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하 Oct 24. 2021

내가 너의 편에 설게

- 가해자가 가해하지 않는 그날은 영영 오지 않더라도

  “참 이상하더라고. 룸싸롱 언니가 들어오면 내가 데리고 간 대학원생이 되게 경계하고 싫어하는 거야. 표정도 싹 바뀌고 자리도 피하고. 같은 여자끼리 왜 그러지?” 


  술자리에서 내게 술을 따라준 교과서 대표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떠올랐다는 듯 회상에 젖은 얼굴로 운을 띄웠다. 회의 시간에 내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활동과 삽화에 문제제기한 것에 대해 반박할 사례로 끌고 온 것이었다. 대표 저자의 한마디에 다른 교수와 교사들도 공감한다는 듯 허허거리며 분위기를 맞췄다. 



  “같은 여자라서 그렇겠지요. 사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잖아요. 교과서는 뭐 엄마가 아이 안는 삽화만 그려 넣어도 성차별적이라고 딴지를 거니까 안전하게 가려고 어쩔 수 없이 빼는 거지만서도.” 



  “그러니까요. 진짜 어이없는 기준이 많아요. 저도 대만 학회 참석했을 때 노래방 도우미를 부른 적 있었는데, 같이 있던 조교가 그렇게 싫어하더라고요. 뭐라 말은 못하는데 투덜투덜하는 게 눈에 훤히 보여서 뭐라 한 적 있습니다. 나는 불쌍한 여자들 도와주고 저쪽에선 돈 벌고 서로서로 좋은 일인데 그런 식으로 겉돌면 교수 생활하기 어려울 거라고요. 교수 생활만 그렇겠습니까. 어느 사회에서 그런 부정적인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귀를 씻고 싶었다. 예측한 대로 흘러간 대화였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동안 교과서 회의랍시고 매주 2-3회씩 모일 때마다 매번 여섯 시간이 넘는 동안 엇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대부분 내가 이제 막 사회에 나와 경제활동을 시작한 스물다섯의 어린 여성이라는 점을 인식한 말들이었다. 내 반응을 보고 싶어 던지는 각종 희롱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나를 건드렸다. 표정이 드러나는 게 싫어 화장을 해야 하나 고민스러울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 한 교수는 원피스를 입은 내 프로필 사진을 확대하며 이렇게 허연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걸 걸어놓아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우리야 고맙지만.” 나는 못 들은 척하며 원고를 검토하다 발견한 오류에 대해 문의했다.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지도 막막했을 뿐더러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냥 농담인 듯 가볍게 던진 말에 흥분한 모습으로 응수하기 싫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내 눈치를 살피며 흘린 음흉한 웃음과 밑바탕의 생각들이 떠오르니 구역질이 났다. 



  자리가 파한 뒤 팀장은 회의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나를 다른 술집에 데려갔다. 팀원은 나뿐이라 단둘이 술을 마시게 된 형국이었다. 



  “취기가 오르니 얼굴이 빨개져서 더 예쁘네. 오늘 입은 옷도 잘 어울린다. 어두운 색이 잘 받네.” 


  “저 한 모금도 안 마셨는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예쁘다고.” 



  우스웠다. 나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많은 상사가 내게 내뱉은 말에서 풍기는 악취가 역겨웠다. 나는 분명 열심히 공부해 일정 기준을 넘기고 까다로운 입사 시험을 통과해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데, 왜 계속 어린 여자 취급인 걸까? 왜 여자는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업무의 일환으로 여기며 견뎌야 하는 걸까? 별의별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 또 누가 헛소리한 거 아니지?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너무 늦은 시간까지 뒷풀이하면 몸 안 좋다 하고 적당히 빠져나와. 

  - 안 그래도 보고서 써야 한다고 말하고 나오려고. 



  열이 뻗쳐 참을 수가 없는 순간엔 내 상황을 잘 아는 다른 팀 선배들의 걱정스러운 문자가 날아들었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혼자 앓을 때보다 든든한 기분이 들고 머리끝까지 타고 올라왔던 분노도 점차 가라앉았다.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전하면 그들은 나보다 더 화를 내고 내 편에 서 주었다. 그렇게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말로만 떠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었지만 내게 달라붙은 모욕감을 떨쳐내는 덴 큰 도움이 됐다. 더구나 내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곁에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부분이 있었다. 



  “주말엔 뭐해? 저기 영등포에 족발 기가 막히게 하는 집 있는데, 같이 갈래?” 



