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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Nov 19. 2023

마감 끝낸 자

시험 끝난 학생의 기분

오늘은 하루종일 잘도 잤다. 일요일이었고 아무런 약속도 없었고 당장 해야 하는 일도 없었으니까. 드디어 시나리오 제출이 끝났다.


씻고 나서 머리까지 말리니까 밤 10시가 넘었다. 나에게는 경품으로 받은 에어랩이 하나 있다. 자랑을 하자면 글을 써서 받은 것이었고 제세공과금이 지원되지 않아서 생각보다 꽤 큰돈을 주고서야 얻은 것이었다. 어쨌든 내게는 얼마 안 되는, 글로 벌어낸, 그러니까 작은 막내딸이 상으로 타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라서 에어랩을 보면 기분이 정말 산뜻해진다.


  에어랩을 손에 넣은 지가 1년이 넘었지만 나는 똥손이라서 정작 성능 좋은 드라이기 이상의 퍼포먼스는 내지 못한다. 종종 유튜브에서 에어랩 활용법... 을 검색해 보고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고 도전해 보지만, 그 결과 지금 내 머리는 머리 말리다 말고 잠들었다가 일어난 잠버릇 나쁜 사람 머리처럼 엉망이 되어 있다. 귀찮으니까 그냥 이러고 출근을 할 것이다. 내일은 월요일.... 


오늘은 유튜브를 보다가 갑자기 탕후루에 꽂혀서 귤 탕후루 만들기에 도전했고 죄다 실패했다. 1줄은 성공했지만 정작 내가 먹어보지는 못했고 동생이 먹었다. ㅡㅡ.. 나머지는 다 망함.. 망한 거 먹다 보니까 안 그래도 약한 내 치아가 다 망가질 것 같고 치과 치료비로만 몇십만 원 뚝딱 가능하겠길래 다시는 탕후루 생각도 안 하기로 결심했다..ㅠ 


아침에 늦게까지 푹 자고, 오후에도 낮잠 자고, 저녁 먹고 나서도 졸려서 누워있었는데도 밤 10시가 넘으니까 또 잠이 온다. 내일 출근을 하려면 빨리 자야 하는데 뭔가 찜찜해서 짧게라도 글을 쓰고 자고 싶다. 보통 밤에 자기 전에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거다. 자기 전에 샤워를 하는 것처럼, 뭔가 개운하게 적어내고 정리하고 싶어서. 


제출일 일주일 전까지도 내가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는데 마감과 독촉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었더라.. 내가 또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게 행복하다. (물론 이후 공모전에 내려면 고쳐야 할 길이 구만리이지만 일단 그렇게 초고라도 완성을 했다는 게, 결과에는 상관없이 정말 큰 성취감을 준다)


  사실 시나리오 완성 직후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어보고 나서는 상당히 크게 충격을 받았다. 나름 재밌게 잘 썼다고 생각한 것들이 전부 조잡해 보이고 멍청해 보여서 이 쓰레기를 만드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고통을 받아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이 정도로 힘들게 쓴 결과물이 이거라면 난 글쓰기에는 재능이 없으니 진짜 글쓰기로 돈 벌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완전 취미로, 자기만족으로만 쓰는 걸로..) 생각을 했다. 보통은 작품을 완성한 직후에 와 난 역시 잘 써...라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서 정말 더 큰 좌절감이 들었는데 ^^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출일 3일 정도를 앞두고 선생님께(그리고 애인에게..) 한번 피드백을 받아서 제출일까지 조금 더 작품을 고칠 수 있었고, 선생님이 잘 썼다고 많이 칭찬을 해주셔서 (내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애인도 잘 썼다고는 안 해줬는데 ㅋ) 조금 더 퇴고할 용기와 힘을 얻었다... 


어쨌든 시나리오는 이걸로 끝난 게 아니라 (분량도 적고 해서..) 조금 쉬다가 또다시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해서 공모전까지는 한번 가볼 생각이다. 


나중에 2023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올해 유독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애인, 동료, 선생님들). 상반기에는 단편도 세 편이나 썼고...(세상에.. 어떻게 한 거임.. ) 물론 퀄리티가 어디 낼만한 수준은 아니라서 올해 신춘문예에는 내지 않을 생각이다. ^^.. 이래놓고 마감 다가오면 갑자기 모 하나 내려고 할지도.. 

하반기에는 시나리오도 썼다... 이렇게 내가 쓴 작품들로 그 시기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기쁨인 것 같다. 


학생 때는 매 해마다 내가 어떤 학교의 몇 학년이라는 것이 그 시기의 내 정체성을 결정하고 그 년도를 기억하게 하는 중심이 되곤 했는데, 졸업 이후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1년 1년이 매년 새로울 것이 없고 똑같아서 특정 연도의 특징에 대해 기억하기도 어렵고 그만큼 시간도 금방 의미 없이 흘러가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제부터는 매년 이렇게 내가 만들어내는 작품들로 한 해를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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