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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NGWORK STUDIO Feb 02. 2023

(6) 안전하지 못한 도시를 사는 3가지 방법

사회적 공공재로서 놀이 

제인 제이콥스(미국 도시 건축사상가)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란 책에서 오늘날 뉴욕의 활기를 지키기 위해서 도보와 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녀는 안전하지 못한 도시에서 사는 세 가지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불행한 사람들이 그 결과를 감내하도록 두는 것. 둘째, 사파리 방식, 즉 차량을 안식처로 삼고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 번째, 갱단 유형, 즉 구역의 제도화입니다. 2021년에 한 번 이슈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뉴타운아파트의 신식 놀이터 옆에 다세대 주택촌 어린이가 놀러 왔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동대표라는 어른이 와서 너는 남의 땅을 침범한 나쁜 '도둑놈'이라고 나가라고로 쫓아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출입에 차별을 두고 비용을 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누리게 하는 '갱단 구역화' 방식입니다.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자유시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느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더러 계십니다. 하지만 자유시장 경제에서 보수진보 구분 없이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기반 시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도서관'입니다. 역사적으로 문자는 귀족의 전유물이고 백성이 책을 읽는 것이 불손한 것이라고 차단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사민사회 구성원 누구나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에 평등하게 접급해야한다는 보편적 사회적 공공재 (Common Wealth)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일 물, 공기, 생필품, 도서관과 같이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자원을 사유화하고 접근에 차별을 두게 된다면 그 사회는 공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까요? 백성에게 필수적인 자원을 가지고 장난을 친 지도부는 역사에서 항상 안 좋은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놀이의 공간은 도서관과 같은 사회적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와 놀이 운동하시는 분들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어린이가 마을과 도시에서 놀 수 있는 구멍과 빈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를 어른들의 산업이 침식하였습니다. 차량이 도시공간의 30% 면적을 차지합니다. 차량은 주로 사회적 생산능력이 있는 성인의 전유물입니다. 또 어린이의 시간은 성인들의 키즈 콘텐츠 산업으로 모두 채워지고 시간은 분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 충분히 놀고 쉴 수 있는 틈과 여지를 돌려주는 일은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가 귀하다는 이 시대에도 매년 200-300여 명의 어린이가 '비의도적 사고'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건강한 어린이가 순간의 불의의 사고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에 더해서 전체 어린이 사망사고 중에 27%는 타살과 자살과 같은 '의도적 사고'라는 점입니다. 어린이의 놀이와 자유의 문제를 갱단방식으로 시장논리에 맡겨도 될까요? 


저희 빈둥 선생님의 아내 분이 목동의 중학교 상담교사이십니다. 청소년 자해상담이 매년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통계를 찾아보니 공식적인 통계만 2018년 2만 7천여 건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잘못 가르친 부모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면 그만일까요? 몇몇 남미 국가와 같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사회를 보면 약자를 사회가 보호해주지 못했을 때 경찰-보호의 기능이 민간에게 위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국가가 정상 작동하지 않으니 사립 경찰을 고용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더 위험에 노출됩니다. 극단적으로 문밖은 더욱더 위험해집니다. 영화 <디스트릭 9>처럼 더럽고 위협적인 존재들을 구역화해서 몰아두고 관리하면 과연 지도부 상류층인 '나'는 안전할까요? 결국 영화의 결말처럼 그 관리자 본인도 위험해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부모들 중 극단적으로 방종하거나 극단적으로 자기 자녀를 성공을 위해 옥죄는 부모들은 어려서 잘 놀아보지 못한 어른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불행한 부모는 불행한 아이를 만듭니다. 또 불행한 아이는 타인을 해하거나 혹은 자신을 해합니다. 어려서 놀이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하는 경험과 어린 약자를 함께 놀기 위해 깍두기로 끼워준 경험, 뿌듯하게 맘껏 실컷 놀고 9시면 곯아떨어져 본 경험을 한 어린이는 결코 자신과 남을 불행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놀이가 사회적 공공재의 영역으로 자리 잡아야 할 이유입니다. 저 또한 수많은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활동가 중에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제가 느낀 점은 꽉 짜인 각 종 프로그램보다. 놀 틈,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며, 스스로 선택하고 자율적으로 자신의 실험을 만들어가며, 조건 없이 차별 없이 환대받을 수 있는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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