  팀장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대충 바쁘다고 하면서 넘겼다. 대꾸할 기운마저 사라진 기분이었다. 다른 팀 선배에게 보낸 메시지대로 나는 회의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의 못마땅한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내일 어떤 식으로 보복해올지 눈에 훤히 그려지는 듯했지만, 그런 것까지 고려할 여력이 없었다. 나는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팀장은 나를 자신의 자리 바로 옆 간이의자에 앉힌 후 두 시간 넘게 혼자 떠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다 듣는 데서 웅변하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내가 작성한 보고서의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까지 죄 짚으며 이건 기계적인 표현이고 저건 논리가 없다고 소리쳤다. 관객이 있고 제멋대로 훈계할 직원도 있으니 아주 신이 난 듯했다. 



  이번엔 나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간밤에 술 상대를 해주지 않아 꼬일 대로 꼬인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건 엄밀히 말하면 내 업무가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팀장이 지적하는 부분에 모두 반박했다. 나는 검토한 원고와 오류, 피드백과 답변, 회의 때 주고받은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짚어나갈수록 팀장의 의견이 얼토당토않은 트집 잡기였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근데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뭐 이렇게까지 무섭게…….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고치면 될 것을 바득바득 대드네. 얼굴 좀 풀어. 웃으면 예쁜데 왜 이렇게…….” 


  “자꾸 이러시면 신고할 거예요.” 

  

  내 답변에 팀장은 펄쩍 뛰었다.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팀장의 얼굴을 마주보며 내 외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는 것도 성희롱이고 업무 외적인 시간에 불러내 데이트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성희롱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가해 사례를 전부 까발리려다 짧게 질문했다. 



  “혹시 성희롱이 뭔지 모르시는 건 아니죠?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 무슨 말을 해도……. 나는 그냥 혼자 서울 올라와 자취하는 팀원 챙겨주려고 그런 건데……. 이거 억울해서 뭔 말을 못하겠네.” 



  가해자들은 모두 가해자되는 법이나 가해자가 되었을 때 대처하는 법에 대해 받는 교육이 따로 있는 걸까. 어쩜 이렇게 다 똑같이 나올까. 씁쓸한 기분에 침체되기 전에 나는 팀장에게 내 의사를 밝혔으니 앞으론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일이 또 생기지 않게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알겠다고 답하고는 냉랭하게 굴었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덕에 성희롱이 일어나는 구조와 방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성욕과는 관계없는 권력의 문제라는 것, 가해자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저지르는 폭력이라는 것, 피해자가 느끼는 불쾌감이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 등의 내용은 아무리 반복해도 모자랐다. 그 메뉴얼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너무 과민한 것 아닐까, 내가 여지를 준 건 아닐까, 곱씹으면서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나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을 현실에서도 적용해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상대는 성별, 나이, 경력 등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리를 지키며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러려면 회사에서 무난하게 지내는 것이 좋았다. 나쁜 평판이 붙으면 인사고과에도 반영되고 연봉 및 승진과도 직결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이라는 건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많은 여성의 경우 성희롱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보다 월급을 받는 일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처럼 행동할 수 없다. 가해자들은 그 부분을 잘 알고 이용한다. 상대의 반응을 세세하게 살피며 어디까지 침범해도 괜찮은지 가늠하는 데 능통하다. 



  사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해자가 가해하지 않는 것뿐이다. 법적 처벌을 강화해서 가해의 씨를 말리는 것. 결정권자의 성인지적 감수성을 키우고 사회구조적 인식을 강화하는 것. 언제 어디서고 다 통하는 성희롱 대처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대처법을 가르치기보다 가해자가 가해하기를 그만두도록 교육하는 것이 성희롱 없는 일터 만드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날 팀장은 미약하게나마 자신에게 맞서는 내게 불같이 화를 냈지만, 그 후론 내게 불필요한 언행을 줄였다. 최대한 내게서 떨어져 골치 아픈 일과 엮이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였다. 참고 견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허탈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기분 나쁜 소릴 들어도 방어적으로 웃어야 했던 지난 나날들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업무 외적으론 철저히 선을 그으며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를 씻어야 하는 일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지만 딱히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피해를 당했을 때 내게 잘못의 화살을 돌리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훨씬 수월하게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나빠지는 것만 같은 세상 속에서도 조금씩 다른 길을 열어 나아갈 수 있는 건 쉽게 절망하고 손 놓기보단 다른 여성의 앞길을 닦아주는 쪽으로 움직인 수많은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려는 그 마음만을 믿는다. ▨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엔 꼭 마중 나와야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