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

사탕이란 말에는 상상과 꿈이 들어있다.

by 밤호수


사탕.이라고 할까.

캔디.라고 할까.

이 제목 앞에서 나는 한참을 고민한다. 결국 '사탕'이라고 적어놓고도 석연치 않아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민중이다. '캔디'로 바꿔야 하나. 두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다르기에, 어느 하나를 말하면 다른 하나의 느낌을 놓치게 될까봐, 그 어느 하나의 느낌도 포기할 수가 없기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탕'으로 하자. 캔디보다는 사탕에 좀 더 추억과 아련한 달콤함이 묻어 있어 캔디는 결코 줄 수 없는 두 가지의 것쯤을 사탕이 갖고 있는 듯 하니까.


사탕을 좋아한다.

아, 먹는 것 말고. 그냥 사탕. 먹는 사탕 말고 그냥 사탕도 있나?

있다. 눈으로 보는 사탕. 상상하는 사탕. 그림 속에 있는 사탕. 마음으로 먹는 사탕.

그리고 글로 읽는 사탕.

나의 사탕은 설탕맛 가득한 내 혀 속에 느껴지는 사탕이 아니라, 달콤하고 아름다운 글과 단어단어 속에 가득한 스윗함이다. 주인공들의 설렘만큼이나 흥분되었던 나의 기억들이다.


<나는 네 살 무렵, 처음으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들렀다. 가게 안은 온통 사탕 천지였다. 사탕에서 풍기던 향기로운 냄새는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폴 빌라드 '이해의 선물' 중에서


나에게도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와 같은 기억이 있다. 40년이 가까이 되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향기로운 사탕의 향연.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탕에 대한 강렬한 첫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안녕 나의 한옥집'에서도 언급했던 공주 칠성당의 빵집이 바로 그 기억이다. 하얀색 버터크림 케잌들과 그 건너편에 기다란 나무 봉을 빙 둘러 탑처럼 꽂혀있는 커다란 롤리팝들.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할아버지모양과 눈사람 모양의 롤리팝들이 들어섰다. 흰 눈 내리는 날 캐롤과 함께 눈앞의 롤리팝들은 동경이었고 설렘이었다. 내 얼굴만한 크기의 사탕들은 아마 먹는다면 족히 이틀은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할 만 할했다. 아까워서 과연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엄마가 그 동경의 사탕을 내게 사주신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서서 초록색 빨간색 데코가 되어있고, 바스락거리는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롤리팝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오래오래 기억하도록 마음 속에 담아두었다. 그날의 사.탕.들을.


<이 쪽엔 박하향기가 나는 납작한 박하사탕이 있었다. 그리고 쟁반에는 조그만 초콜릿 알사탕, 그 뒤에 있는 상자에는 입에 넣으면 흐뭇하게 뺨이 불룩해지는 굵직굵직한 눈깔사탕이 있었다. 단단하고 반들반들하게 짙은 암갈색 설탕 옷을 입힌 땅콩을 위그든 씨는 조그마한 주걱으로 떠서 팔았는데, 두 주걱에 1센트였다. 물론 감초 과자도 있었다.> 폴빌라드 '이해의 선물' 중에서





'초원의 집' 2권 little house on the prairie에서 처음으로 엄마아빠와 제대로 차려입고 타운에 나간 로라와 자매들은 가게에서 엄마의 에이프런을 사고, 천을 고르고, 구경을 한다.귀여운 소녀들에게 가게 아저씨가 핑크색 하트사탕을 주시는데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보기만 해도 달콤'하다.


몹시 추운 크리스마스 즈음의 밤. 캔자스 시티 숲 속 아빠가 직접 만든 통나무집에 사는 로라의 가족. 로라네 자매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그들의 이웃삼촌이 홀딱 젖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벌벌 떨면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만나 소녀들에게 전해줄 선물을 받은 삼촌이 선물을 젖지 않게 하기 위해 머리에 이고 강물을 건너온 것이었다. 그 추위에!! (나는 캔자스시티 근처에 살았던 적이 있다. 한국에 못지 않은 한겨울의 강추위다.)


Now tin cups,

a little heart-shaped cake.

(그것도 하얀 설탕이 스프링클된!)

Long Red and white striped.

