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가족: 라멘샵>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서 지낼 때면 옛날 얘기를 듣곤 했었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아니었던 시절, 할머니가 우리 나이였을 시절, 뭘 해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시절을 묻곤 했었다. 이야기가 물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듣다 보면, “맞아, 할머니도 우리처럼 젊었었구나”, “나도 언젠간 저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내 젊었을 적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등의 생각이 자주 떠올랐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 본 건 할머니가 할머니가 된 이후니까, 그 이전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더 그런 이야기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젊었을 적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비밀이 있었는지, 무슨 길을 따라 걷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등 모든 것이 내겐 새로웠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보다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아들인 마사토가 어머니의 예전 시절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어딘가 변해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가 불편한 아들 마사토. 그렇게 서먹해진 부자 사이가 계속되다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자 마사토는 어머니의 일기장과 외삼촌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하고 그렇게 그는 그가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 떠난다.
대부분의 음식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영화 내내 음식이 나오고 그 음식이 단순히 음식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 바쿠테는 마사토와 어머니를 연결해주는 매개로써, 어머니가 만들었던 음식 바쿠테를 배우며 마사토는 어머니의 몰랐던 면을 점차 발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음식 말고도 다른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일본의 역사문제이다. 마사토는 할머니가 어머니의 결혼 상대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며 결혼 이후에는 둘이 평생 의절하며 지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계 2차 대전 때 할머니의 가족이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희생됐기 때문에 할머니는 자신의 딸이 일본인과 결혼한다는 걸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고 그 감정은 마사토에게까지 이어졌다.
하나 아쉬웠던 건 영화가 일본의 역사 문제로 소재를 넓힌 것에 비해서 그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이 다소 시시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음식인 바쿠테와 아버지의 음식인 라멘을 섞어 만든 라멘테를 할머니께 대접하여 그 두 세대의 융합을 시도했다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이 생각보다 쉽게 돌아서며 영화 전반의 분위기에 비해 마지막에 힘이 빠진 느낌이었다. 또한 역사문제가 단순히 인물들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로밖에 기능하지 못해 이야기가 더 확장되지 않고 마무리돼버려서 보는 나로서는 제대로 완성된 한 편의 영화를 봤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 버전의 <우리가족: 라멘샵>이 소재가 가진 매력을 더 잘 살렸을 것 같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다.