충 찍어 맛만 보고 다니는 것 같다는 뜻이다. 


나의 본래 전공은 심리학이다. 학부 4년과 대학원 2년을 심리학만 공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심리학에 대해 그리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당연한 건가?) 겨우겨우 석사를 졸업한 뒤에, 박사는 절대 못한다고 선포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박사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당시 교수님께서 석사 졸업 축하하고, 이제 빨리 박사를 시작하라고 하셨다..ㅎ).

  전공자의 경력으로 석사 졸업은 이제 내딛는 첫걸음일 뿐이었고, 이후로도 내가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과 수련 과정이 잔뜩 남아있었다. 동기들은 차근차근 그 길을 밟아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어쨌거나 나의 전공 자격증 덕분이었다. 전공을 살리지 않았다고는 못 하는데, 그렇다고 전공을 살렸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실제로 하고 있는 업무들은 대부분 행정적인 일처리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이와 무관한 전혀 다른 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


최근 나는 직장에서 상을 두 번이나 받게 되었는데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왜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이 직장에 그다지 헌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그다지 가치나 의미를 두고 있지 않고(돈이 가장 큰 의미이긴 한데요).. 승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승진을 한다는 건 누구나 바라고 축하할만한 일인데(상을 받는 것처럼..) 승진과 동시에 내게 주어지는 업무의 난이도, 업무의 다양성, 막중한 책임감... 등을 생각하면 내가 그만큼을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겁부터 났다. 


최근에는 팀장이 스스로 그 직책을 내려놓기도 하는 걸 보면서 나도 힘들면 요청해서 단순 업무만 하지 뭐..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하며 나 자신을 다독이기도 했다. 

나는 그냥... 적당히 쉽고 간단한 일만 하면서 돈도 조금씩만 받고 일도 조금씩만 하면서 살고 싶은 욕심 없는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전문성에 대한 헌신으로부터 도망쳐버리고 마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자신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취미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을 배우기 시작할 때는 마냥 즐거웠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의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자꾸만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취미야, 취미로 하는 거지 뭐...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롱런하는 비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뭐가 문제인가 싶다. 


적당히 할 만큼 하고, 적당히 벌만큼 벌면서, 적당히 쓰고 싶은 만큼 쓰는 게, 

행복한 거 아닌가? 

취미 인간이, 스스로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움츠리고 수그리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취미야, 라면서 아마추어의 자리에서만 머물러 있으려 하는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맞나?


내 삶에 있어서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것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고 못마땅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삶을 아마추어처럼, 본인이 행복하고 즐겁고 만족하는 아마추어처럼 사는 게 

뭐 어떤가?

무엇보다도 어느 누가 누군가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아마추어 같은 삶이라고, 취미 인간 같은 삶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삶을 사는 동안에는 그것은 그 자체로.. 그 방식대로의 삶 그 자체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프로도 아마추어도 취미도 취미 아닌 것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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