(페퍼민트. 빨강과 하양 줄무늬 무늬의~)


하얀 설탕이 스프링클되어 있고, 빨강하양 줄무늬의 페퍼민트 캔디케인. 크리스마스가 되면 언제나 캔디케인이 온갖 곳에 보이지만, 난 여전히 실제 '맛보는' 캔디케인보다 글로 읽고 상상하는 하양빨강의 캔디캐인을 더 사랑한다. 로라와 자매들이 크리스마스양말 속에 넣고 잠못 이뤘을 그 밤의, 통나무집의 캔디케인을.




역시 ‘초원의 집’ 1권에서 로라의 할아버지는 단풍나무 수액을 받아서 끓여 시럽을 만든다. 위스콘신 주 깊은 숲 속 단풍나무가 가득한 그 곳에서 나무에 구멍을 뚫어 며칠 내내 수액을 받는다. 커다란 통에 가득 담긴 수액을 끓이는 작업이 한 옆에서는 한창이다.

이게 바로 메이플 시럽이다. 오늘날에도 메이플시럽을 많이들 먹지만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끓인 그 맛을 어떻게 따라갈까?

그 맛에는 아마도 단풍나무의 향기도 배어 있을 것이고, 깊은 미대륙 북부 숲 속의 알싸한 추위와 강한 바람도 배어 있을 것이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수액을 받아내는 아빠들의 정성과, 완성되어 크리스마스 이브의 파티에 먹을 날을 준비하는 어린아이들의 설렘도 그 맛에는 담겨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파티의 주인공인 시럽이 완성되면, 희고 깨끗한 눈이 잔뜩 내린 밤. 주인공들은 접시 가득 흰 눈을 가져와 메이플시럽을 양껏 뿌린다. 즉시 굳어버린 시럽은 바로 '메이플캔디'가 된다. 상상만 해도 차고 맛있고 달콤한 메이플 캔디!


그 광경이 궁금하다면,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을 찾아보면 된다. 할머니는 버몬트에서 살았는데, 버몬트는 바로 '메이플시럽'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동네다. 동네사람들이 흰 눈 내린 숲 속에서 수액을 받아내고, 끓이고 옮겨서 시럽을 만드는 신나는 장면이 할머니의 그림 <메이플시럽 축제>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 그림을 보면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고, 그곳에서 만들어져 나올 시럽과 캔디를 상상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내 혀에는 달콤한 메이플캔디의 감각이 고여 있다.




<앤의 행복의 잔은 이미 가득 채워졌는데, 매슈가 그 잔을 아예 넘치게 해버렸다. 매슈는 카모디에 있는 상점에서 막 돌아와,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작은 꾸러미를 꺼냈다. 그리고 마릴라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 꾸러미를 앤에게 건네주었다.

"네가 초콜릿 사탕을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좀 사왔다."> 빨강머리앤. 중에서


달콤하고 다정한 매슈 아저씨.

초콜릿 사탕.

카모디 상점.

작은 꾸러미.

행복의 잔.

이런 단어들에 벌써 사탕이나 초콜렛 따위 먹지 않아도 나는 달콤함에 취한다.




할로윈 데이에 아이들의 사탕바구니를 들여다보면, 세상 모든 종류의 단 것들이 총출동이다.

사탕, 초콜릿, 과자, 젤리들.

그것들은 몇달동안 집안 곳곳을 뒹굴고 더이상 귀하지도, 신기하지도 않다. 입안에 질리도록 맛볼수 있는 설탕덩어리들은 '사탕'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설탕덩어리들일 뿐.


사탕.이란 말에는 상상이 포함되어있다.

꿈. 도 함께 들어 있다.

달콤한 색깔과 작고 둥그렇고 매끈한 모양들.

다정하고 향긋한 자태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

그러나 손에 얻기 힘든 미지의 맛.

소유하기 어렵기에 더더욱 멀고 꿈꾸는 듯 했던

사.탕.


'감초사탕' '

'페퍼민트'

이런 맛을 몰랐지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까지도 알 수 없는 감초사탕의 맛은 더이상 실제 맛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미 내 안에서 간직하고 있는 내 나름대로의 상상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멀고 소중했던 사탕 하나의 기억은 이미 사탕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고 달콤한 이야기이다. 더 향기로운 맛이다. 혀끝과 머리와 마음 속에서 사르르 녹고 있는 사탕이다상상과 꿈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