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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15. 2023

1. 닮은 이빨

짧은 소설

"엄마!"


길에서 그런 종류의 사람을 마주칠 때 보통 현이는 허공을 쳐다보며 못 들은 척 걸음을 빨리 해서 그 상황을 지나치는 편이었다. 사이비 종교 전도라든가 뭔가를 영업하려는 사람이라든가 정신이 어딘가 이상한 듯해 보이는 사람이라든가...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저 젊은 남성도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아무래도 머리 어딘가가 단단히 잘못되었거나 시력에 문제가 있다든가 술에 취했다든가.. 아무튼 엮여서 좋을 일이 없어 보였으므로 역시 현이는 모르는 척 재빨리 그를 지나치려 했다.


"엄마, 나야! 지후!"


그러나 그가 팔을 꽉 잡아 끌어대는 통에 현이는 그를 지나치기는커녕 길바닥에 넘어질 뻔하고 말았다. 너무 놀라서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여차하면 소리를 질러야지, 하는 생각은 너무 늦게 떠올랐다. 더구나 본인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또래의 남자에게 도대체 뭐라고 반응해야 한단 말인가.


"나 네 엄마 아닌데."


현이는 남자의 손을 탁탁 털듯이 떼어내고는 주춤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지만 짐짓 쿨하고 쎄보이는 척을 했다. 길에서 개를 맞닥뜨릴 때에도 그렇듯이, 두려워하는 기색을 내보이면 짐승들은 금세 알아차리곤 하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척, 그 상황에서 스르르 벗어나지 않으면 물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내 얼굴 한 번만 봐봐. 나 맞잖아. 엄마 아들."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얼굴로 갔다. 뽀얀 얼굴이 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짙은 갈색의 반곱슬 머리카락, 외꺼풀의 눈.. 평균보다는 약간 마르고 작은 체구... 이거 어딘지 익숙한 얼굴이다. 어딘가 분명히 자신을 닮았다. 

대체 뭐지? 온갖 생각이 그 순간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가는데, 지후라는 그 남자가 한 마디 했다.

"미래에서 왔어. 나 진짜야."

"이런 우라질... 아빠가 누군데."


욕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누굴 만나든 자신은 확고한 딩크라고 소개하고 다녔던 현이였기에 자식이 있으리라는 소식은 누군가 자신을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김승규 아니면 신호진인데 나도 잘 모르겠어."

"신호진은 또 누구야..."


자신과 김승규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는 스토커라니. 소름이 돋는 한편,

김승규네 김승규. 현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과묵한 자신과 달리 조잘조잘거리며 이야기하는 저 남자의, 순간순간 드러나는 저 남자의 이빨을 보니 그랬다. 현이는 김승규의 치아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의 이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치아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이를 그렇게 뚫어져라 탐구할 기회는 현이에게 많지 않았다. 


김승규는 이를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왜지? 하긴, 생각해 보니 누군가에게 이를 벌려 드러내고 있는 건 왠지 부끄러울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현이는 김승규의 이가 더 보고 싶어졌다. 충분히, 더 많이, 오래오래.

현이는 가끔 생각날 때 김승규의 입술에 엄지와 검지를 갖다 대고는 핸드폰 액정 화면을 확대하듯이 김승규의 입술을 벌렸다. 그러면 드러나는 김승규의 잇몸과 이빨들. 그것은 현이의 것보다 훨씬 작고 오밀조밀했다. 그걸 볼 때면 현이는 강아지의 치아가 떠오르곤 했다. 강아지의 송곳니에 씹히면 살에 두꺼운 못자국만 한 구멍이 뚫릴 정도로 위험했지만 그런 강아지도 앞니만은 아주 조그마했다. 귀엽게 영근 곡물처럼 아기자기하고 매끄럽고 단단한, 가지런히 박혀 있는 총총한 그 이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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